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죽일 놈이지 뭐 우리가 어긋 날때면
죽일놈(다이나믹듀오)
#그래. 내가 죽일 놈이지 뭐. 어쩌겠어. 내가 일을 못하는 게 잘못이지.
"넌 진짜 답이 없다. 집에 가면 뭐 하냐? 그냥 자기 바쁘냐? 오늘 뭘 했는지 리뷰라도 좀 해봐. 난 인턴 때 못하면 남아서 끝까지 했어. 너도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어?"
오늘도 어김없이 듣게 된 레지던트의 말. 성형외과에서 PA로 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수술 보조도 해야 하고,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내가 뭐라고 더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다 내 잘못인 것만 같다.
* 엄마라고 부르렴.
할머니 집에서 살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새엄마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두 시간 남짓한 그 시간이 나에게는 너무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이제부터 엄마라고 부르렴."이라고 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낯설게 들렸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지만, 마음속에선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차에 치여 죽어가는 나를 상상할 때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 이유는 나조차 알 수 없었다.
* 야라고 부르지 마.
새로 생긴 동생은 나보다 더 잘났고, 더 자신감 넘쳤다. 그 앞에 서면 항상 주눅이 들었다. 어느 날, 동생이 내게 말했다. "형, 나한테 야라고 부르지 마. 기분 나빠." 그 말이 너무 무서워서, 그 이후로는 동생을 부를 때 '야'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동생이 나를 무시하는 걸까? 내가 더 소심해서 그런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내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네가 동생이었으면 어땠을까.
"열성이가 동생이었으면 어땠을까. 성격이 좀 더 조용하니까." 새엄마의 이 한 마디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내가 형으로서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하나가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생과의 관계는 그저 그렇게 어색하게 흘러갔다. 나는 동생을 리드할 형이 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우리 집은 늘 어긋나 있었다.
*포도가 싫었다.
나는 포도를 싫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새엄마에게 "왜 포도를 안 주냐!"며 화를 냈다. 그 순간 나는 무서워서 포도를 억지로 먹었다. 그때부터 새엄마는 나에게 마음을 닫았다. 내 속마음은 아무도 몰랐고, 그저 동생과 똑같이 대우받으려 애썼다.
* 결국 면담 신청을 했다.
"상담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저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외래 파트장님에게 어렵게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좀 더 버텨보자"였다. 힘들다고 이야기하기까지 백 번은 고민했는데, 결국 내가 들은 대답은 그저 '버텨라'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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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입원일지 03
입원 첫날, 옆자리 환자에게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알코올중독 환자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술 냄새만이 아니었다. 그는 며칠째 샤워를 하지 않은 듯했고, 그의 몸에서 나는 악취는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보호사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혹시 저분 좀 씻을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냄새가 너무 심해서..."
보호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희가 직접 샤워를 도와드리진 않아요. 환자분이 스스로 하셔야 합니다."
샤워를 못 하는 상황을 해결해줄 사람은 없었다. 보호사들도 위생 관리에 신경 쓸 시간이 없어 보였다. 병동의 시설도 너무 열악했다. 샤워 시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환자들은 자기 스스로 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동에서는 그 문제를 그냥 방치하고 있었다.
"병실을 옮길 수도 없고, 다른 곳도 비슷해요. 같이 치료받으러 오신 분이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보호사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박혔다.
정신병동에서 위생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했다. 환자들이 가장 기본적인 위생조차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냄새는 내 코끝을 자극했고, 나는 이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병동 전체가 방치된 느낌이었다. 개인위생이 지켜지지 않는 이곳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점점 더 괴로웠다. 여기서는 내가 나아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치료보다 더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관리,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위생 관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병동에서는 그 기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