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 * *
숙제를 걷었다. 제멋대로 휘갈겨 쓴 연필 자국이 정말로 외계인과 소통할 수 있는 문자로 보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편지를 썼군요. 선생님은 무척 기쁩니다.”
“선생님!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편지글을 전달할 거예요?”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4학년 아이들의 동심에 맞장구를 치는 노력은 이쯤에서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실은 그 점이 문제예요….”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아이들의 표정에는 실망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교실은 아이들의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때 윤선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TV에서 봤는데요, 외계인들이 유명한 세계문화유산에 글씨를 파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적이 있대요.”
“야, 그럼 네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거야? 비행기 탈 돈은 있고?”
반 학생들은 윤선이의 말에 비아냥거렸다. 윤선이는 평소 사고뭉치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더욱 거세게 윤선이를 몰아붙였다. 윤선이는 씩씩거리며 아이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모두 조용! 여러분들의 비아냥거리는 행동으로 도덕 엔트로피 수치는 잠깐 사이 올라갔어요. 현재로선 누구도 자연의 엔트로피 증가를 막을 수 없어요. 결국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에너지를 잃고 정지하게 되겠죠. 그런데도 인간의 삶이 빛날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
“그건 해가 거의 저물어가는 산속에서도 다리를 다친 동료를 챙기려는 마음, 바로 이런 아름다운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잃어가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갈고 닦으려고 성인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거예요.”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윤선이는 기죽은 표정을 지으며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나는 윤선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선이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가지런히 한 데 모아 가방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와 창가로 다가갔다. 아이들의 편지로 유리창을 장식했다. 창에 붙은 아이들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비록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들과 선량한 사람들이 뒤섞여 무질서함이 늘어나는 시대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사람다운 빛을 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빠른 속도로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다른 우주의 생명체가 팽창하는 우리 우주로 들어올 여지가 없어 보였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하며 ‘도와달라’는 말을 부호화시켜 전파를 날렸다.
* * *
수백 개의 드론이 아침 영양 캡슐을 나르며 이집 저집 날아다니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물 한 컵을 들고 창가로 갔다. 순간 나자빠질 정도로 놀라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나는 유리크두블라나에서 온 생명체입니다. 유리크두블라나는 당신네 관점에서 또 다른 우주라고 부를 수 있겠네요. 오늘 저녁 8시, 학교에서 남윤선 학생과 함께 선생님의 교실에서 뵙겠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SOS모양으로 이어붙인 편지 아래 외계인이 직접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의 우주와는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과 거기로부터 온 생명체가 한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출근길이 끝날 무렵, 학교 정문이 유달리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당기는 것 같았다. 외계인이 두렵기도 했지만, 지구의 엔트로피를 줄이기 위해서라면 거스를 수 없는 만남이라 생각했다. 교실에 도착하니 윤선이가 책상에 앉아서 손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윤선아, 안녕. 일찍 왔구나. 캡슐은 먹고 왔니?”
“삼촌이 빼앗아 가서 못 먹고 왔어요.”
몇 해 전부터 식량은 배급제로 바뀌었고, 캡슐 형태로 만들어져 나왔다. 캡슐은 매일 드론으로 집마다 배송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의 아침을 습관적으로 방치하는 어른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윤선이를 데리고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 냉장고를 열어 식사 한 끼의 영양소가 들어있는 영양 캡슐을 꺼내 윤선이에게 내밀었다.
윤선이는 멋쩍게 그것을 받고선 입으로 넣었다.
“방과 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니?”
“거의 휴대전화만 봐요. 삼촌은 매일 밤늦게 오셔서 눈치 볼 필요도 없어요.”
아이의 입을 통해 느껴지는 시큰둥함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더는 묻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윤선이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외계인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선생님이랑 같이 학교에 남지 않을래?”
“선생님 웬일로 농담을 하시네요?”
“농담이 아냐.”
나는 허풍선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발을 동동 굴리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윤선이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좋아요. 심심하던 차에 잘됐네요.”
나는 웃으며 윤선이 앞으로 오른 주먹을 가볍게 내밀었다. 윤선이는 자연스럽게 내 주먹에 자신의 오른 주먹을 대었다.
* * *
방과 후를 알리는 종이 우렁차게 울렸고, 아이들은 수박씨처럼 운동장을 성기게 메웠다. 나는 자동 경비 시스템에 야간 근무 일정을 입력했다.
밤 8시에 정말 외계인이 올지 반신반의했다. 저녁때가 되자 나는 학교로 영양 캡슐 두 개를 주문했다. 십 분 후 드론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정확히 날아왔다. 윤선이와 캡슐을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학교 다니는 건 재밌니?”
“그저 그래요.”
“윤선아, 만약 정말 외계인을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은 있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말이 있긴 해요.”
윤선이와 함께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나는 간이 발전기를 만드는 실험을 준비했고, 윤선이는 전자 교과서를 충전했다. 학교 건물 밖으로 교실의 촛불 빛이 은은하게 새어 나갔다.
여덟 시가 되기 전,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는 소리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초조하고 긴장되는 마음이 더해져 시계 소리는 더욱 요란스럽게 느껴졌다.
“선생님! 여덟 시예요.”
외계인의 존재를 잠시나마 믿었던 나 자신을 스스로 질책했고, 더불어 윤선이를 괜히 남겼다는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윤선이에게 할 말이 정돈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교실의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창문 쪽으로 시선이 빼앗겼을 때 외계인 한 명이 교실 한가운데 책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외계인의 생김새는 영화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외계인의 온몸은 무지갯빛이 뒤섞여 울렁거리는 홀로그램처럼 빛났다. 우리는 말문을 열 수 없었다.
“저는 유리크두블라나에서 온 라이카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니 그런데 한국말을 정말 잘하시네요?”
두려운 상황에서도 궁금한 걸 놓칠 리 없는 윤선이가 외계인에게 물었다.
“지구상의 여러 언어를 살펴보니 한글이 의사소통의 도구로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의 모양을 본떠서 글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발음을 익히기도 쉬웠고요. 굉장히 과학적이라서 감탄했습니다.”
라이카네 별에서 만든 ‘에너지 그물’로 비행체를 둘러싸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루 만에 지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라이카는 말했다. 모든 생물 위에 군림해온 인간들이 쌓아 올린 문명을 생각하면,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생명체란 존재하기 힘들다고 줄곧 여겨 왔다. 그런 생각이 보기 좋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