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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슨주 Sep 03. 2023

11. 날 사랑 해줘요. 날 울리지 마요.

겁쟁이(버즈)

#제발 날 울리지 말아 줘요. 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요


*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악바리가 없니?


또다시 신규 간호사가 퇴사했다. 독립을 앞두고 있던 그녀는 그만두었다. 왜 그랬을까. 매일같이 욕을 먹으면서도 나도 버티고 있는데, 도대체 그녀는 왜 그만둔 걸까.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신규였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때 한 올드 간호사가 말했다.


"하...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렇게 악바리가 없니?"

이 말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나는 악바리 없는 사람이었다. 간신히 버티는 존재였다.


"요즘 애들이 왜 그런지 알것같아요. 저는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거의 안 해주셔서, 일찍 사회경험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인지 버티는 힘이 더 있는 것 같아요."


올드들의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한 나는 침묵했다. 부모님의 손길을 받은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 솔직히 간호사 되는 게 부담스러웠어


사실 나는 처음부터 간호사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직업, 생명을 책임지는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방대한 공부량과 태움에 대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나를 압박했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 앞에서는 그 두려움을 말하지 못했다. 겁쟁이처럼 숨고 피했다. 아버지가 먼저 나의 마음을 알아봐 주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남자간호사가 뜬다!


"요새는 남자 간호사도 많다는데, 생각해 보지 않겠니?"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나는 어느새 간호대를 검색하고 있었다. 원래는 공대를 가려 했지만, 아버지의 기준은 돈과 취업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공계를 포기하고 간호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내 것이 아니었기에 자부심도, 자신감도 없었다.


* 간호사가 머리에 든 게 많으면 의사들이 싫어할 거야

'간호사가 머리에 든 게 많으면 의사들이 싫어할 거야.'
이 말은 내 머릿속에서 자꾸만 떠올랐다. 공부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나는 이 말을 핑계로 공부를 미뤘다.

"간호사가 의사들에게 너무 똑똑해 보이면 오히려 꼴 보기 싫을 거야. 의사들은 간호사가 자기 의견 내세우는 걸 싫어하니까, 괜히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게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점점 합리화되었다. 공부하지 않으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냥 의사의 지시만 잘 따르는 게 간호사 역할이야. 그러니까 공부보다는 일단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게 중요해.'라는 자기 위로로, 나는 내 공부 부족을 포장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공부를 미루는 이유는 단지 겁이 나서였다. 방대한 공부량과, 그로 인해 나를 무능력하게 느끼게 하는 압박감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핑계를 대며, 공부를 멀리했다.


* 내가 살아남겠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란 말이야


신입 간호사 오리엔테이션에서 간호팀장이 말했다. "결국엔 너희가 살아남아야 해. 독기를 품고 더 오래, 더 강하게 버티는 사람이 승리하는 거야."


그 말은 나에게 독처럼 다가왔다. 독기를 품으려 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병동에서 일을 못한다고 욕을 먹으면 먹을 수록, 내 자존심은 이미 신발 밑창의 껌딱지처럼 짓밟혔다.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독기를 품을 힘조차 없었다.


정신병동 입원일지 02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는 병동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아이들의 목소리가 간절히 듣고 싶었다. 폐쇄병동이라 휴대전화를 쓸 수 없었고, 간신히 티머니 카드로 공중전화를 이용하려 했지만, 전화기는 고장 나 있었다. 폭력적인 환자가 망가뜨린 전화기 하나뿐인 병동은 시설이 너무나 열악했다.


5일이 지나서야 전화기가 수리되었지만, 그동안 환자들은 가족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가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고, 퇴원이 예정되었던 환자조차 불안감 때문에 퇴원이 미뤄졌다. 가족과의 연결이 중요한 정신과 병동에서, 그 중요한 연결 고리가 무너진 채 방치된 환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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