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학비 마련을 위해 주로 중·고생들을 가르치며 상당기간 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습니다. 하루는 초등부 선생님께 사정이 있어 4~5학년 정도로 기억되는 반 수업을 대신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수업이 될 리가 없지요.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 "여자친구는 있어요?" 등 이런저런 질문을 받던 중 한 여자 아이가 제게 불쑥 던진 질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뭘까요?
자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란다...
저도 모르게 곧바로 이런 답변을 했습니다.
수능 준비 더 열심히 해 볼걸, 현실이라는 명분으로 꿈을 위한 시험을 너무 쉽게 포기하고 주저 않았구나… 졸업한 지 10년도 더 지나 책꽂이에 나름 자랑스럽게 꽂혀있는 논문을 문득 꺼내보고 가장 중요한 구절에 오자가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며 역시 이마저도 최선을 다 하지는 못했구나 생각했습니다.
뒤돌아 보면 항상 후회가 남고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린 학생의 질문에 너무도 쉽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답변을 했고, 사실 이것은 부끄러운 제 삶에 대한 솔직한 자답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最善(최선)이라는 단어는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2번의 뜻 『온 정성과 힘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의 자답 또한 그랬습니다.
식상해서 들고 싶지는 않지만 딱히 생각나는 비유가 없어서 마라톤 레이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42.195Km라는 정말 엄청난 거리를 달리고 또 달립니다. 2시간 넘게 가쁜 숨을 참으며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오늘의 우승자는 관중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며 자기 손가락에 입을 맞추고 그 손가락을 다시 들어 관중들에게 보냅니다. 역시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합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선수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미 골인하고 뒤늦게 결승선 앞에서 힘이 다 빠져 넘어졌다가 겨우겨우 기어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곧 쓰러져 의료진이 달려옵니다. 관중들은 '어쩌지? 저러다 죽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 반 호기심 반의 시선으로 기립할 뿐 환호의 그것은 아닙니다.
금메달 딴 선수와 등수도 알기 어려운 두 선수 중 정말 최선을 다 한 선수는 누구일까요?
물론 오랜 준비, 체력관리, 컨디션 조절 등 그간 최선을 다했기에 우승의 영예를 안았겠지만 그런 과정을 논외로 한다면 오히려 등 외의 선수가 정말 최선의 레이스를 펼친 선수일 수도 있습니다. 1등은 세리머니 할 힘으로 0.01초의 기록이라도 단축할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게는 너무도 어려운 일 인지라 적어도 최선을 다겠다는 말을 진심으로는 잘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업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제가 오늘 질문이 좀 많네요. 이쯤 되면 많은 분들께서 ‘역시 너도 똑같아’, ‘일 열심히 하라는 소리 하려고…’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들 쭈니가 다섯 살 적에 공식 인정한 마음을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실망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등 외의 마라톤 선수처럼 일하지는 마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큰 일 납니다.
업무량 조절도 하고 건강 관리도 하고, 배우자와 아이가 있다면 이들의 정서 관리도 필요합니다.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도 하고 근무 중이라도 가끔은 차 한잔 같이 마시며 상사욕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지요. 그래야 일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직급이건, 직책이건, 연봉이건 회사가 나에게 준 위치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일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바로 최선을 다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성의 있게 나의 일을 하는 것』 정도면 별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 모르시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라며, 제 견해를 따르자면 업무를 위해 다하는 최선은 당연히 금지입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최선은 항상 권장합니다.
오늘 꼭 투표하시고 남은 시간 그리고 곧 돌아오는 주말에 부모님 배우자, 자녀들 많이 사랑해 주시고 최선을 다해 함께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