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은경에게…
잘 지내고 있니? 여긴 충주야.
형한테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자대에 가진 않고 대기 중이지.
얼마후면 이곳 충주 비행단의 헌병대로 가게 될 거야.
이 편지를 네가 읽을 때쯤이면 난 아마 군대란 곳에 와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야.
9월 23일이 무슨 날인줄 알지? 자대에 가면 편지 쓸 시간도 없데, 그래서 네 생일축하를 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편지 쓰는 거야.
먼저, 생일 정말 축하해! 마음 같아서는 선물도 해주고 싶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싶지만 이렇게 글자 몇 자 그적거리는 말뿐인 축하를 해줄 수밖에 엇구나. 정말 미안하고… 너에게 편지밖에 보낼 수 없고,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네 편지 받아본지도 꽤 되었구나. 네 편지 읽는 낙으로 살았는데… 19일에 자대로 가거든, 이제 자대에 가면 편지 받아볼 수 있으니까 그때 많이 보내, 알았지? 네가 보냈던 편지, 복권, 돈, 껌 그리고 신문 스크랩 모두 잘 받았고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레모나 안 걸리고 하루에 하나씩 네 생각하면서 복용하고 있지. 근데 돈은 왜 보냈어 바보야! 나 돈 있어. 그럴 돈 있으면 너 소시지나 사 먹지. 하하~
참, 면회는 자대배치받으면 아무 때나 된다더라. 오면 나야 좋지만 충주까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리고 추석 때 못 나갈 것 같아. 자대 가서 6주 후에 특박이래. 아! 미치겠다. 은경이 보고 싶어 죽겠는데…
특박 나갔을 때 말이야, 공항에서 너랑 헤어질 때 나 울뻔했다. 눈물 참느라고 정말 혼났어. 지금도 많이 보고 싶다. 내가 네 생각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르지? 특박 갔다 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더라. 너랑 같이 있고 싶고,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도 이제 갓 훈련소를 수료한 이등병에게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 특히, 네 삐삐에 음성 못 넣어 줘서 정말 미안했어. 나는 너에게 받기만 하고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해준 게 없구나! 더군다나 생일인데…
에이! 살기 싫다. 마누라 생일에 선물도 못해주고, 그래도 나중에 네가 시집오면 잘해줄게, 그러면 되지? (^-^)
아르바이트 잘하고 있니? 적성에 딱 맞는 일이라고 말은 그렇게 해두 많이 힘들지? 네 편지에서 가끔은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어떤 이유로 인해 네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너의 그런 힘겨움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구나. 그래서 한없이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밖에 있기라도 하면 너 힘들 때, 울고 싶을 때, 좁고 초라한 어깨지만 그 어깨라도 내어주고 등이라도 다독거려 줄텐데…
하지만, 네가 정말 힘들 때는 나를 조금만 생각했으면 좋겠어. 비록 못나고 한없이 모자란 나이지만 그래도 늘 너를 생각하고, 너로 인해 힘을 얻고 그리고 너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군대란 곳에 와서 배운 게 딱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소중함’이라는 말뜻을 깨달았다는 거야. 나를 아는 모든 사람, 가족 그리고 은경이가 나에게 있어서, 이 초라하고 비참한 군바리 이등벙에게 있어서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 …
기운내고 또 힘들고 슬플 때가 찾아오면 너를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 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생일 축하하고, 다음 맞는 생일에는, 물론 어쩔 수 없이 그때도 군바리겠지만 좀 더 신경 쓸게.
정말 너무 보고 싶다. 다시 볼 때까지 더욱더 간강하고 예뻐져, 알았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너 웃을 것 같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좀 더 가까워지고, 정말로 진지하게 내가 너에게 이 말을 해도 전혀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을 때, 그때 말할게.
꼭 그날이 와야 하는데…
그럼 잘 있어. 안녕.
1998. 9. 13.
삼철
P. S. 너 핸드폰 하나 사라.
그래야 나중에 전화할 수 있을 때 통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