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몽키아라 한달살기 용기낸 이유
걸어서 하늘까지?! 아니고 땅끝마을에서 걸어서 임진각까지
(걸어서 하늘까지 알면 저랑 같은 세대 ㅎㅎ)
초등학생 때 국토종단, 국토횡단을 했어요. 이름도 미래스러운 김미래라는 초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국토종단'이라는 걸 간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아시고는 저를 그곳에 보내셨어요.
한국소년소녀탐험대라는 곳인데요. 국토종단은 국토최남단 마라도에서부터 임진각까지 걸어오는 일정이었어요. 연령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어요. 제가 제일 어린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한국소년소녀탐험대가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빡센 곳이예요. 교통수단은 바다를 건널 때만 이용합니다. 마라도에서부터 제주도까지만 배를 이용했고 이후로는 걸어서 임진각까지 옵니다. 정말 필요할 때는 버스를 탔어요.
그날 정한 거리를 낮 시간에 못 채우면 새벽에 걸어서라도 채웁니다. 새벽 어두울 때 앞사람만 보면서 걸었던 기억이 나요. 어두운 밤 산길을 걸으며 혹시 내가 여기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거든요. 임진각 도착하기 며칠 전, 경기도 우리 동네를 지나면서 엄마 아빠를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도 나고요.
국토종단 첫날 자기 키에 맞는 비닐을 잘라줍니다. 밤에 잘 때 필요한 것인데요. 비닐 속에 침낭을 넣고 바깥에서 잤어요. 겨울이었지만 바깥에서 잤습니다. 땅이 있으면 어디든지 저희가 잘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비닐은 비나 서리,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주는 용도입니다.
밥은 길가에서 해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해병대 캠프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먹다가 바닥에 흘린 것도 주워먹어야 했어요. 라면사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행군 중간에 먹는 쵸코파이는 진짜 꿀맛이었습니다. 어깨에 매고 있던 배낭을 쿠션삼아 길가에 누워 쵸코파이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헤헤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들이 안 보낼 수도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학부모가 고소해서... 망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확실한 건 모르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들이 보낼 만한 곳이 아닐 수도 있지만요. 그 당시 저는 국토종단을 통해 성장했던 저를 기억하고 있어요. 처음엔 침낭을 어떻게 말아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수십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침낭 싸는 시간은 불과 30초? 1분 정도로 굉장히 짧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항상 시간을 초과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했어요. 행군 말미로 갈수록 제일 먼저 싸고 기다렸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아니지만 어릴 적 저는 내성적이었어요. 수십명이 이동하는 행군 중에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하겠는 거예요. 저 때문에 이동을 멈추게 할 용기가 없어서요. 그래서 바지에 쌌어요. 추운 겨울이라 바지가 얼고 제 허벅지는 다 까졌어요.
처음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한테 말도 잘 못 걸었었어요. 나중에는 많이 친해졌어요. 지금도 기억나는게 국토종단 때 사귄 친구랑 연락처를 주고 받고 나중에 그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얀 목도리랑 편지를 보내줬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예쁜 서울친구로부터 받은 하얀목도리.... 나를 생각해서 멀리서 우편으로 보내준 그 햐안 목도리를 잊을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친구 따라 간 곳이지만 나중에는 저도 모르게 제가 그곳에서 중심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국토종단이 끝난 후 모임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존재감없던 제가 그곳에서 사람들이 반가워해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거든요.
한국소년소녀탐험단이 그 당시에는 유명했나봐요. 창작동요제 인기상 심사위원으로도 초대받아서 열 명 넘게 가서 방송국에서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노래도 듣고 투표도 했었어요.
불교라디오방송에도 초대받았었어요. 똑부러지게 얘기한다고 칭찬을 받았어요. 집에서는 항상 말수도 없고 내성적이었는데 그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을 잘해서 부모님이 놀라셨어요.
행군 중에 SBS방송국에서 촬영을 했었거든요. 그때도 제가 방송에 나가서 나중에 방송국 가서 선물로 시계를 탔던 기억이 나요.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글로 정리하는 지금도 부모님께 참 감사해요. 그리고 쉽게 보낼 만한 곳이 아닌데 용기내어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잘 살지 못했는데도 돈을 써가면서도 제게 경험을 안겨주신 부모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국토종단을 다녀온 다음 해에는 국토횡단을 갔어요. 울릉도에서부터 인천까지요. 이미 한번 경험한 후라서 선발대원 자격으로 맨 앞자리에서 대원들을 인솔했었어요. 선발대원은 가방도 버스에 실어줬기 때문에 훨씬 편하게 행군했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해 왔던 낯선 곳으로의 여정, 여행이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저희 아이들과 말레이시아 한달살기를 결정할 수 있던 이유도 이런 제 경험 덕분이고요.
초등학생 때 여행이 내게 미친 영향
1.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2. 새로운 곳에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3. 땅에 떨어진 것도 주워먹었는데..라며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물을 떠다 쓰고 등등 위생관념에 대해 관대(?)해졌다.
4. 5살 3살 아이들과 말레이시아 한달 살기 가도록 용기를 주었다.
국토종단 중에 하루는 이런 미션이 있었어요. 조별로 아무 곳에나 가서 밥도 얻어먹고 잠도 자고 와라. 지금 생각해보면... ㅋㅋ 쫌.. ㅋㅋㅋ 싫어할 부모님들이 계실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게 좀 용납이 되던^^;
저희 조는 식당에 들어가 저희 상황을 말씀드렸어요. 식당에서 맛난 밥도 주시고요. 주인아주머니가 욕실에서 저를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따뜻한 잠자리도 제공해주셨던 게 넘 기억이 나요.
그런 경험이... 제가 뭔가를 하는데 용기를 주는 것 같아요.
내가 그런 것도 해봤는데
라면서... ㅎㅎㅎ
'몽키아라 한달살기'가 저와 남편,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좋은 의미로 다가오기를...
낯선 경험은 우리를 성장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