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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세진 Sep 22. 2024

춘천의 바람은 언제나 푸르길(1)

1편

안녕하세요. 이번 작품은 제가 강원문학 신인상에 입상하여 문단에 발을 들여놓게 만들어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지인들도 제 책을 읽으면서 수상작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하시는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화해를 담은 한 편의 따뜻한 파스텔 색감으로 그린 소설입니다. 속으로는 자식을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하여 자식과 소원해진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 아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습니다.


그동안 자식을 때론 다그쳤습니다. 아버지로서 반성하는 마음을 담아, 자식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기로 다짐했고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로서로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해야 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평화로운 춘천의 배경과 아들과 아버지의 화해 속에서 잔잔함을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 *


    “야! 뭐하냐?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지 불과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우레같은 아버지의 호통이 쏟아졌다. 어깨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랐다. 그저 자동차 핸들만 꽉 쥐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오 분이나 흘렀을까, 또다시 아버지의 호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내 눈에는 조심스럽게 눈물이 핑 돌았다. 잠실의 한복판은 삼 일째 잔인했다.

    “야! 뭐하냐? 좌회전할 때 유도선을 잘 봐야 할 것 아냐? 들어갈 구멍을 잘 찾으라고. 접촉사고 날 뻔했잖아?”

    “아, 알았어요. 이제 좀 그만 큰소리쳐요.”

    “뭐? 이 자식이 진짜! 아버지가 바른길을 알려주면 반성할 생각은 안 하고, 이젠 좀 컸다는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옆에서 큰소리만 치시니 자꾸 위축되잖아요.”

    “지금이 겉으로는 연습처럼 보여도 알맹이는 실전이야. 차 잠깐 옆에 세워봐라. 오늘은 그만하자.”

    허겁지겁 비상등을 켜고 인도의 연석 가까이 차를 붙였다. 드르륵, 앞 범퍼의 요란한 마찰음에 아버지는 손을 들어서 내 머리통을 사정없이 한 대 갈겼다.

    “조수석 쪽 거리감을 생각하면서 붙이라고! 이래서 어떻게 혼자 차를 몰겠다는 거야?”

    나는 불만 가득 담긴 표정으로 운전석 쪽 문을 열고 내렸다. 지나다니는 차들을 조심하며 서둘러 아버지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아버지의 등은 습기로 가득찼다. 마음을 가라앉힐 겸, 우리는 시내를 벗어나 변두리에 있는 주차공간을 잘 갖춘 편의점으로 차를 몰고 갔다. 편의점 주차장에 차를 대면서도, 그는 직업병이 발동하여 세세하게 주차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의 강의가 소음으로 들렸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저 그냥 학원에서 주행 연수받을래요.”

    볼멘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을 하면서 뒤이어질 아버지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그러나 기분 나쁜 감정을 그렇게라도 소심하게 드러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다.

    “이 자식이 아버지한테 그것 좀 혼났다고 주눅 들어서 뭘 하겠어?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따라와. 삼십 년 무사고 운전자가 공짜로 가르쳐주겠다는데 말이야. 복에 겨운 자식, 냉커피 한 잔 마시면서 잘 들어. 아무래도 넌 복잡한 서울에선 운전하기 글렀다. 그렇게 끼어들기를 무서워해서 뭘 어쩌겠어. 단계적으로 밟아가야겠어.”

    “단계적으로요? 뭘 어떻게요?”

    항상 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수영을 가르칠 때는 깊은 물에 던져버리고선 알아서 헤엄쳐나오라는 식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운전은 복잡한 서울에서 배워야 실력이 이른 시일 안에 향상된다는 지론을 굽히지 않았다. 이왕이면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한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소와 다른 교육 방식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란 말에 귀가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춘천으로 가자. 거기서 일주일 동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운전을 마스터하는거야.”

    “춘천요?”

    “그래, 춘천. 어쩌면 그곳에서 우리가 배울 부분이 많을지도 모르지.”

