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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동급부 Nov 13. 2024

해피 컨티뉴

삼철이에게.

나 어떡해. 아퍼서 미치겠다. 잘려구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아.
미치겠어. 어쩜 좋아… 어디가 아프냐구? 아마 알고 나면 분명 웃을 거야. 사랑니땜에 잠을 잘 수가 없어… 울 엄마가 사랑니 나면 철드는 거라고 하시던데. 철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사랑니가 나기 시작한 건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거든. 근데 이번엔 정말 조만간에 죽을 것 같이… 너무 엄살이 심했나? 여하튼 난 치과라면 정말 치가 떨려. 어려서부터 치과를 수도 없이 다녔거든 불과 작년 12월까지.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 달씩, 그래서 치과의 치자만 들어도 겁나고 무서워. 남들이야 적응할 때도 됐다지만 이게 어디 그거 하고 같니. 사랑니가 절반은 자랐어. 이미 삼분의 일 이상은 나와있고 나머지 부분이 잇몸을 뚫고 나오면서 이렇게 아픈 건가 봐. 잇몸이 퉁퉁 부어서 그쪽으로 뭐 먹지도 못해. 이러다가 나아지겠지 했는데 것두 아니야. 며칠 됐거든. 너무 아파 치과에 갈려구 했는데 것두 잇몸이 가라앉아야만 뽑을 수 있대. 그냥 하는 수 없이 잇몸 가라앉기만을 바랄 수밖에. 그동안에 난 죽는 거지… 끄악. 그리고 치과에 가면 또 죽고.

고등학교 때 치과에서 엑스레이 찍다가 사람 잡을 뻔했는데. 너 치과서 X-ray 찍어 봤어? 아마 당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어려서 단 음식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오히려 우리 오빠가 어려서는 껌하구 사탕을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그런 오빠는 딱 한번 치과에 갔었지. 사랑니 빼러. 나머지는 모두 멀쩡. 난 아무 잘못도 없는데… 사랑니 뺄 생각 하니깐 눈앞이 캄캄하다. 누구 같이 가줄 사람두 없구. 누구 손이라두 붙잡고 있으면 한결 나을는지 모르는데. 우리 엄마 이빨 뽑을 때는 항상 아빠가 함께 가셨거든. 그러면서 정작 딸내미 이빨 뽑는다는데 콧방귀만 뀌시고. 너두 한번 당해봐라. 이거다 완존히. 에고 이젠 침 삼키기두 힘들다. 꿀꺽~
너 빨리 나와서 나랑 치과 같이 가자? 응? 가 줄거지? 헤헤.

친구들하고 오랜만에 돈암동엘 갔어.
한 거의 일 년 만에 갔나 봐. 집이 모두 이쪽들이라 거기까진 잘 나가지 않거든. 근데 오늘은 그냥 쇼핑하러 갔지 뭐. 사람 많더라. 어딜 가나 많긴 하지만.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더라. 그러니까 너 가기 전하구 입대하구 나서하구두 아마 한 개두 안 변했을 거야.
두어 시간쯤 돌아다니다가 순대+떡볶이+야채 볶음을 먹었어. 너 요거 먹어봤어? 맛있더라. 신림동에서 먹은 거보다 훨씬 더. 신림동은 순대촌이잖아.  그래서 맛있는덴 정말 찾기 힘들지만. 그래두 오늘 먹은 데는 좋았어. 그냥. 근데… 뜨거울 거라 생각했었는데 괜찮겠지 싶어서 야채랑 순대랑 찍어서 입에 한입 물고 먹다가 순대를 깨무는 순간 드아아아. 넘 뜨거웠어. 뱉을 수도 없고. 그래서 그런지 입천장이 까졌어. 급하기는 참, 나두. 거 빼고는 참 좋았는디. 히히.

글구 나서 스티커 사진을 찍었지 롱~ 뺏지두 만들었다. 두 번이나 찍었어. 갈색으로 한번 컬러로 한번. 근데 두장 다 맘에 안 들어. 한 장은 무표정에 화난 얼굴처럼 나오고, 또 한 장은 웃긴 했지만 표정이 좀 우습고. 아쉬웠지. 그래서 보낼까 말까 생각중야. 애인두 아닌데 보냈다가 혹 네가 오해받을까 싶기도 하구. 혹시 알아. 누구 소개시켜줄려는데 걸림돌이 되어버리잖어. 또, 보기 싫은 사진 보내는가 싶기두 하지. 이 버릇 여전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몰라.

