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아가씨가 아주 차갑네

다 좀 망했으면 좋겠다

by 비차


집을 데려다주겠다는 사람이 불편하다. 집을 알리는 것도 불편하다. 집 앞 가게에서 막차가 끊길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며 그것을 로맨스로 포장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던 이래로, 그 사람이 나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이래로, 나는 그게 누구건 내 집이 어디인지 알리는 것이 불편하다. 내 집을 아는 사람이더라도, 아는 척 하는 것 역시 불쾌하다. 내 동의 없이 내가 어디 사는지 알리는 사람은 더더군다나 싫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라도 나를 쫓아오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다.


오늘은 집 앞 편의점을 다녀오는데 흰색 큰 차량이 쫓아오는 것을 느꼈다. 차를 세워놓고 운전자가 편의점을 들어가길래 내 착각이겠거니 했다. 다시 집을 향하는데 조금 지나 뒤에서 차량의 라이트와 쎄한 기분과 함께 내 보폭에 맞춰 차가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 차를 먼저 보내려고 안쪽 골목으로 물러섰더니 차를 멈추더니 창문을 내리고 운전자가 캔 음료를 내밀었다. 저기요. 이거 가져가세요. 너무 추워보여서 드리는 거예요. 골목은 어두웠고 차는 무척 컸으며 운전자는 내 덩치의 두 배는 되어 보였다. 너무 어두워 어떻게 생겼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요, 아니요, 필요 없어요, 하며 집 공동현관을 코앞에 두고 뒷걸음쳐 나와서 덜덜 떨며, 동네를 반 바퀴 다시 돌며, 혹시라도 차가 더 따라오진 않을지 걱정하며, 다른 편의점에 들어가 괜히 물건을 고르는 척 하며 몇 분을 버티다가 집에 들어갔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너 그거 배부른 고민이라고, 인기 많아 좋겠다고, 나이 더 먹으면 그런 것도 없다고, 지금을 즐기라고, 네가 예뻐서 그런 것이라 여기라고 하는 말 많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집에 가고 있는데 만취한 사람이 연락처 좀 달라고 했다. 아니요, 싫어요, 하고 지나갔더니 아니 왜 사람을 벌레보듯 보고 가냐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냐고, 말 좀 하다고 침을 뱉고 욕을 하며 쫓아왔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만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그 사람은 십오분을 넘게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내 뒤를 쫓아왔다.


또 얼마 전에는 친한 동생과 닭발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가서 주먹밥와 닭발을 먹고 있는데 합석을 하자는 사람들이 자꾸 왔다. 저희끼리 이야기 할 게 있어서요, 말을 하는데도 의자부터 끌고 와 옆에 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야기는 자꾸 끊기고 기분이 많이 상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는데 옆 테이블에 사십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아가씨, 거 참 청년들이 아가씨들이 예뻐서 정말 용기 내서 말 거는 건데 그렇게 찬바람 쌩쌩 불면 어떡해, 상냥하게 대답 좀 해주지. 제가 왜요? 했더니 아니, 아가씨들이 예뻐서 좋아서 오는 건데 좀 말 한 마디 하더라도 상냥하게 다정하게 해주면 좀 덧나나? 얼굴은 예쁜 아가씨가 아주 차갑네 차가워, 하더라.


... ... 인간에게 환멸나고 정말 화가 난다... ...


바라지도 않은 것을, 주는 것도 아니고 가해하면서, 그걸 준다고 표현하는 거. 상대를 대상화하는 것이며 트로피처럼 여기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나는 예쁜 여자에게 환심을 사려고 비위를 맞추는 가엾고 약한 남자"라는 포지셔닝을 하는 거. 정말 꼴불견이다. 다 좀 망했으면 좋겠다. 이쪽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으면서 대체 누가 불쌍하다는 거야. 스스로를 피해자의 위치에 좋는 게 기만이라는 것이나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러면 또 나는 잘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