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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Jul 26. 2019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는 쉬운 방법

글쓰기를 시작하고 상처와 화해했다.


울 아빠는 2017년 여름에 폐암 선고를 받았다. 희망의 증거들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희망보다 절망의 증거들이 훨씬 많았다. 아빠를 위로해야 하는데 나조차 절망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오히려 아빠가 나를 위로하셨다.



“이제 알았으니 항암치료받고 수술하면 괜찮아”


“더 일찍 병원에 갔으면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이미 7cm까지 자랐는데... '

'일찍 갔으면 당연히 더 일찍 발견했을 텐데...'



하나뿐인 외동딸이 아빠한테 신경도 못 쓰고 병원에도 일찍 모셔가지 못해서 너무너무 죄송했는데...

그 마음을 읽으신 걸까.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한 톨의 죄책감도 지우지 않으시려 작정하신 듯했다.








아픈 사람이 생겨서 너무 힘들 때... 가족이 똘똘 뭉칠 것 같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렇지 못하다. 과거의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며, 조언을 빙자한 비난의 화살을 서로에게 날린다.



내가 그랬다. 엄마에게...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 비난을 했다.

그리고 이모들이 그랬다. 엄마에게...



어릴 때부터 엄마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내게 해 주신 것보다 해주시지 않은 것들을 기억했고, 때로는 엄마이기 앞서 인간으로서의 미숙함이 이해되지 않을 때 원망이라는 눈덩이를 조금씩 키워갔다. 


5살, 3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제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를 혼내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잠들었을 때 엄마가 입맞춤을 했을 거라는 걸, 내가 환히 웃었을 때 엄마의 시름까지 녹아내렸을 거라는 걸 이제야 알아간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있던 걸 끄집어낼 수 있는 게 참 좋다. 글로 꺼내놓고 보니 내 상처가 새롭게 보인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해 왔던 그 상처를, 3자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된다. 꺼내고 비워진 그 자리에 새로운 생각들이 채워진다. 마음속에 고립되어서 돌멩이처럼 굳어있던 생각이 새로운 생각과 만나 흐물흐물해지다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사라지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원망과 상처가 있을 때 이를 치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꺼내는 것이다. 꺼내서 제대로 봐야 한다. 꺼내는 게 아플지라도 꺼내야 한다. 사실은 내 편견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글로 남긴 기록이 창피해지더라도 꺼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이 채워진다. 그제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블로그에 적은 엄마에 대한 글을 엄마가 우연히 보신 걸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데 엄마가 우셨다. 어릴 때는 막 화내고 혼내시더니 이제는 그냥 우셨다. 화가 나지도 않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셨던 걸까. 내 마음도 함께 무너졌다. 괜히 글을 쓰기 시작해서 엄마에게 상처를 주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가 계기가 되었다. 37살 만에 처음으로 엄마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시간이 없었으면 어쩌면 나는 내가 만들어 온 원망의 눈덩이를 평생 마음속에 갖고 있었을 것 같다. 



글로 꺼내길 잘했다. 꺼내고 나서야 화해의 지점이 생겼다. 엄마와 나의 화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화해. 이제는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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