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봐. 벌써…
아침저녁으로 얼굴에 느껴지는 바람이 꽤 서늘하거든. 찬 바람이 부니까 왠지 마음이 심란하다. 남자는 가을을 탄다던데. 난 남자두 아닌데 왜 이러지? 마음도 그렇고 해서 오랜만에 원두커피를 내려 먹었어. 너 혹시 생각나니? 신촌 예다원에서 먹었던 커피. 헤이즐넛. 커피 향 좋지. 그거 내려 먹었거든. 집안에 온통 커피 향이 퍼져서 기분이 참 좋았어. 내가 젤 좋아하는 커피거든. 향이 좋아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맨날 아줌마 커피(일명 다방커피)만 먹다가 오랜만에 원두커피를 먹어서 그런지 머그잔으로 가득 두 잔이나 마셨어.
커피를 마시고 도서관에 가서 지금 보는 책 세 권을 빌려와서 읽다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고 TV를 좀 보고 샤워를 하고 하루일과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났어. 편지를 쓴 지 꽤 오래되었구나. 하고.
오늘이 벌써 토요일인데 넌 자대 받아 갔겠지?
네가 어느 곳으로 배치를 받았는지 난 지금 알 수 없지만, 이 편지가 네 손으로 가는 날이면 아마 알고 있겠다. 궁금해 어디로 가게 되었는지. 혹 호출이라도 할까 싶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그만큼 행운을 빌어 주었으니깐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생각하고, 나중에 주소 받으면 그때 또 얘기하지 뭐
... 영화얘기, 브래드피트 잘생겼다는 얘기 / 영화에서 브래드피트 잘 생겼다는 얘기...
나 요즘 뭐 하고 지냈나 궁금하지? 아님 말구… 여름이 지나서 그런지 몇 군데서 면접을 본다길래 두어 군데 이력서를 내놨어. 근데 막상 이 일을 그만두고 나면 섭섭할 거 같애. 나한테야 이보다 더 편한 곳이 어디있다구.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일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구 그냥 웬만큼의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깐… 그래두 어차피 오래 몸담을 수 없으니깐 어차피 알아보긴 하지만 말야. 그리구 뭘 해볼까 생각 중이야.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든 건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긴 첨이야. 얼마를 갈런지는 모르지만. 이번엔 뭘 배워볼까. 우습다. 이런 말하는 게.(뭘 배워본적두 별루 없으면서 말야) 백화점 문화센터에 좋은 강의가 있을까 싶었는데 것두 아니더라. 좋은 것은 거의 오전이나 오후 시간 밖에 없구 저녁엔 없으니 말야. 이러다 또 흐지부지 되는 건 아닌지 몰라. 그러기 전에 얼른 찾아봐야지.
음… 그리구 별일 없었다. 맞아, 소설책을 읽고 있어. ‘너희가 군대를 아느냐’를 다 읽어 2권을 보려 했지만 대출이 되어있는 바람에.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듯한 제목을 골라서 읽고 있는 중이야. ‘어디에도 없는 그대’ 3권을 읽고 있어. 4권짜리 거든… 내용이 얽히고설켜 좀 답답하고 복잡스럽긴 하지만 읽을만해. 소설이야 다 그렇고 그렇지 뭐 너한테 편지를 다 쓰고 또 읽을 참이야. 오늘 낮에 빌려와서 벌써 절반이나 읽었어. 집에 있기도 무료하고. 뚜렷한 약속도 없고 해서.
오랜만에 편질 쓸려니 입에서만 맴돌고 두서가 없는 글이 되었네. 담에는 좀 더 신경 써서 편지 쓸께, 네 형이나 너한테서 연락오기만을 기다리며… 언젠가는 부치겠지 뭐.
보고 싶은 우리 철이. 군생활 열심히 해!
은경이두 열심히 살고 있을께…
1998. 9. 5+1.
a. m. 2시 십오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