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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Apr 10. 2024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다솜짓_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뭐예요?

 

학창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주로 중·고생들을 가르치며 상당기간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습니다. 하루는 초등부 선생님께 사정이 있어 4~5학년 정도로 기억되는 반 수업을 대신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수업이 될 리가 없지요.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 "여자친구는 있어요?" 등 이런저런 질문을 받던 중 한 여자 아이가 제게 불쑥 던진 질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뭘까요?

자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다...

저도 모르게 곧바로 이런 답변을 했습니다.

 

수능 준비 더 열심히 해 볼걸, 현실이라는 명분으로 꿈을 위한 시험 너무 쉽게 포기하고 주저 않았구나… 졸업한 지 10년도 더 지나 책꽂이에 나름 자랑스럽게 꽂혀있는 논문을 문득 꺼내보고 가장 중요한 구절에 오자가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며 역시 이마저도 최선을 다 하지는 못했구나 생각했습니다.

뒤돌아 보면 항상 후회가 남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린 학생의 질문에 너무도 쉽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답변을 했고, 사실 이것은 부끄러운 제 삶에 대한 솔직한 자답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最善(최선)이라는 단어는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2번의 뜻 『온 정성과 힘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의 자답 또한 그랬습니다.

 

식상해서 들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생각나는 비유가 없어서 마라톤 레이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42.195Km라는 정말 엄청난 거리를 달리고 또 달립니다. 2시간 넘게 가쁜 숨을 참으며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오늘의 우승자는 관중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자기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그 손가락을 다시 들어 관중들에게 보냅니다. 역시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선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미 골인하고 뒤늦게 결승선 앞에서 힘이 다 빠져 넘어졌다가 겨우겨우 기어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곧 쓰러져 의료진이 달려옵니다. 관중들은 '어쩌지?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 반 호기심 반의 시선으로 기립할 뿐 환호의 그것은 아닙니다.

 

금메달 딴 선수와 등수도 알기 어려운 두 선수 중 정말 최선을 다 한 선수는 누구일까요?


물론 오랜 준비, 체력관리, 컨디션 조절 등 그간 최선을 다했기에 우승의 영예를 안았겠지만 그런 과정을 논외로 한다면 오히려 등 외의 선수가 정말 최선의 레이스를 펼친 선수일 수도 있습니다. 1등은 세리머니 할 힘으로 0.01초의 기록이라도 단축할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 인지라 적어도 최선을 다겠다는 말을 진심으로는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업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제가 오늘 질문이 좀 많네요. 이쯤 되면 많은 분들께서 ‘역시 너도 똑같아’, ‘일 열심히 하라는 소리 하려고…’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들 쭈니가  다섯 살 적에 공식 인정한 마음을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실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등 외의 마라톤 선수처럼 일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큰 일 납니다.

업무량 조절도 하고 건강 관리도 하고, 배우자와 아이가 있다면 이들의 정서 관리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근무 중이라도 가끔은 차 한잔 같이 마시며 상사욕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지요. 그래야 일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직급이건, 직책이건, 연봉이건 회사가 나에게 준 위치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일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최선을 다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성의 있게 나의 일을 하는 것』 정도면 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 모르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제 견해를 따르자면 업무를 위해 다하는 최선은 당연히 금지입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최선은 항상 권장합니다.

오늘 꼭 투표하시고 남은 시간 그리고 곧 돌아오는 주말에 부모님 배우자, 자녀들 많이 사랑해 주시고 최선을 다해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런 후에 일요일 저녁 장렬하게 쓰러지는 마라토너가 되어 행복하게 골인하십시오.

 

나를 포함한 가족의 행복이 바로 우리의 결승선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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