나 낼 면접 보러 가. 네가 응원해 줘. 그럼 될지도 모르잖어.
떨지 말고 잘 보고 오라고. 지금 내겐 격려해 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붙으면 붙는 대로 떨어지믄 떨어지는 대로. 더 좋은 곳으로 갈 거라는 둥. 진심이믄야 좋겠지만 진심이 아니어두 돼.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이라면. 왜 이런 말이 듣고 싶은지 모르겠어. 아마 혼자인 게 싫은가 봐.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맘. 물론 동성이어도 상관없겠지.

진짜 졸립다. 잠이 올런지는 모르지만….
너두 잘 자. 좋은 꿈 꾸고.


1998. 9. 7.
Am 2시 좀 넘어서.



P. S.  잘 지내구 있는 거야? 궁금해서...
아픈 데는 없지? 감기는 완전히 나았어?
묻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국민학교 때로 기억한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큰형과 함께 봤다. 형과 나는 아홉 살 차이다.

대단히 오래된 영화로 대부분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지구를 구할 영웅 존 코너의 탄생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가 제거해야 할 대상 사랑에 빠진다. 결국 터미네이터가 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형에게 "터미네이터가 안 왔으면 얘도 안 태어나는 거잖아. 뭐야 이거?” 했.


격려, 위로,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맘...

면접 전의 일시적인 격려와 위로보다 그녀에게 지속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편지를 읽고 영화 터미네이터가 떠올랐다. 뭐야 이거?


역설적이게도 입대 전 내가 그녀에게 오지 않았다면 그녀의 외로움도 그리움도, 누군가가 있다고 확인하고 싶은 맘도 이토록 절실하지 않았을 것을… 내 집에 연락을 하고, 호출과 외출을 기다리며 가까운 곳으로 배치되기를 바라는 생경한 바람도 품지 않았을 것을…


26년 전으로 돌아가 우리의 만남을 제거한다면 그녀와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아내와 간혹 이런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그때 우리가 헤어졌다면? 그날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면?


한참 후의 얘기긴 하지만, 제대 후에 서로 하게 헤어지기로 작정하고 수개월 연락을 하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리즈의 '그댄 행복에 살 텐데...'라는 노래가 딱 내 얘기처럼 가슴을 파고들어 발신인을 밝히지 않고 곡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나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기에 이를 계기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주 가끔 어디선가 이 노래가 흐르면 '인생을 바꿔버린 무자비한 곡'이라며 한탄하는 나의 어깨를 파고드는 아내의 주먹, 동시에 귀를 파고드는 말이 있다.


"그래서 지금 쭈니가 있잖아!!!"


가정에 정답이 있을 리 없지만 언제나 하나의 결론만큼은 명확하. 

함께 했기에 우리의 아이가 있다. 다른 이성을 만나 결혼을 했어도 자녀는 있겠지만 쭈니는 아닐 것이다. 욕심 없는 사람이 없고 그것이 끝이 없는 게 사람이지만, 난 진심으로 내 아이에 대한 부족함이 전혀 없다. 이대로 최고이고 지금이 그저 가장 사랑스러울 뿐이다.


내 위로 두 명의 형이 있지만 3형제의 자녀들 중 아들은 쭈니가 유일하다.

어머니께서는 하나뿐인 아들 손주를 향해 "저눔이 없었으믄 우쨌으꺼시냐 우쨌으꺼시냐"를 볼 때마다 말씀하신다.



존 코너는 지구를 구했고 쭈니는 가문을 구했다.

역설적이게도 터미네이터는 종결자가 아니라 선구자였기에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그렇다면 내가 터미네이터이고 은경이가 사라 코너인 셈이다.

아내와 나도 역설적 아픔을 견뎠기에 우리 부부의 삶이 해피 컨티뉴인가???



I'II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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