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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열역학(1)

1편

by 나세진

* * *


‘엔트로피’

푸른 녹음이 짙게 깔린 교정에 햇살이 가득 넘실거렸다. 좁은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공기가 상쾌하게 교실 속을 순환했다. 나는 엔트로피란 글자를 칠판에 대문짝만하게 썼다. 학생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나와 글자를 번갈아 보았다.

“선생님, 저 그 말 들어봤어요. 요즘 뉴스에 많이 나오잖아요.”

“네, 맞아요. 여러분들이 최근에 지겹도록 듣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길을 가다가 엔트로피 수치를 나타내는 현황판이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걸 우린 쉽게 볼 수 있지요. 혹시 이 말뜻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아니요!”

학생들은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아니요’라고 천진난만하게 외쳤다. 뒤이어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교실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갔다. 소란스러운 틈바구니에서 연희가 입을 열었다.

“저, 부모님께서 설명해 주셔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하하하, 그건 네가 무식해서지.”

윤선이가 연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끼어들었다.

“뭐라고? 선생님! 남윤선이 저한테 자꾸만 시비를 걸어요.”

“윤선이는 수업 끝나고 선생님 자리로 오도록 해! 자,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나는 분위기를 차분히 진정시켰다. 엔트로피라는 말이 우리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는 걸 아이들이 이해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이 엔트로피라는 건 말이죠, 에너지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쓸모없는 에너지가 늘어나는 정도를 숫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열(熱)에너지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에서 클라우지우스라는 과학자가 제안한 말이죠. 지금은 열에너지는 물론이고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 말이 되었어요. 넓은 의미로는 물질이 불규칙한 방향으로 뒤섞여 ‘무질서하다’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아요. 좁은 의미로 우리 교실을 살펴볼까요? 친구를 괴롭히고, 서로 싸우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일이 우리 교실에서 많이 일어난다면 어떨 것 같나요?”

“화날 것 같아요.”

“맞아요. 화가 나서 온몸에 열이 나고 짜증도 나겠죠. 우리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에너지가 소모되어요. 그중에서 나쁜 일이 일어날 때도 에너지가 쓰이겠죠? 그때 ‘짜증’이라는 쓸모없는 형태의 에너지도 동시에 증가합니다. 결국 우리 교실의 도덕 엔트로피가 올라갈 거예요. 여러분들은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니까 이것만 기억해두세요. 바르지 못한 행동으로 남을 짜증 나게 한다면,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걸요. 어떤 엔트로피이건 한 번 증가하면 절대로 다시 줄어들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가 교실의 엔트로피를 늘이지 않도록 서로 잘 지내야 해요.”

“왜 엔트로피는 줄어들지 않나요?”

“그것은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에요. 싫었던 기억은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과 같죠.”

“아하, 그렇구나.”

“엔트로피를 확인할 수 있도록 4학년 3반의 도덕 엔트로피 현황판을 교실 벽에 붙일 거예요.”

“와아, 선생님이 직접 만든 거예요?”

“그럼요. 짜증을 감지하는 센서로 만들었죠.”

과학의 발달과 맞물린 인간의 이기심은 지구와 사람을 병들게 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에너지를 썼다. 그에 따라 우리는 또다시 환경 오염을 줄이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며 에너지를 써야 했다. 이는 엔트로피의 증가로 이어졌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가 병들자 인심도 점점 이기적으로 변했다.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여 전 지구적으로 부족한 식량을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 지켜야 할 예절은 눈앞에 놓인 빵 한 조각 앞에서 질서를 잃은 채 사라져갔다.

그나마 지성인들의 통곡 소리가 울렸기에 초국가적 세계정책본부가 우여곡절 끝에 세워졌다. 에너지의 찌꺼기 속에서 정부는 엔트로피 증가를 환경, 도덕 등 여러 분야로 나누어 관리했다. 길거리 곳곳에는 엔트로피의 수치를 나타내는 현황판이 세워졌다.



* * *


“선생님! 남윤선이 또 저를 괴롭혀요.”

연희가 울상이 되어 수업 연구실로 뛰어 들어왔다. 내가 교실을 비운 사이 윤선이가 연희를 괴롭혔다고 쉽사리 추측할 수 있었다. 얼른 연희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교실의 도덕 엔트로피 현황판에는 1이었던 수치가 1.3으로 바뀌어 있었다.

“남윤선!”

잘못을 되풀이하는 윤선이의 태도에 목소리를 높였다. 윤선이는 연희가 자신을 일러바칠 것이란 예상쯤은 미리 했다는 듯이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걸어왔다.

“무슨 일인지 연희가 먼저 말해 보자.”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려는데 도마뱀이 튀어나왔어요. 남윤선이 장난친 거예요.”

매번 윤선이에게 시달리는 연희를 생각하자, 이번엔 가볍게 넘겨선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가방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도마뱀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어? 그리고 도마뱀도 가방 속에 있다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어. 이미 여러 번 경고했기 때문에, 이번 일은 규정대로 처리할 거야.”

“네….”

