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린 마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빈 Sep 21. 2022

브라이스 마던의 녹색 회화 (2)

담백한 위로


그의 그림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자유롭게 얽힌 선들도 포근하다. 안전한 사각형 안에 있어서 그럴까? 내가 흐트러진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혼자 느끼는 안정감이 아니라면 작가의 고도의 균형감이 분명하다.


저는 제 자신의 규칙을 어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Brice Marden


브라이스 마던은 193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로, 현재 그의 작품은 33백만 달러(한화 약 450억 원)의 경매 기록을 가지고 있어 렘브란트와 같은 오랜 거장들의 경매가와도 같다. 그는 일생동안 추상화를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본인의 스타일을 구축하면서도 새로워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다양한 경력을 뒤로하고, 그가 새로워진 동기와 방식에 영감을 얻는다.

 

브라이스 마던의 활동 시기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1960년대 미국의 미술계는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 최소한의 색상을 사용해 기하학적인 뼈대만을 표현하는 단순한 형태의 미술 작품을 만들었다. 앞으로 종종 등장하겠지만, 미니멀리즘은 1839년 사진술의 발명 이후 미술의 역할을 고민하던 미술가들이 ‘자연의 재현'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미술 운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1차, 2차 세계대전을 지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현실 도피의 심리를 담은 순수 미술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the seasons>, 1975


이 단색화는 브라이스 마던의 초기 그림이다. 캔버스에 왁스와 흑연을 칠한 연속적인 층으로 표면을 처리한 후 색을 입혔다. 언뜻 보면 그저 단색화이지만 그는 대부분의 미니멀리스트들과 달랐다. 대부분이 의미가 배제된 대상을 만들고자 했다면, 마던은 표면이나 색채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 방식은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다. <the seasons> 작품에서 각 캔버스의 색상은 각 계절에 대한 느낌을 담고 있다. 그는 '색상은 빛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정의하며. 이 작품은 물질을 빛으로 전환하여 예술가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감정 표현에 관심이 있었다.


10년 뒤, 단순한 화면에서 선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한 브라이스 마던이 연고 없는 서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흥미롭지만, 당시의 서양에서도 아시아 미술을 조명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는 1984년 뉴욕에서 열린 ‘8~19세기 서예의 거장들’이라는 전시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고, 비슷한 시기에 태국과 중국 여행을 다녀온 것에서도 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Cold Mountain Series, Zen Study 6 ,1991


그리고 한산 시리즈 <Cold Mountain Series>를 제작했다. 이 시리즈의 제목과 형식은 9세기 당나라 때 활동한 유명한 시인 한산의 글이다. 한산에게 영향을 받아 존경심을 표한 작품인 것이다. 이 그림이 서예를 연상시키는 이유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선의 흐름, 선의 리듬감과 역동성에 있다. 동양 역사적으로 서예는 단순히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문인의 정신성을 담은 행위였다. 종이와 붓을 직각으로 하고 붓을 잡는 위치는 중간보다 높다. 어릴 적 서예 수업을 해본 독자라면 이것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지 공감할 터다. 조금만 멈춰도 두꺼워지고,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삐져나간다. 필자와 한 몸이 된 것 마냥 섬세하고 잉크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동양 붓의 특징이다. 정신성을 위한. 자연의 기운을 위한.



브라이스 마던의 작업 이미지. 나뭇가지를 멀리 잡고 선을 그린다.


이러한 선의 힘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브라이스 마던에 존경심을 가진다. 이제는 동서양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서양의 미술은 면과 색의 역사였기에 이것은 의미가 있다. 그는 뉴욕 디아 파운데이션에서의 인터뷰 중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동양 예술이나 아시아 예술의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서양인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단지 다른 철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던은 다른 선을 수용하는데 굉장히 큰 노력을 쏟았다. 중국, 일본, 그리스 고전 시를 번역한 미국 시인 케네스 렉스로스를 포함한 인물들의 작품을 수십 년 동안 읽었다. 중국 학자들이 감탄하는 강과 산에서 바위를 주워 관찰했다. 새로워지는 것은 이토록 쉽고도 어렵다. 다른 것을 보는 마음. 편견 없는 경험.


이어서 마던이 어떻게 본인만의 회화 스타일을 구축했는지 이야기한다.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화가들, 자연과 물질에 대한 연구. 그는 다시 본인의 규칙을 어긴다. 또 새로워진다.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