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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kim Apr 01. 2020

슈퍼 파워 익스트림
콜롬비아 대중교통

20년 02월 20일




  아이고 덥다.

  요즘 부까라망가에는 통 비가 안 온다. 지금 계절로 따지면 건기 한복판. 하지만 어디서 습기가 오는 건지 건기인 주제에 습도는 또 높다. 덥고, 습하고, 구름이 없으니 햇볕은 뜨겁고.  그래도 학교로 출근하는 길은 해가 일어난 지 얼마 된 덕에 비실비실해서 걸어갈만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의 태양은 자비가 없다. 어디서 구름이랑 지나가는 행인 외투 벗기기로 내기를 하는 게 분명하다. 너무 덥다. 백팩 모양으로 등에 땀자국이 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녹아가는 길이면 그늘 아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유혹의 손짓을 한다. '모터 택시'를 타고 가라는 뜻이다. 그 유혹에 탈까 말까 고민하지만 그래도 위험하니까 꾸욱 참는다.




여기도 저기도 조기도 택시 택시 택시.


  부까라망가의 전체 생산가능 인구의 10%는 택시나 모터 택시를 몰지 않을까? 이 동네는 택시가 얼마나 많은지 길거리에서 택시 잡는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10초간 길거리에 멍하게 서있으면 택시든 모터 택시든 호객 행위를 두어 번은 받는다. 우리 집 앞에 있는 쇼핑몰은 사정이 더하다. 택시 승강장에 택시가 길게 줄 서있는데 저 멀리 지평선까지 택시가 줄 서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모터 택시 10여 대가 호객 중이다.


  콜롬비아의 택시비는 저렴한 편이다. 먼저, 택시비는 기본요금이 5500페소, 한국 돈으로 2000원 조금 안 되는 돈이다. 그리고 모터 택시는 거리에 따라서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택시비의 1/3 수준이다. 이렇게 많은 택시들. 거기에 비해 수요는 적다. 따라서 당연 수입도 적을 것이다. 과연 다들 입에 풀칠할 만큼은 돈 벌긴 하는 걸까?




  세계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듯 대중교통도 다 거기서 거기다. 콜롬비아 대중교통도 한국과 굉장히 유사한데, 먼저 콜롬비아에서 공공 버스는 3가지 종류가 있다. (물론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고, 이 글은 보고타와 부까라망가 기준이다.)


  처음으로는 Transmilenio라고 하는 버스이다. 이 버스는 BRT(Bus rapid transit), 한국 말로는 간선급행버스라는 버스로 한국에서는 들어 볼일 없는 아주 생소한 버스이다. 어려워 보이는 단어이지만 다 필요 없고 이 버스의 가장 큰 특징은 버스가 지하철처럼 운영된다는 것이다. 쉽게 들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설명이 없다.


보고타 대표 버스 Transmilenio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B%B3%B4%EA%B3%A0%ED%83%80-transmilenio-2


  먼저, 버스는 버스 전용 차선만 다닌다. 그리고 지하철 역처럼 만들어진 정류장을 지하철이 다니듯이 버스가 다닌다. 그리고 그 정류장에 들어가려면 지하철처럼 카드를 찍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는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환승지하철에서 환승하듯 이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타면 된다. 이렇게 이 버스를 설명하는데 모든 부분이 지하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듯 지하철과 아주 유사한 버스다.


  단 하나 다르다면 지하철 대신 다니는 열차가 버스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호도 지켜야 하고 흔들거리는 것도 심하다. 이 버스의 장점은 기존 버스보다 아주 미세하게 조금 더 빠르다는 것과 환승이 편리하다는 것. 그리고 지하철이 얼마나 편리한 이동수단인지 감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두 번째는 SITP, Bus Urbano라고 하는 버스이다. 이 버스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버스랑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정해진 정류장에서 승하차를 할 수 있고 버스 승하차시 버스카드를 찍어서 타고 내린다. 이만하면 다 설명하지 않았는가? 혹시 이해가 안 된다면 집 앞에서 버스를 한번 이용해 보시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로컬 버스이다. 이 버스는 정해진 정류장이 없어서 손만 흔들면 그곳이 정류장이고 소리를 지르면 그곳이 또 정류장이다. 이런 버스는 버스 카드도 없다. 그래서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아야 하는데 꼭 이런 버스는 가격도 애매하게 2750페소다. 그래서 버스기사님은 혼자 참 바쁘다. 운전하랴. 소리 지르면 내려주랴. 250페소씩 거슬러 주랴. 그래서 버스지만 걷는 거보다 조금 더 빠른 기적적인 속도를 보여준다.


무시무시한 로컬버스. 버스마다 크기도 색깔도 낡기도 다 다르다.


