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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Aug 13. 2024

정의 구현(3)

3편

* * *

    “학생, 자네는 국문과 신입생이군.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나?”

    교수가 내게 질문했다. ‘문학의 이해’라는 교양 필수 과목 시간이었다. 교수는 매시간 학생 셋을 지목하여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예고 없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교수의 질문에 항상 대비하여야 했고, 내 차례가 온 것이었다.

    “저는 자동차의 생김새를 관찰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국민차로 알려진 아반떼를 보자면, HD는 귀여운 아기 도깨비와 닮았습니다. HD의 다음 세대인 아반떼MD를 보면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가 떠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정말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표정이 드러나며, 공감한다는 학생들의 추임새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계속해보게.”

    “이것 말고 몇 가지 더 있습니다. SM5뉴임프레션은 뱀의 얼굴을, 뉴SM3는 개구리를 닮았죠. 속성이 전혀 다른 생김새의 차량이 한 데 묶여 자동차라고 불립니다. 문학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의 본질은 운송입니다. 그 본질을 도깨비, 뱀, 개구리, 수막새 등으로 낯설고 다양하게 표현하는 작업을 ‘문학을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본질을 낯설게 표현하는 예를 좀 더 들어볼 수 있을까?”

    교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제 오른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오른손으로 많은 걸 이루어왔습니다. 오른손의 본질은 주체가 원하는 어떤 기능의 수행에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오른손이 뭐랄까, 저와 분리된 하나의 인격체라 느껴지거든요. 제 명령으로 움직여 어떤 일을 수행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 녀석이 수행의 주체란 생각이 든 거죠. 주체가 전이되었다는 착각이라고 할까요?”

    “진짜 재미없네. 교수님 빨리 좀 끝내고 갑시다.”

    방약무인한 말투가 예고 없이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신재율이었다. 교수는 눈살을 찌푸렸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표정을 고쳐 잡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이루어지게 만드는 부와 권력이 그를 방약무인으로 이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놈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때 한 외국인 여학생이 말했다.

    “싸가지도 적당히 없어야지….”

어디선가 터져 나온 올차고 야무진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자칫 심각한 분위기로 이끌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보다는 목마를 때의 사이다를 들이켠 것처럼 시원한 청량감을 주었다.

    “뭐, 뭐라고? 야, 너 뭐야? 나 들으라고 한 소리야?”

    신재율은 당황했다. 강의실 뒤편에 서 있던 대머리 비서 둘은 발언의 여주인공을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굽히지 않고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교수님! 발표가 끝난 것 같은데 질의응답으로 넘어갈까요? 망나니는 무시하고요.”

    그녀의 원 투 펀치로 교실 곳곳에서 또다시 봇물 터지듯 웃음보가 터졌다.

    “그래요, 질의응답으로 넘어가죠. 학생 혹시 질문 있나요?”

    그녀는 누가 봐도 미인이었다. 강좌 첫 시간부터 모든 수강생의 시선이 그녀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미의 본질이 있다면 그녀만큼 훌륭히 그것을 표현하는 개체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재율은 머쓱한 가운데 자신을 지적한 금발의 미녀를 노려보았다. 항상 사탕발림만 듣고 자라서인지, 직설적으로 자신을 후벼 파고드는 자그마한 지적을 견디지 못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교환학생으로 온 나탈리아입니다. 발표 잘 들었어요. 특히 오른손 이야기가 흥미로운데요. 어떤 계기로 오른손을 하나의 인격체라고 느꼈나요?”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경주 불국사에 간 적이 있습니다. 관음전에는 관음보살 그림이 있어요. 손이 정말 많은데, 손바닥에 눈까지 박혀 있습니다. 그때부터 손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 * *

    “차는 어때?”

    “모르겠어.”

    “쳇, 빨리 똥침이나 하고 싶다.”

    이가 바드득 갈렸다. 그놈은 똥침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큰맘 먹고 허락한 불과 같다며, 자신이 벌인 수많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너 그거, 너한테는 장난일지 모르지만 엄연한 폭력이야.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변태 자식아.”

    “한 번 찌르고 도망가면 되지. 잡히면 돈으로 합의 보면 되는 거고.”

    살며시 저녁의 으스름이 노을을 잠재우며 산의 윤곽을 지워나갈 무렵, 뻑적지근한 몸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여름철 성수기여서 방값은 꽤 비쌌지만, 그 녀석은 현금 뭉치를 흔들어 보이며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와인에 며칠간 푹 재운 돼지고기를 꺼내어 공동 취사장으로 갔다.

    “어둑어둑한 이 시간엔 항상 장난기가 절정에 달해.”

    “고기나 구워.”

    “옆 방 숙소에 여자 둘이 놀러 온 것 같던데, 함께 술이나 마실까? 고주망태가 되면 손가락으로 이렇게 똥침을 하고 나 몰라라 하는 거지.”

    도착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놈의 검질긴 근성이 발동했다. 여자 둘은 공동 취사장에서 고기를 구우며 옆 테이블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신재율이 위아래로 자신들을 흘긋거리는 줄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의 눈은 사람을 꾀는 방면에 있어서 유혹의 메커니즘을 확실히 숙련한 장인처럼 번득였다.

    “성가신 일 만들지 말고 고기나 구워.”

    “뭐? 너 그거 계약 위반이야.”

    “휴게소도 안 들르고 바로 왔으니 그 정도는 배려해 줘. 친구라며?”

    일부러 집게를 들어 자갈밭으로 던지려고 하자 그놈은 위기에 처한 공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야, 근데 넌 왜 이성에 관심이 없냐? 맨날 책 읽고, 글 쓰고, 심심하지 않아?”

    “연애는 문학의 무덤이거든.”

    나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으이구, 이른 나이에 유명 소설가가 되면 뭐 해. 인생이 재미가 없는데. 나랑 같이 똥침이나 하고 살자."

    석쇠 위에 타들어 가는 고기를 보았다. 돼지비계에서 기름이 뚝뚝 떨어져 숯불의 화력을 키웠다. 비계는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며 번들거림을 잃지 않았다. 모순적인 비계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처지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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