    의아했다. 춘천은 나의 출생지였지만 그곳에서 지냈던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기억의 단편은 어머니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춘천보다 가까운 파주만 하더라도 운전 연습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춘천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나는 얼마 전,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취직에 성공했다. 김포에 있는 중견 IT 기업 공채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부모님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밝았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얼싸안고 눈시울을 적셨고, 시종일관 나의 장래를 걱정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일색이었던 아버지 역시 고생의 농도가 짙은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교사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자신의 학급 제자들에게 가르쳤지만, 공교육이 그러한 가르침을 강하게 설파할수록 직업의 귀천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뿐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이유는 어릴 적부터 나의 발달이 또래 아이들과 달리 유별나게 느렸기 때문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외부 자극에 무방비로 노출되듯 쏘여가며 일일이 반응하던 나의 시선과 몸짓,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의사는 내 증상을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칭했다. 아버지는 나의 인지를 올리기 위해서 한적하고 행복했던 춘천살이를 포기하고 서울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발달장애를 다루는 유명한 치료센터가 서울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버지는 응용행동분석 치료법과 관련된 책을 읽었으며, 지능 향상에 좋다는 학습지를 인쇄하여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지도했다.

    “여보, 이리 좀 와봐요. 우리 준협이가 여기서 김포까지 출근하려면 힘들 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생각 좀 해봐요. 회사 출근 날까지 겨우 2주 정도 남았네요.”

    엄마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걱정되는 눈으로 가족을 불러 모았다.

    “회사에서 기숙사는 제공 안 하냐?”

    “없어요. 회사 근처에 원룸은 많다고 들었어요. 미리 알아보니까 역세권이라 월세가 높아요.”

    “월세가 얼만데?”

    “보증금 ○에 월세가 ○원이더라고요.”

    “뭐? 그 돈을 다달이 내면 돈이 모이겠어? 집에서 지하철 타고 다니는 게 낫겠다.”

    “여보,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지옥철이라 불리던데, 그 지옥철을 매일 매일 타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힘들긴 하겠다마는 젊었을 때 그 정도 고생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어머니는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에, 많은 사람의 발이 되어주는 고마운 지하철을 일부러 지옥철이라고 둘러댔다. 나는 밀집된 공간에서 주변으로부터 오는 자극이 많아질수록 상동적인 손동작을 주체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에구, 아들아. 네 아빠가 아직도 저런 구닥다리 소리나 해댄다. 아빠가 저리 말해도 속으로 다 헤아리고 있으니, 당장은 네가 이해 좀 해라. 여보 그래서 말인데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게 어떨까요?”

    “우리 준협이가 운전을 직접 한다고?”

    아버지의 짧은 한마디는 여러 의미로 다가와 뼈를 때렸다. 지적으로 아둔한 정체성을 극복하려고 한 걸음씩 난관을 딛고 살아왔지만, 아버지의 말은 명목상 드러나는 의미 이면의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아버지의 언어에 한 치만한 불가해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삽시간에 시큼한 감정이 목구멍 위로 끓어올랐다.

    “왜요? 저는 운전하면 안 되나요?”

    우린 서로 입술을 사리문 채로 수 초간 시선이 허공을 매개로 얽혔다. 눈을 끝까지 보는 것이 힘듦에도 피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버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들의 그악스러운 투지를 읽었는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말 속에 미안한 감정이 섞여 나오길 내심 바랐다.

    “안 될 게 뭐람.”

    “그럼 계산 좀 해볼까요?”

    “됐다. 계산은 무슨. 그냥 운전해.”

    아버지는 계산으로 오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허락은 아버지답지 않은 모습을 띠었다. 시원스럽게 운전하라고 허락한 아버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재빨리 방으로 가 A4용지와 연필을 꺼내 계산을 했다. 한갓진 방의 분위기가 계산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취, 대중교통, 운전이란 세 가지 상황에 시간, 비용, 노력이란 세 가지 기준을 적용하여 계산식을 써 내려갔다.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처럼 깔끔하게 정돈된 식으로 채워진 종이 한 장을 완성하여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종이를 훑어보았다.

    “신차를 뽑아주고 싶은데… 나중에 알아보자. 우선 급한 대로 아버지 차로 연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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