  또 이런 버스 대개엄청 낡아서 시트는 구멍나있고 뭔가 콤콤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세월의 흔적이랄까? 아니면 사람 사는 냄새날까? 하여간 맡기 거북한 냄새로 가득하지만 창문은 안 열리고 환기구는 출입구뿐이다. 그리고 엄청 느리고 뒤뚱뒤뚱 움직여서 멀미에도 최적화되어있다. 처음에는 운송수단으로 디자인되었겠지만 지금은 움직이는 고문 기구로 훌륭하게 탈바꿈되었다.




  버스는 기본적인 교통시설이지만 사실 보고타에서 버스를 타는 것을 그렇게 추천하지 않는다. 콜롬비아 버스에서는 심심찮게 범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부터 꽤나 위험한 범죄들도 일어나는데 실제로 버스 안에서 칼로 위협해서 돈을 갈취하는 범죄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콜롬비아 안전 수칙을 배울 때면 버스에서 앉을 때 외진 가장자리, 창가 자리에 앉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특히나 우리 같은 외국인은 범죄 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시내 교통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시외 교통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먼저 콜롬비아는 한국보다 약 10배나 더 크며, 세계 국토 면적 순위로는 26위라고 한다. 게다가 콜롬비아는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나라. 그래서 도시 간 이동을 하면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특히나 버스는 정도가 심하다. 예를 들어 내가 있는 부카라망가에서 보고타까지 직선거리는 280여 km로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가깝다. 하지만 강 건너 물 건너 산 건너가는 길이기 때문에 무려 버스로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른 도시로 갈 때는 크게 두 가지 교통수단이 있다. 비행기와 버스. 먼저 비행기는 크게 특별한 점은 없다. 저가항공도 많아서 가격도 한국에 비하면 저렴한 편. 하지만 연착은 기본 옵션이다. 왜 티켓에 출발 시간이라고 적어 뒀는지 알 수 없다. 정확한 표현은 출발 희망 시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콜롬비아의 시외버스는 성스러우면서도 야단스러운 맛이 있다. 버스 안에는 엄청 큰 예수님 사진과 뭔 뜻인지 모르지만 좋은 말씀이라 여겨지는 글귀와 십자가 그리고 정체모를 알록달록한 성물들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특히나, 남미 예수님은 보통 예수님과 다른 맛이 있는데, 꼭 컴퓨터 3D 모델링으로 그려진 것처럼 모공 하나 없는 미남형 얼굴에 집에 두고 온 뭔갈 고민하는 듯한 멍한 표정이 아주 일품이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크게 예수님 사진을 붙여 뒀을까. 누가 보면 천국행 버스인 줄 알겠다 하면서 웃으면서 탔지만 차가 출발하자 알게 되었다. '아 이게 진짜 천국행 버스가 될 수도 있겠구나.'


운전 똑바로 해라. 예수님이 보고 계신다.


  먼저 안전벨트가 없다. 처음에 안전벨트를 찾으려고 의자를 뒤적거렸는데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안전벨트가 없는 이유도 곧 알게 되었다. 차는 안데스 산맥을 이리저리 헤매니 한쪽에는 절벽을 두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혹시라도 여기서 굴러 떨어진다면 안전벨트 때문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남은 여생 병원에서 고통받지 말고, 편안하게 천국으로 직행하라는 버스 회사의 배려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버스가 정신 나간 점은 하나 더 있다. 콜롬비아 국도라고 할 수 있는 도시 간을 잇는 도로는 대부분 왕복 1차선이다. 그래서 앞 차가 느리게 가면 뒤차도 어쩔 수 없이 느리게 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냅따 노란 중앙선을 넘어서 새치기를 한다. 꼭 뒤에서 보면 19금 딱지가 붙은 레이싱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반대편 차선에 차가 갑자기 온다면 바로 이 버스는 천국행 버스가 된다. 버스에 그렇게 예수님 사진이 많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한편, '게릴라'라고 하는 반군들이 다시 무장 파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반군들이 노리는 것 중 하나가 또 버스다. 이놈들은 버스 승객을 잡아다가 인질로 삼는다고 한다. 아주 악질인 놈들이다. 게릴라들은 주로 베네수엘라에 국경을 접한 지역에 있다곤 하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콜롬비아의 버스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괜히 산에 들어가서 기도할 필요 없다. 답은 콜롬비아 버스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한참 기다리다 맛본 석양.




  나의 고향은 부산. 본 집에 갈 때마다 가난한 대학생 나부랭이는 무궁화 호를 탔었다. 오후 4시쯤 타면 밤 10시가 훌쩍 넘어서 도착하던 그 빌어먹을 기차. 그 기차를 탈 때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가는 듯 두려웠다. 6-7시간 동안 뭘 하면서 있어야 할까. 엉덩이와 척추 하나하나에서 올 고통에, 일초일초 하나하나를 느낄 무한한 시간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지금 보니 무궁화호는 선녀 같다. 한국 가면 이제 엔간한 교통으로는 불편할 일을 없으니 콜롬비아에서 얻은 큰 쾌거 중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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