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약사 Apr 02. 2020

그래, 나 금수저야...

'엄마여도 하고 싶은 거 하자'


1화 : 엄마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었던 밥과 설거지

https://brunch.co.kr/@ssena222/71

2화 : 게으름, 나태덩어리, 못남덩어리 아내, 엄마, 딸

https://brunch.co.kr/@ssena222/74

3화 : 왜 나는 자전거 여행을 떠나고 싶었을까

https://brunch.co.kr/@ssena222/75

4화 : 하루라도 어린 오늘, 실행해야 했다.

https://brunch.co.kr/@ssena222/76








26살 퇴사, 자전거 전국일주 다니기, 공동체 생활하기, 28살엔 아프리카 행


이렇게 살아온 나를 보고 금수저라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금수저 맞다. 







포기하지 않고 살아 온 부모님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모금운동을 했다. 우리 지역에 홍수가 크게 났다. 우리 집은 장미농장을 한다. 홍수에 집이 잠긴 것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일구신 장미농장이 하루 아침에 흙더미와 함께 온 홍수아 휩쓸려버렸다. 다시 빚을 내서 시작해야 했다. 전부 무너지고 빚만 남았지만 이 일을 하며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이 일이어야 했다.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집을 다시 짓는 동안 친척집에서 살았다. 나는 학교 다니느라 부모님이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모른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우리 엄마 아빠는 그때 어디서 주무셨을까. 어떻게 생활하셨을까. 무너진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셨을까…라는 생각에 미친다. 


우리 부모님 인생에 찾아 온 큰 파도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여러 차례다. 나의 인생이기도 했지만 나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금전적, 정신적 체감은 우리 부모님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님은 지금 잘 살고 있다.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있었을지언정, 지금 잘 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금수저다. 우리 가정에 찾아왔던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금 살아계신 우리 부모님을 보는 것이 내겐 가장 큰 가르침이자 유산이다. 






나를 믿어준 부모님

부모님은 내 뜻을 존중해줬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먹고 사시느라 바쁘셨다. 어쩔 땐 나한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내 방에서 공부를 하는데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커서 방문을 닫았다. 다른 친구들은 성적이 오르면 부모님이 선물도 사주신다는데… 우리 부모님은 선물은 커녕 공부하는 데 방해되게 텔레비전을 보신다고 생각했다. 


아마 나를 믿으신 것이리라. 우리 부모님은 공부하라 하시지도 않았지만 무엇을 하지 말라는 소리도 하지 않으셨다. 고등학생 때 해군사관학교에 가고 싶었다. 고2 겨울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진해에 데려가셨다. 해군사관학교에 불합격했다. 그래도 명문대라는 곳에 입학했다. 


다니고 싶지 않았다.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다. 학교 다닌지 1개월 만에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자퇴하는 날 나와 함께 해주셨고 노량진 대성학원을 등록해주셨다. 대학생 때 인도배낭여행을 간다고 했다. 갑자기 쓰나미가 왔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인도여행을 취소했다. 우리 부모님은 네가 거기 가서 죽을 운명이면 여기서라고 다르겠냐며 보내주셨다.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다. 내 생애 처음 가져보는 명함이었다. 부모님은 딸의 명함을 테이블 유리 아래 넣어놓으셨다. 집에 누가 오더라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꼴랑 2년 다니고 관두고 싶다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어릴 때 엄마가 신경을 많이 못 써줬으니 이제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보라고 하셨다. 부모님이 반대하셨다면 퇴사할 수 있었을까? 퇴사하고 자전거 여행,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아프리카에 가기 직전에는 삭발도 했었다. 아프리카 가기 전 국내합숙훈련소에서 바리깡 들고 온 동료에게 부탁해 머리를 밀었다. 면회 온 우리 부모님은 그냥 웃고 마셨다. 


어릴 때는 정말 많이 혼났다. 맞기도 많이 맞았다. 상처가 만들어 낸 원망이 나를 집어삼킬 때도 있었다. 우리 모두 미숙했기 때문이리라. 와중에도 부모님은 나를 믿어줬고 내가 하는 바를 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줬다.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도 나의 몫이었지만, 내 선택으로 얻은 성취감도 오로지 내 성장이 자양분이 되어줬다. 부모님이 믿어주시지 않으셨으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금수저가 맞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