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좋은 이별이란거,결국 세상엔 없는 일이라는 걸
나만 몰랐던 이야기(아이유(IU))
# 좋은 이별도, 좋은 폭력도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 간호사 생활은 신규와 올드의 오징어 게임
"하... 그냥 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병동은 긴장으로 가득 찼다. 신규 간호사는 눈물을 훔치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퇴근길에 올랐다. 올드 간호사들끼리 서로 지친 눈빛을 교환했다.
"아, 정말 스트레스받아요, 선생님. 울고 싶은 건 난데, 내가 매번 나쁜 년 되는 것 같아요."
올드 간호사도 지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신규가 느끼는 좌절도 고통스러웠지만, 올드는 더욱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고통 속에서 생존해야만 했다. 그날도 신규 간호사는 조용히 사직서를 내밀었고, 올드는 그날 밤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 질문만큼 잔인한 말이 있을까. 부모가 갈라선 후, 나는 그 질문 앞에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양육권은 이미 아빠에게 있었고, 나에게는 단지 그 상황을 견디는 일이 주어졌을 뿐이었다. 7살의 나는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 일찍 철이 들었고, 아무도 나에게 '너는 어떻게 느끼니?'라고 묻지 않았다.
엄마가 떠났지만, 나의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맞벌이 가정에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던 나는 이혼 후에도 그대로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때, 나는 몰랐다. 부모의 이혼이 내게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엄마들은 신생아였던 너희들의 미소를 결코 잊지 못해
도덕 선생님이 말했다.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 미소를 잊지 못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기억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어." 그러나 그 말은 나에게 공감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떠났고, 나는 그 미소조차 기억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중학교 시절 도덕 선생님을 경멸했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무시한 채, 뻔한 말을 하는 선생님이 싫었다. 나는 그 시절 부모를 위해 감정을 억누르고 '착한 아이'로 남아야만 했다. 그로 인해 나는 진정한 나의 감정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 나는 내 아이가 일찍 철이 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커다란 짐을 남긴다. 나는 그 짐을 견뎌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부모가 된 지금, 나는 내 아이가 나처럼 철이 일찍 들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슈퍼맨'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이혼한 부모를 이해하는 '착한 아이'였지만, 그 이해는 결국 내 안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는 부모를 위해, 할머니를 위해 내 감정을 숨겼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아이가 그런 부담을 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 애는 좀 맞으면서 커야 바르게 자라지
"맞으면서 자란다"라는 말을 들으며 나는 자랐다. 나는 그것을 믿었다. 고모도, 선생님도, 심지어 친구들도 그래서 나를 때렸다. 모두가 나에게 그렇게 무례했다. 그때는 그 무례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의 개념 없음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감사했다. 그들이 나를 때리면서 나를 바르게 교화시켜 주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의 착각이었다. 간호사가 되어 다시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여전히 소심했고, 나를 때리던 그들의 폭력은 내 안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병동에서 나는 또다시 어리석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때마다 극한의 태움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모두를 이해하려 했지만, 정작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
정신병동 입원일지 01
"치료 잘 받고 와."
정신과 입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족과 직장에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미친놈 소리를 들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망상일 뿐이었다. 모두는 나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병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곳의 열악한 환경에 실망했다. 남자 병실에는 침대가 없었다. 딱딱한 구들장이 내 자리였다. 창가 쪽에 배정받았지만, 한기와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다. 나는 그곳에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밤이 되자, 추위와 함께 내 안의 불안이 몰려왔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이 났다. 이 병실은 마치 내가 무너져 내리는 감정의 축소판 같았다. 나의 감정과 같이 병동도 돌보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였다. 나는 그날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