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위로
“천천히 보시고 불러주세요.”
강남의 백화점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아트포스터 브랜드에서 판매와 컨설팅을 했다. 나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의 학비를 벌어야 했고, 자취하던 원룸은 7평에 월세는 관리비 포함 70만원이었다. 정말 다양한 고객들을 만났다. 연예인, 대기업 회장님, 압구정에 거주하시는 김 모 씨, 나의 단골 카페 사장님,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 대표님, 나의 할머니가 생각나는 할머니. 그곳은 재밌었다. 다시 일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거기서 눈치와 센스를 배웠다.
고객이 길게 보고 있으면 말을 걸었다. 대부분은 본인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묻는 것보다도 많이 답했다. 집에 어떤 가구들이 있는지, 어떤 연령대가 사용하는지,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세세하게 말했다. 그들은 전적으로 나를 믿었다. 압구정의 중심에 있는 백화점이라 할지라도 그랬다. 나는 때로 중요한 파트너가 되기도 했고 정겨운 말벗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특별하기를 바라면서도 별나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무난한가요?” “ 너무 튀나요?” 이런 질문들. 지루했다. 지루한 나의 마음과 같아서 열심히 고민했다. 보기에 어울리는 것은 중요하면서도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림을 구매하기를 원했다. 그저 한 장의 포스터라 할지라도, 눈에 띄는 에너지가 있어서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 힘은 전적으로 사람의 기억에 있고, 나는 사람의 기억 속에 있다는 사실을 늘 상기했다. 사물을 통한 나의 마음은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에. 스스로에게 보낸 최선의 위로이기도 했다.
“편안해서 거실에 걸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너무 단조로운 것 같기도 해요.”
“그렇기도 하죠. 그럼 이건 어떠세요? 같은 작가의 작품이에요.”
“이건 좀 복잡해 보이네요”
“저는 사실 반대로 느껴요. 실제로는 굉장히 큰 작품들이거든요. 그래서 넓은 단색을 상상하면 복잡한 마음이 들고, 오히려 복잡한 선에 따라가면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겠네요. 듣고 보니 그렇게 보여요. 선들이 없으니 막막한 게 인생 같기도 하네요.”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 고객님과 긴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서로의 인터뷰이가 되어 단색 화면의 압도감이 주는 감정에 대해 말했다. 나는 작가의 화집을 꺼내 선에 대한 느낌을 묻고 답했다. 녹색의 편안함과 따뜻함이 당신과 당신의 집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이야기했고, 화이트 톤의 가구들에 어떤 액자를 함께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어떤 이유로 은색 액자를 추천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다시 매장에 찾아와 구매의 만족감에서 나온 산뜻한 기분을 전했다. 그런 하루는 산뜻하게 시작됐고, 나의 초록 사전에 산뜻함이란 단어가 추가됐다.
알게 모르게 나는 가족 단위의 고객들에게 이 초록 그림을 많이 추천하곤 했다. 그저 개인적인 취향일지라도, 그들의 가정은 조금 더 평온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기지 않았을까. 나만의 위로의 기억인 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