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02월 09일
나는 기억력이 정말 안 좋다.
'정말 안 좋다'는 말 정도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빌어먹게 안 좋다.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기억력, 반은 원숭이라 할 수 있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비견될 정도로 안 좋다.
생각해보면 난 기억력이 안 좋다는 사실을 꽤 일지감치 깨달았었다. 왜냐하면 나는 어려서부터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이 확연히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력이 필요한 수학 같은 과목'과 '암기력이 필요한 영어 같은 과목'. 이렇게 말이다.
외삼촌이 구몬 선생님이었던 탓에 어려서부터 구몬을 했었다. 구몬은 참 요상한 구석이 있다. 하루 이틀만 미뤄도 산처럼 쌓이기 때문이다. 돈은 '티끌 모아 미세먼지'인데 구몬만큼은 '티끌 모아 태산'이었다.
그리고 당시 많이 하기도 했었다. 영어 공부 붐이라는 이유로 하던 영어, 그리고 순전히 내가 풀고 싶다는 이유로 수학, 그리고 아버지께서 강조하셔서 어쩔 수 없이 하던 한자까지 무려 3개나 했었다. 그래서 '티끌 모아 태산'을 넘어서 제3 금융권 리드코프 대출 이자처럼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다.
지금 생각해도 변태 같은 게 나는 어렸을 때 수학 문제 푸는 데에는 희열을 느꼈다. 진짜 저땐 덧셈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나하나 더하면 숫자가 규칙적으로 달라지다니. 그래서 구몬 선생님이 오기 전 미리 다음 주, 다음 달 문제까지도 풀어놓곤 했다.
하지만 나는 영어, 한자는 시금치 반찬마냥 깨작깨작 거렸다. 망할 규칙도 없는 알파벳 나열과 그것보다 더 끔찍한 지렁이를 뭉쳐 던져놓은 듯한 글자들. 문제 푸는 것도 싫었지만 더 싫었던 건 시험이었다. 매주 단어 시험을 보았었다.
분명히 구몬 학습지를 따라서 저 알파벳 따위랑 지렁이 뭉치를 강제로 20번도 넘게 적었건만. 문제지를 보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시험은 언제나 망쳤다.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시험을 매주 치는 건 그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기에 그리고 '나는 암기를 못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유년기 이후에도 나의 순수한 기억력은 계속 나의 발목을 잡았다. 아직도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배추의 마음.' 때는 중3 때. 이름이 말년인가 복순인가 하는 여하튼 젊은 선생님 치고 전혀 안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수행 평가로 내어주신 과제가 바로 시 '배추의 마음'을 외워서 낭송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를 못 외우는 사람은 방과 후에 남겨서 외울 때까지 집에 안 보낼 거라고 엄포를 하셨다. 왜 하필 그 많은 시 중 배추의 마음을 했는지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그 선생님이 가문 대대로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지으셨는지, 혹은 배추의 마음에 크게 감동을 받으셨는지 아무튼 미스터리이다.
하여간 배추의 마음. 그 빌어먹을 배추의 마음은 너무나도 헷갈렸다. 한낱 미물인 내가 어떻게 배추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해도 되지 않고 외워 지지도 않고 그래도 외워야 하니까 한번, 두 번, 백번을 넘게 읽었다.
그리고 수행평가 날. 다들 예상하다시피 나는 제목 '배추의 마음'을 말하고 그 뒤로 단 한 글자도 말하지 못했다. 국어 선생님은 단전에서 끓어오르는듯한 나지막한 목소리로 '너 남아'라고 하셨다. 그리고 학교에서 오후 6시까지 배추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해 수백 번은 더 읽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에 배추의 마음을 낭송할 마지막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배추의 마음'이라는 제목 외에는 단 하나도 외우지 못했다.
그 뒤로도 나의 순수한 기억력에 대한 수치스러운 스토리는 차고 넘친다. 하나 일一, 둘 이二, 개 견犬 수준인 한자 8급 자격증에서 떨어진 전교 유일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영광스러운 적이 있었고 고등학교 때 한 지능 검사에서 암기 영역 점수를 100점 만점에 15점을 받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역시 나의 뇌는 구조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웬만한 암기과목은 당연히 평균 이하. 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를 하면 언제나 참가상.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집 주소, 집 전화번호, 가족들 전화번호, 생일 어느거 하나 외우는 게 없다.
그러다 때는 이번 주 월요일. 불현듯 주식 관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주식 어플을 켰다. 그런데 갑자기 주식계좌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나는 것이다. ?!?!?. 뭐였지...? 맨날 습관처럼 생각 없이 꾹꾹 누르던 비밀번호였는데 '비밀번호가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자 머릿 속에서 밀가루가 들어있는 풍선이라도 터진 듯 새하얗게 되었다.
