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를 대비하여 가방에 넣어둔 밴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네요. 가방 속 물건들을 모두 꺼내 봐도 밴드는 없습니다. 다시 주워 담던 잡동사니들 중 하나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급여를 계좌로 받기 이전에 월급봉투로 쓰였을 듯한 얇고 노란 봉투...
『00 유치원 / 납입증명서 / 000 학부모님 귀하』 이 봉투의 겉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연말 정산을 위해 유치원에서 원비납입증명서를 보내주신 봉투였고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인 지금까지 버리지 못했습니다.
직장인들은 항상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산다고 하지요.
심지어 미리 작성한 사직서가 담긴 봉투를 책상서랍에 항상 넣어두고 일하는 분들도 계신다고 합니다. 오래전 직장인의 85%가량이 ‘적극적으로 이직을 알아보고 있거나 더 좋은 제안이 오면 이직을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는 잡코리아 조사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유치원 원비납입증명서 봉투는 저에게는 다른 형태의 사직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와 앞 자가 같은 아이 이름 세 글자, 그리고 ‘학부모’라는 세 글자... 봉투에 적힌 이 글자들은 제게 ‘책임감’이라는 또 다른 세 글자로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정확하게는 사직서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꺼내 보는 용도의 봉투일 것 같습니다. 그 봉투에 정말 사직서가 담겨 있다면 언젠가 욱하는 마음에 시원하게 던질지 모르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책임감이라는 마음이 무겁게 채워져 있기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리고 재작년에는 노란 봉투 속에 내용물이 생겼습니다.
바로 아이가 아빠 생일선물로 준 직접접은 하얀 봉투입니다. 거금 1만 원이 들어있는 금일봉이지요. 큰 노란 봉투에 아이의 선물 봉투가 담겨 아이의 예쁜 마음은 가방 안에서 항상 아빠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방 또는 서랍속에는 어떤 봉투가 담겨 있으신가요?
보이지는 않는 무언가가 아닌 한 장이 담겨있는 봉투라면, 종이는 빼서 버리시고 어떤 다른 마음을 채워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그 흰 종이 위에는 수없이 많은 한숨과 한없이 많은 눈물로 까맣게 탄 속이 잉크로 녹아내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모르지 않습니다.
내일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월요일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단 한 분이라도 봉투의 내용물이 바뀐다면,오늘의 다솜짓이 너무도 협소한 그 공간에 먼지만큼의 위로라도 스미게 한다면참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