규정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직감한 윤선이는 한나절 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마음이 약해졌으나, 다시금 마음을 독하게 잡았다. 방과 후 윤선이와 나는 단둘이 교실에 남아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상대방을 꾸준히 괴롭히는 건 폭력이야. 왜 유독 연희만 괴롭히는 거야?”

“저어… 선생님. 실은….”

윤선이는 연희를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부도 잘하고 항상 모범적인 연희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어서 일부러 괴롭히며 다가갔던 것이다.

“윤선아, 그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닌 것 같구나.”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저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저를 봐주지 않을 것만 같아요. 삼촌은 매일 저를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놈이라고 부르는걸요. 규정대로 처리하면 삼촌이랑 상담하겠죠? 그것만은 안 돼요. 저 쫓겨나요.”

눈을 질끈 감았다. 윤선이는 일곱 살,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고,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삼촌은 윤선이를 짐짝처럼 여기며 매일 구박했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남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눈앞이 눈물로 흐려지려 했다. 눈물이 담고 있는 의미가 동정심으로 왜곡될까 두려웠다.

“사람의 쓸모는 그 사람의 행동으로 정해지는 거야. 처음부터 쓸모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어. 네가 많은 사람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너는 모르고 있구나.”

“정말요? 제가요?”

윤선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재차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국어 시간이었다. 뉴스의 구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한 뉴스에서는 오염된 지구가 얼마나 무질서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려주었다. 태평양의 생태계는 자정능력을 잃었고, 해류가 순환하면서 동해의 생태계도 파괴되어갔다. 해안에 인접한 도시는 바다에 서서히 잠겼다. 오존층의 두께도 무분별한 에너지의 사용으로 얇아졌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가 타임머신을 개발해서 과거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윤선이가 손을 번쩍 들며 타임머신 만들기를 제안했다.

“우리 윤선이의 수업 태도가 아주 좋아졌어요. 과거는 지금의 상태보다 엔트로피가 적은 상태죠? 엔트로피는 항상 커져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엔트로피가 적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은 아쉽게도 만들 수 없어요.”

“정말 방법이 없나요? 선생님은 만물박사잖아요.”

윤선이의 말에 교실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지구의 생명이 저물어가는 시대를 사는 아이들의 눈빛을 마주하니 죄책감이 느껴졌다.

“우선, 이런 상황을 만든 어른 세대로서 여러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방법이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에요. 현재로선 쓸모 있는 에너지를 아껴 사용하는 게 최선입니다.”

“어떤 방법인가요? 알려주세요! 뭐라도 시도해봐야 할 것 아니에요? 그렇지 얘들아!”

윤선이는 여느 때와 달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환경 문제를 걱정하고 해결하려는 새하얀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하나의 고립된 세계예요. 이걸 고립계라고 불러요. 어렵죠? 쉽게 설명하자면 뚜껑으로 완벽하게 꽉 막힌 빈 병과 같은 거예요. 병이 막혀 있어서 바깥의 그 어떤 에너지도 들어올 수 없죠. 고립계에서는 엔트로피가 증가할 수밖에 없어요. 다만 뚜껑을 열어서 외부에서 에너지를 들여온다면 엔트로피를 줄일 수 있어요. 이처럼 다른 우주로부터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면 우리 우주의 엔트로피를 줄일 수는 있겠죠.”

“우와! 멋져요!”

들떠서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하지만 과연 다른 우주가 있을까요?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무슨 수로 그 우주에서 에너지를 얻겠어요?”

피부 보호 고글 속으로부터 아이들의 풀 죽은 얼굴이 드러났다. 얇아진 오존층을 투과한 자외선이 육지에 노출된 모든 생명체에게 피부병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수업 중에도 특수 제작한 고글을 쓰고 자외선 차단복을 입어야 했다. 고글은 지구인 모두를 체력적으로 힘들게 했다.

“다른 우주에 사는 외계인들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쓰는 게 어떨까요?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윤선이의 황당한 말에 대꾸할 힘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윤선이가 기특했다. 윤선이를 바라보는 연희의 시선에는 놀라움이 가득해 보였다. 짓궂게만 보였던 윤선이가 달리 보였을지도 몰랐다.

“좋은 생각이네요. 우리 반에 지구를 구할 영웅이 나올 수도 있겠는데요?”

교실의 분위기가 훤히 밝아졌다. 나는 윤선이 쪽을 향하여 웃어 보였다.

늦은 밤, 나는 촛불로 방을 밝혔다. 정부는 엔트로피의 증가를 관리하기 위하여 밤에는 부싯돌을 이용하여 촛불을 켜도록 장려했다. 나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생각에 잠겼다. 윤선이의 제안에 따라 또 다른 우주에 있는 외계인에게 보낼 편지를 써오라는 숙제를 냈다. 괜한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며 피식거렸다.

방에 홀로 촛불을 켜고 있는 게 무서웠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그림자놀이를 했다. 손으로 독수리 모양을 만들어 움직여보았다. 천장에 비친 독수리는 근사한 날개를 퍼덕이며 20년 전 ‘멸종했다’라는 사실을 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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