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 * *
모험을 감행했다. 믿는 구석은 마련해 두었다. 미세한 접촉만으로도 상대의 의식을 잃게 하는 전기 충격기, 버튼만 누르면 경찰에 연락이 닿게 하는 휴대전화, 마지막으로는 관음보살께 간곡히 드렸던 기도였다. 음습한 골목 속에 외롭게 빛을 만드는 가로등이 서 있었다. 안개가 가로등의 불빛과 마찰하여 희뿌연 세상을 만들었다. 어두운 쪽에서 인상이 험악한 남자 셋이 나타났다. 모두 가죽점퍼를 입고 손에는 너클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어두운 골목으로 안내했고, 골목 한가운데 한갓진 폐창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외부로 새지 않을 것 같았다. 골목은 어두움 그 자체였다. 닭살을 돋우는 금속성과 함께 문이 열렸다. 얻어맞아 초주검이 된 그놈이 의자에 묶여 있었다.
“데려왔습니다, 형님.”
“경찰을 끌고 오진 않았겠지?”
보스로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목소리는 이외로 나긋나긋했다.
“보다시피요. 근데 저놈이 뭘 잘못했죠?”
“내 애인한테 더러운 장난을 쳐서 손 좀 봐줬지.”
보스의 애인으로 보이는 여자의 표정이 한껏 이지러졌다. 담배를 물며 불량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그놈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훤히 그려졌다. 그놈이 사찰 경내를 두리번거리다 보스의 애인을 본 찰나의 순간을 잘 포착했어야 했는데. 분명 똥침을 시도했을 것이다. 나를 방해물로 여겼겠지.
“인과응보죠, 뭐. 당신들한테 안 걸렸으면 저놈 분명히 여자분 데리고 첨성대로 갔을 거예요.”
“첨성대? 거긴 왜?”
“그 안에서 사람 묶어 놓고 똥침 놓는 게 저 녀석의 경주 여행 로망이거든요. 저도 저 골칫덩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릴 있다나 뭐라나.”
보스가 혀를 날름거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옆에 있던 애인을 흘끔 바라보았다. 그녀는 담배 연기로 도넛을 만들며 보스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저거 완전 미친놈 아냐?”
보스의 부하들은 소매를 걷었다. 살갗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핏줄이 금강역사를 떠올리게 했다. 관음보살께서 내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다는 확신에, 오른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 잠시만요. 얘 잘못 건드리면 아저씨들 다 죽어요. ○○정유회사 재벌 2세거든요. 지금까지 곱게 자라서 맞아본 적이 없을 텐데 아저씨들이 처음으로 참교육시켜주셨네요.”
“뭐, ○○정유? 사실이냐?”
그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들릴락말락 한 말로 수군거렸다. 보스로 보이는 녀석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에 잠긴 눈을 하고 있었다. 초주검이 된 그 녀석에게 찬물 한 바가지를 뿌렸다. 풀어 주면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고서야 우리는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덧붙여 각서에는 10억의 현금을 주겠다는 말도 빠지지 않았다.
“빨리 데리고 꺼져. 이 정도로 끝내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
나는 피투성이가 된 신재율을 얼른 들쳐메고 밖으로 나갔다. 보스의 애인을 건드린 대가는 금강역사의 몽둥이찜질이었다.
“첨성대에서 온종일 별자리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는데 말이야. 억, 아파!”
“업혀 가면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너 그거 선 넘은 거야. 묶어 놓고, 똥침이라니, 그건 범죄라고. 더군다나 치사하게 여자만 괴롭히는 거냐?”
“남자들은 반응이 한결같아 재미없어. 뭔가 앙칼지면서 야무지고 지적인 느낌이 나는 여자일수록 더 재밌지. 지금까지 사냥감을 놓친 적이 없는데 아쉽군.아, 한 명 있다. 그 러시아 여자. 어쨌든 저 깡패 놈의 애인은 한 번 더 노려봐야겠어.”
* * *
그놈은 파리처럼 자신을 망신 준 나탈리아를 노렸다. 나탈리아는 촉을 세워 신재율을 경계했다. 그놈을 대할 때는 언제나 차분한 말투 속에 잭나이프 한 자루를 숨겨 놓았다. 약이 오른 신재율은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 회사의 정보력을 이용해 나탈리아의 신상을 이 잡듯이 샅샅이 털어냈다.
모든 것을 상품화시켜버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녀석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크나큰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 모든 무기를 동원하여 그녀의 엉덩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찔러 넣겠다는 목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나탈리아, 그 녀석은 위험한 녀석이에요. 연락 오면 받아주지 말아요.”
학내 카페테라스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카푸치노를 훌쩍였다. 나는 그를 경계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왜죠?”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사람들 엉덩이에 똥침을 찌르고 다니는 취향이 있어요. 물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오염시켜 버리죠.”
나탈리아의 눈은 시나브로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축축해졌다.
“기가 막히는군요. 그런데 당신이 제 애인이라도 되나요? 연애는 문학인의 무덤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참견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그놈은 제 경험상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될 놈이니까요. 게다가 나탈리아 씨의 이상형인 푸시킨과도 거리가 먼 녀석이죠.”
“혐오스러워요. 얼마 전에 저한테 고백까지 하던데, 단칼에 거절했죠. 진심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똥침이 목적이었군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기지도 않네요.”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분노가 나를 향해 있는 듯 보였다.
“다행이군요.”
“그 대가로 전 한국에 지내면서 가장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죠. 지금 저를 둘러싼 추문들은 아세요?”
“추문이라뇨?”
“이미 저는 당신 말대로 오염되어 버렸죠. 무슨 소문을 낸 건지, 저를 보는 학과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서 견딜 수 없어요. 그리고 당신도 앞으로 연락하지 마세요. 당신 역시 푸시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요.”
때맞춰 드러난 무지함에 고개를 떨구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전 한 달 뒤에 떠나요. 당신과 이야기했던 순간들은 러시아에서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예요.”
추문은 진작에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지 않은 소문은 힘을 잃고 연기처럼 사라질 것으로 여겼다. 오산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그녀는 무심하게 연락도 없이 떠났다. 그녀와 함께했던 빈자리엔 그녀의 흔적이 아련하게 남아 중얼거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지만, 연애는 소모적인 관계를 낳는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거부해왔다.
그녀가 떠난 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했으나 진상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신재율은 때마침 장난의 들러리를 친구라는 형태로 찾고 있었고, 나는 자동차광으로 위장하여 그놈에게 접근했다. 놈은 어리석게도 내게 거리를 두지 않고 모든 걸 여과 없이 내뱉었다. 그 녀석의 친구로 지내면서 근거 없는 소문을 일으킨 사람들에 대한 응징의 칼을 갈았다. 처음엔 주위 사람들이 나를 그놈의 절친한 친구로 오해하는 시선을 덤덤히 견디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