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철이에게.
나 어떡해. 아퍼서 미치겠다. 잘려구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아.
미치겠어. 어쩜 좋아… 어디가 아프냐구? 아마 알고 나면 분명 웃을 거야. 사랑니땜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울 엄마가 사랑니 나면 철드는 거라고 하시던데. 철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사랑니가 나기 시작한 건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거든. 근데 이번엔 정말 조만간에 죽을 것 같이… 너무 엄살이 심했나? 여하튼 난 치과라면 정말 치가 떨려. 어려서부터 치과를 수도 없이 다녔거든 불과 작년 12월까지.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씩, 그래서 치과의 치자만 들어도 겁나고 무서워. 남들이야 적응할 때도 됐다지만 이게 어디 그거 하고 같니. 사랑니가 절반은 자랐어. 이미 삼분의 일 이상은 나와있고 나머지 부분이 잇몸을 뚫고 나오면서 이렇게 아픈 건가 봐. 잇몸이 퉁퉁 부어서 그쪽으로 뭐 먹지도 못해.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했는데 것두 아니야. 며칠 됐거든. 너무 아파 치과에 갈려구 했는데 것두 잇몸이 가라앉아야만 뽑을 수 있대. 그냥 하는 수 없이 잇몸 가라앉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동안에 난 죽는 거지… 끄악. 그리고 치과에 가면 또 죽고.
고등학교 때 치과에서 엑스레이 찍다가 사람 잡을 뻔했는데. 너 치과서 X-ray 찍어 봤어? 아마 당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어려서 단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우리 오빠가 어려서는 껌하구 사탕을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런 오빠는 딱 한번 치과에 갔었지. 사랑니 빼러. 나머지는 모두 멀쩡.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랑니 뺄 생각 하니깐 눈앞이 캄캄하다. 누구 같이 가줄 사람두 없구. 누구 손이라두 붙잡고 있으면 한결 나을는지 모르는데. 우리 엄마 이빨 뽑을 때는 항상 아빠가 함께 가셨거든. 그러면서 정작 딸내미 이빨 뽑는다는데 콧방귀만 뀌시고. 너두 한번 당해봐라. 이거다 완존히. 에고 이젠 침 삼키기두 힘들다. 꿀꺽~
너 빨리 나와서 나랑 치과 같이 가자? 응? 가 줄거지? 헤헤.
친구들하고 오랜만에 돈암동엘 갔어.
한 거의 일 년 만에 갔나 봐. 집이 모두 이쪽들이라 거기까진 잘 나가지 않거든. 근데 오늘은 그냥 쇼핑하러 갔지 뭐. 사람 많더라. 어딜 가나 많긴 하지만.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더라. 그러니까 너 가기 전하구 입대하구 나서하구두 아마 한 개두 안 변했을 거야.
두어 시간쯤 돌아다니다가 순대+떡볶이+야채 볶음을 먹었어. 너 요거 먹어봤어? 맛있더라. 신림동에서 먹은 거보다 훨씬 더. 신림동은 순대촌이잖아. 그래서 맛있는덴 정말 찾기 힘들지만. 그래두 오늘 먹은 데는 좋았어. 그냥. 근데… 뜨거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괜찮겠지 싶어서 야채랑 순대랑 찍어서 입에 한입 물고 먹다가 순대를 깨무는 순간 드아아아. 넘 뜨거웠어. 뱉을 수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입천장이 까졌어. 급하기는 참, 나두. 거 빼고는 참 좋았는디. 히히.
글구 나서 스티커 사진을 찍었지 롱~ 뺏지두 만들었다. 두 번이나 찍었어. 갈색으로 한번 컬러로 한번. 근데 두장 다 맘에 안 들어. 한 장은 무표정에 화난 얼굴처럼 나오고, 또 한 장은 웃긴 했지만 표정이 좀 우습고. 아쉬웠지. 그래서 보낼까 말까 생각중야. 애인두 아닌데 보냈다가 혹 네가 오해받을까 싶기도 하구. 혹시 알아. 누구 소개시켜줄려는데 걸림돌이 되어버리잖어. 또, 보기 싫은 사진 보내는가 싶기두 하지. 이 버릇 여전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몰라.
나 낼 면접 보러 가. 네가 응원해 줘. 그럼 될지도 모르잖어.
떨지 말고 잘 보고 오라고. 지금 내겐 격려해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붙으면 붙는 대로 떨어지믄 떨어지는 대로.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는 둥. 진심이믄야 좋겠지만 진심이 아니어두 돼.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라면. 왜 이런 말이 듣고 싶은지 모르겠어. 아마 혼자인 게 싫은가 봐.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맘. 물론 동성이어도 상관없겠지.
진짜 졸립다. 잠이 올런지는 모르지만….
너두 잘 자. 좋은 꿈 꾸고.
1998. 9. 7.
Am 2시 좀 넘어서.
P. S. 잘 지내구 있는 거야? 궁금해서...
아픈 데는 없지? 감기는 완전히 나았어?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