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원

허회경-I hope you're well

by 서란아

이 글이 나올 수 있는 틈을 준 음악과 함께 글을 읽으면 더욱 좋아요 :)

https://youtu.be/2NAbrASxVL0

허회경-I hope you're well


바보 같은 내 이야기는
때로는 당신을 위로하곤 하네


어렸을 때부터 저는 나무를 좋아했습니다.

화려한 꽃들보다 푸른 잎사귀가 있는 나무들에게 눈길이 한번 더 갔어요.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마다 소소하지만 집에서 작은 정원을 꾸리고 싶단 소망을 남몰래 키우며 버텼습니다. 그리고 은퇴하자마자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조그마한 나만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초반 3년은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정원으로 달려가서 나무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대부분 공부하는 것으로 보냈습니다. 각자가 지닌 고유한 특성에 맞는 적절한 물의 양과 급수시기, 흙의 상태, 가지의 방향 등을 공부하는 건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육체적인 고단함까지 잊게 만들었죠. 아내는 이런 제가 얄미울 법도 한데도 정말 행복해 보인다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슬럼프를 2년 정도 겪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열심히 공부했던 대로 돌보고 가꾸었음에도 나무들이 성장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주변에 자문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무들은 여전히 멈춰있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은 맞는데 이유를 명확히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가니 그때부터는 저도 서서히 지쳐갔던 것 같아요. 아침에 정원을 먼저 들리지 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창 밖으로 나무가 보이는 것조차 불편해서 커튼을 하루 종일 쳐 놓고 지냈던 날도 많았습니다. 답답함과 우울감이 저를 지배했고, 정원을 바라만 보아도 행복했던 그때의 제가 너무 한심하고 꼴 보기 싫을 정도였죠.


어느 날, 보다 못한 아내가 저에게 텃밭을 가꾸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제철채소와 과일이라도 키우자면서요. 작은 땅이기에 채소와 과일을 심게 되면 기존 식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했지만, 큰 고민 없이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더이상 정원에 의욕과 애정이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아내는 제가 가꿔온 나무들을 그대로 둔 채, 모퉁이 한편에 채소와 과일 모종을 조그맣게 심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정원의 식물들을 정성스레 돌봤습니다. 어떤 날에는 한참을 나무 앞에서 얘기하다가, 안아주었다가, 어루만지기도 하더군요. 제가 안타까워서였을까요, 아니면 나무가 가여워서였을까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아내가 모퉁이 텃밭을 가꾸며 정원을 함께 돌본 지 반년이 채 지나지 않은 무렵부터 나무들이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저는 거듭 아내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된 나무 전문가에게 연락을 취해서 그가 조언해 주는 방식대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비싼 영양제나 좋은 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무와의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고 그래서 아내는 매일 나무 앞에서 말을 건넸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천천히 말을 걸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때 느낀 충격은 아직까지도 선명합니다.

문제는 나무가 아니라, 제 자신이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죠.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나무를 보며 저는 성급하게 마음을 닫아버렸던 겁니다. 나무도 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을 텐데, 제가 무너져 있었기 때문에 인내심과 포용력으로 나무를 살피지 못했던 거죠. 식물에게 음악을 틀어주면 훨씬 생장속도가 빠르다고 했던 얘기가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저는 나무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나무의 더딘 성장을 맞닥뜨리면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 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나무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은 '라포'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까요.


별 거 아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불어,

자신만의 나무를 가꾸고 계실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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