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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Apr 27. 2020

돈, 아이들 핑계 뒤에 숨어 하고 싶은 걸 미루지 말자

지난주는 친정아버지 생일이었다. 2017년 8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맞는 3번째 생일이다. 우리 아빠는 가족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아프지 않을 때는 몰랐다. 아빠 생일에 함께 모여 축하하는 자리. 아빠의 살아계심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우리 자신을 본다. '우리가 아빠를 참 좋아했었구나...' 돌아가신 최진실이 떠오른다. 살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내 마음이 아팠다. 그녀를 좋아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처럼 우리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존재였다. 






다행히도 아빠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커다란 선물을 줬다. 


'건강에 오만하지 않고 나이고하를 떠나 살아있는 지금부터 건강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것.'


69번째 생일을 맞은 이번 해는 엄마가 선전포고를 하셨다. 


'나이 들어서 침대 누워서 오래 살면 뭐해~  앞으로 10년 동안 하고 싶은 거 원 없이 해보며 살 거야~'


우리 아이들이 크는 만큼 우리 부모님과 이모들은 나이 들어간다. 아빠를 비롯하여 건강이 삐거덕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죽음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딴 세상 얘기만은 아닌 나이들을 맞고 있다. 이번 생일에도 그런 주제가 올려졌다. 


오래 산다고 하지만 주위를 보니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침대에 누운 채로 오래 살면 뭐하냐. 건강할 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기 전까지는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 같이 산다. 우리 가족도 그랬다. 아빠가 아프면서 죽음이 당장 우리 코앞에 다가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아빠, 나, 그리고 우리 남편은 성격이 두리뭉실하다. 외식할 때는 뭘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그런 성격들이다. 실제로 뭘 먹어도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엄마, 아빠가 외식하러 나갔다고 한다. 


엄마) "여보 뭐 먹을 거예요?"

아빠) "아무 거나 먹어요~"

엄마) “여보, 아무거나 먹겠다고 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엄마가 이 얘기를 내게 들려주면서 왜 먹고 싶은 게 없겠냐고 오늘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당장 짜장면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셨다. 


“너희는 젊으니까 나중에 돈을 벌어도 돼~ 마이너스 통장을 써서라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대출까지 받아가며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건 심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죽음 앞까지 갔던 우리 가족이라서인가? 엄마의 말이 와 닿았다. 흥청망청 살라는 얘기가 아니니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미루지 말라는 거니까. 건강할 때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니까.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엄마가 앞으로 10년 간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겠다고 선전 포고하는데 내 마음이 기뻤다. 아빠가 암 판정받았을 때 내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던 이유는, 엄마 아빠가 평생 고생만 하신 것 같은데... 좋은 날을 하나도 누리시지 못한 것 같은데... 벌써 하느님이 아빠를 데려가시려고 하는 것 같아서였다. 


이번 고비는 잘 넘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빠도 엄마도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그때 내 마음이 덜 미어지려면… 엄마, 아빠가 한 세상 사시며 원 없이 하고 싶은 거 하시고 맛있는 것 드시고 여행 다니시고 좋은 사람들과 많이 웃으셨으면 한다. 그래서 엄마의 선전포고가 참 감사했다.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걸 수많은 핑계 뒤에 숨어 미루고 있지 않은가? 


돈이 많이 들어… 

아이들이 우선이지…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돈을 이만큼 모은 뒤에… 


그런 가치가 쓸모없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히 그런 가치들이 우선되어야 하는 절대적인 시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관성이라서… 나중에는 그런 틀을 깨는 게 참 어려워진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우리는 아빠가 아프면서 틀을 깨는 선물을 받았다. 엄마의 10년, 그리고 나의 10년, 우리 남편의 10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그런 하루하루를 모아가며 살 것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
그런 마음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활기차게 하루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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