일단은 후보군으로 생각되는 비밀번호 몇 개를 눌러보았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을 연달아 틀렸다. 그렇게 틀리니 갑자기 뜨는 창. 비밀번호를 두 번 더, 총 5번까지나 틀리면 이 계정은 닫힌다는 무시무시한 메시지였다.
머릿속은 새하얗다 못해 이제 패닉 상태. 계정이 닫히면 한국 가서 풀어야 하나? 주식 계좌가 닫히면 급하게 팔아야 할 땐 어떻게 하지? 내 여행 자금은? 틀리면 절때 안돼... 그렇게 떨리는 손으로 신중하게 두 번을 더 시도했고 계정은 그 즉시 닫혔다.
'아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멍청한 줄 알았지만 이렇게 미련하기까지 할 줄이야. 매일 습관처럼 들어가던 어플이었는데. 잠시 안 들어갔다고 비밀번호까지 까먹다니. 아무튼 계정은 닫혔다.
떨리는 손으로 계정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마음속으로는 '제발 제발 여기 콜롬비아에서 여는 방법이 있게 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했다. 이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다행히도 여기서도 계정을 여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나의 소원을 쉽게 들어주지 않았다. 계좌에 연결된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서 활성화시켜라니. 하늘은 어째서 이렇게 큰 시련을 주는 걸까.
컴퓨터를 느리게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다. 명절에 놀러 온 조카에게 컴퓨터를 빌려준다던가, 혹은 정체불명인으로부터 온 성인 남성의 고민을 덜어준다는 메일을 열어본다던가 많은 방법이 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들어가서 로그인 좀 하려 했을 뿐인데 깔아야 할 보안 프로그램이 수십개가 쏟아졌다.
그 수많은 프로그램을 깔기만 하는 것도 기분 찝찝한 일이지만 하나하나 깔고 나면 설치를 완료하기 위해서 인터넷 창이 꺼지거나 컴퓨터를 재부팅해야 한다. 그러고 다시 은행 사이트에 들어가고, 또 하나의 액티브 X 설치하고 또 인터넷 창이 꺼진다.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는 이야기를 듣던 도르마무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은행 사이트를 관리하는 사람들은 고객들의 컴퓨터가 느려지는 걸로 만족하지 않고 고객을 최대한 괴롭게 만들기 위해서 은행 온라인 서비스를 디자인한 것이 명백하다. 조속히, 법의 공명정대함이 그들의 정수리에 내려 꽂히길 바란다.
하여간 키보드 보안, 인증서 보안,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쩌고 저쩌고 뭐 어딘가엔가 쓰이기 쓰일 망할 놈의 보안들까지. 이 악독한 은행 놈들. 나의 주식과 돈이 볼모로 잡혀있으니 고분고분히 하라는 요구 사항대로 다 했다.
그렇게 나의 소중한 시간 1시간을 날리고 나의 노트북은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으로 범벅이 되어 느려져버렸지만 다행히도 납치범은 순순히 나의 소중한 돈과 주식계좌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새로 받은 비밀번호를 내 수첩에 적어 두었다. 치욕스러웠다. 이제 기필코 비밀번호를 까먹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그 노트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서 하던 게임 롤 LOL 게임 아이디, 비밀번호 전부 까먹어서 레벨 1 아이디를 새로 만들었고, 구글 아이디 비번이 기억 안 나서 새로산 핸드폰 개통을 못할 뻔한 적도 있다. 코이카 단원 홈페이지 비밀번호도 까먹어서 보고서를 쓰다 말고 비밀번호 찾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도 했다.
왜 사이트마다 비밀번호 요구 사항이 다른 것일까? 어딘 대문자, 어딘 특수 문자, 어딘 내 생일이랑 다른 번호를 사용하라고 한다. 덕분에 사이트마다 비밀번호가 다르고, 덕분에 내 인생은 피곤해져 버렸다.
그래도 굳이 찾아보면 좋은 점도 있다. 먼저, 영화를 보든 예능을 보든 다시 봐도 새로 보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 이렇게 흑역사, 온갖 치욕스러운 실수로 가득하지만 금방 잘 잊는다. 이러니 쿨하다는 평가도 뜻하지 않게 받고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더 받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뭐 어쩌겠는가 좋든 나쁘든 이렇게 태어난 거 이렇게 살아야지. 하지만 1년이나 함께 지낸 기계 선생님들의 이름도 아직 못 외운 건,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긴 한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