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말고 다른 운동을 했다면?

말이 안 통하는 걸요.

by 상수동해마

영어를 못 한다는 것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나오는 도로시가 바로 캔사스 출신이다. 그 소설에서 왜 하필 캔사스를 골랐을까? 토네이도가 빈번한 것도 있겠지만, 미국 시골 중의 시골이기 때문인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면 그냥 벌판에 버팔로 무리들이 노닐고 있다. 한참을 가도 뭐가 없었던 기억이다.


시골인 만큼 백인 비중이 높으며, 그 외 인종은 적은 편이었다. 흑인이 20%, 백인이 80% 정도의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모든 학년을 통틀어서 아시아인이라고는 나와 내 동생이 전부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생님은 나이가 많은 편이었는데, 이 시골 백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선생님들은 영어를 전혀 못 하던 나를 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고심을 하였지만 뼈족한 수는 없었던지 별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나 역시 학기 초기에는 여러가지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였지만, 크게 소용이 없어 그만두었다. 예를 들면 쉬는 시간. 한국은 50분마다 10분의 쉬는 시간이 있었다. 수업 과목이 변경될 때였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개념의 쉬는 시간은 없었고, 대신 recess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떠들며 줄을 맞춰 선생님과 모두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갔다.


처음엔 체육시간인가 싶어 가만히 눈치를 보았는데, 체육시간이라고 하기엔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하고 구석에서 가만히 아이들을 지켜보며 방치 하였다. 쉬는 시간이라고 하기에는 통제되었다. 체육시간도 쉬는 시간도 아닌 이 어중간한 개념의 신체 활동 시간에 대해 나 역시 어느 순간 그냥 신나는 시간이라거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듯,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시스템적 차이에서 오는 새로운 상황이 많기에, 잘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이해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되었다. 영어를 못 하는 것은 둘째치고, 무엇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도 몰랐던 점도 크다.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잠자코 따라다니고, 보이는대로 흉내내었다. 나쁘지는 않은 시기였다


또 기억 나는 다른 사건은 음악 수업 시간의 사건이다. 수업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4분음표를 가르키며 "콜자이" 라고 말하였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콜자이" 라고 4분음표를 가르키며 알려주었다. 4분음표, 콜자이라고 기억하고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2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등, 다른 음표에 대해서는 이렇듯 귀에 꽂히는 단어가 없었다. 나는 콜자이만이라도 반복해서 외웠다.


그렇게 한동안 음표 이름을 알려준 선생님은, 아마도, 아이들에게 퀴즈를 내기 시작하였다. 약 16-20명 의 아이들이 칠판을 바라보고 동그랗게 앉아, 선생님이 칠판의 음표 중 하나를 가리키면 순차적으로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다. 평소 나를 챙겨주던 두어 명의 학생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깜박임 없이 나를 응시하던 그 아이들의 파란 눈동자가 기억난다. 그리고 선생님도 약간 긴장된 표정.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칠판의 음표를 가리켰다. 4분음표를 가리켰다. 나는 소리 쳤다.


- 콜자이!


선생님은 물어본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춰서 나를 응시하더니 조심스럽게 무엇인가 물었으나 나는 이해 못하였다. 다른 학생들이 일부가 내가 말한 콜자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떠들었다. 분명히 이 발음이 맞는 것 같아서 다시 용기를 내어 콜자이라고 중얼 거려 보았지만 계속해서 어수선한 분위기에, 나는 자리에 앉아 가만히 입을 닫았다. 아무래도 16분음표 이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16분음표 설명할 때도 몇 차례 들렸으니까. 아쉬워하며 그렇게 내 차례는 지나갔다.


그리고 그 로부터 한달 뒤.


어느 날, 데자뷰 처럼 선생님이 어느 소년에게 "콜자이. 콜자이. 리슨." 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귀에 들리며, 아, 그렇군, 이 이상한 발음이 저 친구의 이름인 것인가, 라고 깨달았다. 나쁘지는 않은 시기였다.




돌이켜 보면, 영어를 못 하던 내가 수영팀에 가게 된 것은 행운이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외 다른 스포츠 어떤 것들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농구? 야구? 축구?


당시 한국에서 농구를 하던 초등학생은 아마 많지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내 기억에 그 당시 농구 하는 초등학생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다녔던 초등학교에 축구공은 있었지만 농구공은 없었다. 농구를 하기는 커녕 농구의 룰도 제대로 몰랐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야구 하는 사람 못 보았다.


결국 남는 건 축구 뿐인데,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고 특별한 재능도 없던 내가 미국에서 갑자기 취미로 축구를 하기는 어렵다. 처음부터 잘하였다면 모를까, 축구를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 언어도 못하면서 축구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미국에 처음 도착한 내가 하게 된 스포츠가 결국 말이 별로 필요치 않았던 수영인 것은, 돌이켜 보면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실제로 나의 기억 속에,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수영장에서 몇 몇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거나 무엇인가 물어보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나는 전혀 이해 못하였고 대부분 나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 속에 머리 넣으면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으니까. 앞 사람 잘 쫓아가면 되니까. 초등학생 수영에 전략도 무엇도 없다. 아무런 고민이나 괴롭힘 없이 처음 6개월 즐겁게 잘 적응하였고, 수영도 영어도 어느 정도 하게 되어 팀원들과 친해졌을 때도 즐거운 기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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