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나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 나는 이 병원에 왔다. 이곳은 나에게 일상이 아니며,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오는 곳이다. 지속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특별한 순간의 연속과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말하자면 휴가나 축제와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낯설고 특별한 이 공간과 시간이, 타인보다 더 타인인 그녀에게는 일상이자 생활 터전이다. 하나의 생태계가 된 이곳이 더 윤택하고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하는, 이 생태계의 구성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 생태계 원주민은 아니다. 말하자면 변방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다.
내가 아기를 만난 지 이틀 째 되는 아침, 커피숍에서 마주쳤다.
함께해서 영광이라 했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목례 후 시선을 돌리고, 마치 스스로 존재감을 지우듯, 이 생태계에 스며 들어가듯 떠나갔다. 스스스스 라는 효과음이 들리는 착각 마저 들었다. 어쩌면 그녀는 이곳에 굉장히 오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대 같이 키가 큰 남자의 정수리는 다소 비어 있다. 이 남자에게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 정수리다. 정수리에서 가까스로 눈을 떼면, 그 밑으로 쌍꺼풀 없이 초점이 풀린 눈과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보인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현재 그가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동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부른 간호사도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방금 태어난 그의 아기를 신생아 박스에 넣어 복도로 나온 간호사는, 그가 그녀를 향해 오다 말고 갑자기 아이를 두고 뒤로 돌아 뒷편의 계단쪽으로 뛰어가자 연신 그를 불렀다.
간호사의 부름에 대답하기 위해 그는 목을 길게 빼 뒷편을 바라보았는데, 그러한 머리를 두고라도 빨리 가야한다는 듯 갈 길을 재촉하는 가느다랗고 하얀 긴 두 다리로 인해 그의 몸은 갈 지자가 되었다. 헐렁한 여름 반바지 밑에서 두 다리는 흔들거리며 내 쪽을 향해 뛰어왔다.
이틀 전의 내가 생각났다. 계획과 다르게 흘러간 첫 대면. 설마, 그의 경우는 아예 폰이나 카메라를 두고 온 것일까 등을 생각하며, 나는 후후 웃었다. 계단 쪽에 서있던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릿 느릿 비켜 주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그런 것이다 - 생태계의 손님.
어느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주인공이 거대한 온천 목욕탕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목욕탕에는 수 많은 직원들이 존재한다 - 불을 때는 직원, 물을 관리하는 직원, 안내하는 직원, 청소하는 직원, 때밀어주는 직원, 손님들의 불편사항을 처리하는 직원 등. 줄을 지어 찾아온 손님들이 온천에 몸을 담그고 씻고 말린 후 나가는 일련의 과정에서 최상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 직원들은 협동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완제품을 향해 가는 부품 같다. 물론,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이기에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것은 부품 대신 사람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도 그런 것이다 - 목욕탕이 출산 병원과 산후 조리원으로 바뀐 것이다. 줄을 지어 찾아 온 산모와 그 가족이, 출산 및 회복의 각 단계를 거쳐 문제 없이 귀가할 때까지, 병원과 산후 조리원의 관계자들이 돌봐준다. 끝 없이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는 산모와 그 가족을 효과적으로 케어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처럼 각 단계별로 동일한 경험을 조성하고, 케어하고 문제를 해결하여 준다. 단순히 "병원"이 아니라, 완성된 하나의 생태계다. 설령 처음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다.
산모와 그 가족은 이 생태계가 낯설고 신기할 수 있지만, 이 생태계의 원주민들 입장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것이다. 내게는 한번 뿐인 감격과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그들에게는 하루에도 수 십번 반복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니 메타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새삼 더 대단하다고 느껴진 것은, 생태계 방문자들이 각 단계별 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귀찮은 내색 없이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전문성의 승리이자 감사한 결과물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생태계 손님들은 유사한 경로로 생태계를 탐험하고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생태계의 범위는 비단 산후조리원과 병원에 그치지 않는다. 인근 상권까지 포함이 된다. 찰리가 입원한지 4일차가 되는 어느 저녁, 정수리가 조금 비고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만나기 직전 다시 계단을 향해 뛰어갔던 키가 크고 하얀 남자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 입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 부근에는 저기 두부집이 제일 좋아. 저기 밖에 갈만한 곳이 없어
부모에게 툴툴거리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끄덕였다. 나 역시 2일차 즈음엔 저 두부집까지 밖에 알지 못 하였다. 하지만 한 4일차쯤 되면, 왼쪽 골목 언덕 위쪽에 가정식 백반 집들이 있는 골목이 있음을 발견할 거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분명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골목의 반대편 방향으로 가서 조금 더 걷다보면 꽤 특색있는 꽈배기 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는, 분명 나처럼 출입을 위한 손목 밴드가 끊어져서 저녁에 당황하는 일도 생길 것이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 수록, 더 확정적으로 그러한 이벤트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에게 매 순간이 새롭지만, 이곳 방문자들은 다 포아송 분포에 수렴하는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