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 * *
“복수해줄까?”
“어떻게? 파스 좀 살살 붙여.”
고통스러워 앓는 소리를 연달아 내는 신재율의 눈빛은 여전히 철없는 아이와 같았다.
“방법이 있어.”
“무슨 수로? 나 말고 정·재계의 연줄 있냐?”
“없어. 전화 한 통이면 돼.”“믿는 구석이 있나 본데? 어디 한 번 해봐.”
휴대전화를 꺼내 112로 전화를 걸었다. 그놈은 내가 어떤 번호를 누르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수고하십니다. 지금 어떤 남자가 첨성대 안에 사람을 묶어 놓고 있어요. 빨리 가보세요.”“뭐라고요? 정말입니까?”
“네, 빨리 와주세요.”
전화가 끊기며 나오는 신호음에 맞춰 그놈은 나를 비웃었다.
“이봐, 고작 112였냐? 나를 개 잡듯이 팬 놈들 말하는 거지? 그 자식들이 정말 거기 간 줄 어떻게 알아? 나 지금 내가 칠 장난을 빼앗겨서 기분이 나쁘다고.”
“봤으니까…. 보스 얼굴에서 뱀 같은 네 얼굴을 봤으니까…. 분명 지금쯤 첨성대 안에 자신의 애인을 묶었을 거야.”
그놈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놈은 입을 굳게 다물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가 인상을 쓰는 만큼, 자신을 부인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나 역시 굳게 입을 앙다물고 그놈의 시선을 그대로 받았다. 침묵 속의 대치 상황을 깨고 그놈은 가벼운 한숨을 쉬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뭐 좋아, 대놓고 날 모욕한 대가로 내기해. 반드시 해야 하는 거야. 첨성대에 있는지 말이야. 그런 저급한 지방 깡패와 나는 결이 다르다고. 내 오락을 비아냥거리지 말라고 예전부터 경고했을 텐데.”
신재율은 모종의 계급 의식을 지녔다. 평범한 서민을 떠나서, 범죄자를 자신과 동급으로 나란히 놓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었다. 자신의 만행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여, 상대방을 무참히 희생시킨 놈의 이력이 떠올랐다. 나탈리아에게 말이다.
“난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내기는 받아들일게.”
“내가 이기면 너를 첨성대에 묶고 백 번 똥침을 놓을 거야. 내가 엽기적인 놈인 건 알지? 탈장되는 게 무섭지 않아? 후회되면 지금이라도 빌어.”
예상했던 비열함과 졸렬함이 묻어나오는 제안. 난 그걸 받아들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침을 삼키며 관음보살에게 도와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넌 뭘 걸 거냐?”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우리가 맺었던 계약의 파기, 그리고 나탈리아에게 네가 저질렀던 일에 대하여 삼배구고두례를 하며 사죄할 것.”
“삼배 뭐? 그건 또 뭐야? 그리고 왜 두 개나 요구해?”
“그 정도는 되어야 조건이 맞는 것 같아서.”
“끝까지 가보자는 말이군. 좋아.”
* * *
어떤 사람은 똥침 백 번이 무겁다고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 가치의 저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놈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빨리 수신하길 채근했다. 이번 전화 한 통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물리적 고통을 받을 수도 있었다. 지더라도 비루함을 보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안녕하세요. 첨성대 일로 신고하셨던 분이죠?”
즉시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 경찰의 목소리가 그놈 귀에 선명하게 들리도록 했다.
“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남자는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아휴, 우리 문화재 안에서 그런 추태가 도대체 뭐랍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놈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진땀은 안개비처럼 서서히 놈의 얼굴을 적셨다.
“야, 친구끼리 장난으로 내기한 걸 갖고 왜 이렇게 진지하게 굴어? 진짜 어떻게 안 거야? 피곤하니 푹 쉬, 윽!”
나는 그 녀석의 뺨을 왼손으로 후려갈겼다. 순식간에 붉게 물든 뺨을 비비면서 그놈은 ‘싫다고!’를 연발로 외쳤다.
이미 떡갈비 다지듯 몽둥이로 다져져 만신창이가 된 몸이라, 그놈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경주에서 방음이 가장 잘 되는 방에서 그의 비명은 공허하게 맴돌 뿐이었다.
“그래,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맞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 얘는 예전부터 내 통제를 벗어난 손이야. 문제도 잘 찍고, 아마 네 얼굴도 잘 찍겠지?”
천수관음을 본 후로, 여태껏 오른손으로 사람을 때려본 적은 없었다. 오른손은 항상 불안함을 안고 있어 나를 망설이게 하는 손이었다. 오른손을 들자 그놈은 잽싸게 무릎을 꿇었다.
“너, 우리 아버지한테 말하면 죽는, 윽!”
오른손은 참지 못하고 내 의지를 벗어났다. 놈은 비칠비칠 쓰러졌다.
“사과할 사람의 이름, 잘못한 일을 빠뜨리지 않고 말해. 네 추태에 가담한 공범도 빠짐없이 말하고. 아쉽게도 이번 여행에 네 비서는 안 따라왔네?”
그놈은 끙끙대며 체념했다.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세워 놓고 화면을 그놈에게 고정했다.
“나탈리아… 내가 사람들을 시켜서 그 소문 퍼뜨렸어. 네가 매일 나한테 똥침을 당하면서 즐거워하는 마조히스트란 걸. 손가락으로 맨날 찔렀던 곳을 쑤시니 탈장이 됐다는 걸. 하하하하. 말하고 보니 너무 웃기네. 장난이 너무 심했지? 용서해줘.”
단순히 장난만 좋아하는 놈이 아니었다. 성 인지 감수성 교육까지 받아야 할 놈이었다. 왼손은 차분하게 영상 녹화 종료 버튼을 눌렀고, 동시에 오른손은 한 번 더 그 녀석의 왼뺨을 후려갈겼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오른손이 참지 못하고 한 일이었다.
“장난도 정도껏 치자. 이건 해서는 안 될 폭력이었어. 선을 넘었다고. 자, 이제 사죄의 절을 세 번 해야겠지? 머리를 찍는 건 봐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