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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Feb 21. 2023

퇴사운을 보려고 타로를 배우다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4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더니, 뜬금없이 내게 열흘의 휴가가 주어졌다. 입사 이래 가장 긴 휴가였다. 국장은 내게,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머리부터 식히고 오라, 고 했다.


처음 사흘 정도는, 집에서 꼬박 지내며 울다가 웃다가 했다. 상태가 좀 중증이라 느껴진 것은 이별 노래를 들으며 주룩주룩 우는 내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것은 정확히, 애인과 헤어졌을 때의 정신 상태, 반응과 똑같았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서도 문득 '나 헤어졌지' 하는 생각이 들면 슬픔이 잡을 수 없어지는. 웬수 같은 회사를 언제 그렇게 각별히 생각했냐 싶게 나는 회사를 애인과 비슷한 존재로 의인화하고 있다는 걸 그때야 알았다. 나에겐 필생의 꿈이었던 기자라는 직업, 거기서 벗어난다는 건 그제껏 살아온 내 인생을 부정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나를 버릴 수 있는가'가 그 당시 내가 처한, 자못 진지하고 심각한 고민이었다.


집에 더 있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기에 헐레벌떡 비행기표를 끊었다  흥성대며 해외에 갈 기분은 아니어서, 만만하고 편한 제주행을 택했다. 타로 카드와 타로  한 권과 속옷 정도만 실은, 단출한 짐만 들고.


그 즈음 나는 매일 매시 타로로 내 마음을 읽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타로는 독학으로, 그 때 막 시작했다. 매번 돈 내고 타로로 퇴사운을 보다가 그 돈이 아까워다. 결국 내 타로는 내가 본다는 마음으로, 타로 카드와 해설서들을 마구 사들였다.


직접 해 본 결과 타로는 '답정너의 미학'이었다. 나에게 타로란 '카드에 나온 여러 그림들로 하는 스토리텔링'에 가깝다. 그것으로 내담자의 사연에 빌어 한 편의 얘기를 만들고 나면 즉각적으로 내담자에게는 어떤 반응이라는 게 생긴다. 좋거나, 싫거나 하는. 그게 바로 내담자의 솔직한 심정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여러 갈등이나 우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조차 몰랐던 본인의 본심. 그걸 알았으면, 자기 마음 가는대로 가면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타로의 예언적 기능에 대한 내 생각은 '글쎄'다. (특히나 나는 '야매 리더'라 더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인 미야모토 테루가 오랜 공황장애 투병 끝, 비를 피하러 들어간 서점에서 우연히 문예지에 실린 단편 소설을 만난 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 처럼 타로에서 말하는 메시지가 불현듯 내 마음에 날아들어 '필연'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에세이집 '생의 실루엣'에서 미야모토는 '생의 힘에는 외적 우연을 내적 필연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갖춰져 있는 법이다'라고 썼다. 그 외적 우연의 단초를, 로는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


그 해 겨울 나는, 눈바람에 고립돼 하루종일 숙소에서 타로를 펼쳤다 거뒀다 했다. '퇴사해도 될까요?' 나의 질문은 오로지 하나였다. 타로는 이랬다 저랬다 했다. 어떨 때는 '때려쳐!' 했다가 다시 보면 '아무래도 좀...' 했다. 그 턱도 없는 점괘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창밖의 눈바람처럼 사정없이 널뛰었다. '퇴사하면 장밋빛 미래가 널 기다릴거야' 하는 결과에 가슴이 뛰다가도, 10분만 지나면 '장밋빛 미래는 무슨...' 했고, '나가면 별 수 있을 줄 아냐'고 나오면 불같이 화를 냈다가도 '그럼... 그렇겠지..' 하고 어느새 맥빠진 수긍을 했다.

 

그렇게 울다 말다하며 미친 감정의 파고를 겪었던 4박 5일이 지나, 나는 김포행 비행기를 탔다. 그 즈음엔 이미, 스스로의 감정적 동요에 탈진한 상태였다. 하얀 머릿속, 명료해지는 생각 하나는 감정이 이렇듯 넘실대는 건, 아직 일에 대한 사적 정리가 덜 됐다는 증거로 보였다. 남친과도 울며불며 헤어지면, 꼭 다시 찾게 되던 것처럼. 회한도 그리움도 없, 내 몸의 물기가 바싹 말라 더 이상 짜낼 즙 조차 없을 때 헤어져야 내 마음도 명료하리라...


김포에 도착해 핸드폰의 비행기 모드를 풀었다. 회사 인사 알림이 떠 있었다. '문화부 이슬기, 젠더연구소 발령'. 겸임이란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 한정 '격정 그 잡채'였던 퇴사 소동은 예행 연습으로 마무리됐다.


그 해 겨울, '내돈내산' 타로 리딩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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