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 끝나는 날
처음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머나먼 여행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길옆 돌부리, 풀잎에도 그 사람 떠 오르고
스쳐가는 바람에도 그 얼굴 그립습니다.
오늘 밤에도
부르튼 발과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렇게 그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발에는 피가 흐르고
몸에는 땀이 흐르고
눈에는 눈물이 흐르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합니다.
피도, 땀도, 눈물도, 아픔을 느끼는 것조차도
모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건
그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처음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그네 된 지금에는 길고 긴 여정에
한줄기 희망으로 내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그녀를 너무도 사랑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언젠가 먼 여행 끝나는 날
그녀에게 말할 것입니다.
정말 미치도록 그리워했다고
사랑한다고,
내 여자가 되어 달라고…
내 먼 여행 끝나는 날.
연재를 시작하기 위해 편지들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찾은 자작 시입니다.
아내에게 보낸 어떤 편지에 동봉되어 있었겠지만 짝을 잃고 혼자 떨어져 있더군요. 이때 쓰지는 않았지만 왠지 훈련소 편을 마무리하는 글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색하고 유치해도 이제 갓 여정을 시작한 시기의 간절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고 느꼈습니다.
부족한 연재를 부족한 시로 마무리하는 마음 송구합니다.
좋게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약간의 준비를 거친 후에 '은경이 삼철이 2 - 이병 편'으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가을의 끝을 붙잡고 있어서 인지 요즘 시가 좋아지네요.
이병 편에서는 가끔 시를 곁들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