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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Mar 20. 2023

그 흔한 공황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6

공황에 관한 내 이미지는 이랬다.


'무한도전'에서 공황장애를 이유로 정형돈이 하차한 것을 두고, 대타로 먼저 공황을 앓았던 자기를 부를 줄 알았다는 이경규의 얘기다. 저 무논리가 무(無)어이여서, 기억에 오래 남았다.


눈치를 챘겠지만, 그 흔한 공황은 불현듯 내게로 왔다.


젠더연구소는 내가 재직한 지 10개월 만에 없어졌다. 회사의 오너가 바뀌었고, 사장 직속 조직이던 젠더연구소도 사라졌다. 배경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나는 소장을 제외하곤 유일한 상근 인력이던 내가 더 잘했으면 연구소가 그리 쉬이 없어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자아가 비대한 측면이 있었다.) 편집국으로 복귀해서 젠더 기사를 쓰게 해주겠다는 게 회사의 복안이었지만, 몸 담았던 젠더연구소가 사라진 것 자체로 나는 기운을 많이 잃었다.


편집국의 사회정책부로 발령받아, 여성가족부와 교육부를 출입하게 됐다. 연구소에서처럼 '젠더 전담'이리라는 것은 내 착각이었다. 젠더와 교육 이슈를 함께 취급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젠더에 관해서라면 성역 없이, 신문사 내의 부서 칸막이 없이 다룰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나의 일은 일차적으로 여가부와 교육부에 쏠려야만 했다. 국회에서의 차별금지법 입법 논의에 내 관심은 쏠려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가욋일일 수 밖에 없는 신문사 부처 출입의 현실.


사회정책부로 갓 발령받은 그 즈음이, 내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내가 잘하면, 나만 잘하면(!) 젠더 기사도 더 크게 쓸 수 있을텐데, 이 모든 것이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젠더연구소도 문닫은 것만 같았고, 내가 부족해서 우리 회사에는 '젠더 전담'이 자리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음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매일 아침 얘기 되는 젠더 기사를 발제해야 된다는 생각에 아무도 시키지 않았건만 전전긍긍했다. 직업적 효능감이 바닥을 치던 시기였다.


그렇게 발령받은 지 2주쯤 됐을까. 토요일 일요일 주말을 푹 쉬고서 만난 어느 월요일이었다. 광화문의 정부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탄 참이었다. 전날 잠을 설치다 부쩍 일찍 일어나서, 전에 없이 아이라인에 마스카라까지 화장도 열심히 하고 목걸이도 한 출근길이었다. 두 정거장쯤 지났을까, 갑자기 피가 아래로 확 쏠리며 마스크 속으로 격렬히 호흡을 거듭하게 됐다. 가장 먼저 참을 수 없었던 건 목걸이었다. 느슨하게 걸친 목걸이건만 갑갑증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줄을 끊듯 거칠게 잡아챘다. 다음은 허리띠였다. 전에 없이 허리띠가 살을 파고드는 듯 죄어와서 남들 시선도 아랑곳 않고 객차 한복판에서 허리띠를 풀었다. 그러고도 '헉헉' 거친숨에 더해 맹렬하게 올라오는 토기, 핑그르르 도는 어지럼증이 닥쳐오더니 그만 선 자리에서 쓰러졌다. 나의 목적지인 시청역에 다 와서였다.


시청역에 내리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먹은 것도 없는 속을 박박 다 긁어냈다. 더 이상 나올 것도 없을 때 변기를 붙잡고 타일 바닥에 철퍼덕 주저 앉았다. 그걸 신호로 눈물이 샘솟아 눈앞을 가로막았고… '아, 안 되겠다. 오늘은 정녕 출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장께 전화해 자초지종을 알리고, 그 날 하루는 쉬기로 했다.


맨 먼저 든 생각은 '뭐야, 주말도 이틀 꼬박 다 쉬고… 그렇게 힘들 일도 없었잖아' 였다. '라떼'에 관한 셀프 적용이었다. '주 52시간 근로' 따위는 없고, 일주일에 한 번 퇴근하며 경찰서에서 숙식을 겸하던 수습 생활을 버틴 내가, 수습을 떼고 나서도 주6일 근무는 '껌'으로 알았던 내가 이틀이나 푹 쉬고서 이렇게나 힘들어한다고? 예전처럼 야근이 많지도 않고, 부처 출입의 특성상 현장에 뛰어가야 할 일도 많지 않은데? 세상에서 나에게 젤 야박한 사람은 다름아닌 '나'여서, 나는 그간 흐른 세월도, 그간 축적된 스트레스의 무게도 생각 안하고 여지없이 나를 질타해댔다.


그렇게 한 시간을, 회사 바로 건너편에 있는 카페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인생 처음 정신의학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돌려본 결과 모든 정신의학과는 초진을 당일에 볼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한 군데서 나흘 후로 예약을 잡았다(그것이 가장 빨리 진료를 볼 수 있는 길이었다). 회사와 가까워서 근무 중 들르기 가장 편한 곳이었다.


나흘 후 만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공황 쇼크'가 온 것 같다고 했다. 공황이라고요? 이경규 아저씨가 '공황은 공황이 메워야 한다'던 그 공황이요? 출근길에 갑자기 과호흡이 오거나, 토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 등은 전형적인 공황 증상이라고 했다. 의학적으로 6개월 이상 증세가 지속되면 '공황장애'로 볼 수 있다며, 신경안정제 등의 약을 써가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약, 약이요? 그걸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신경안정제를 먹으면 긴장이 풀릴 거예요. 공황을 막아주는 거죠."

"약을 먹어서… 내 기분이 바뀐다고요? 어쩐지 그건 싫은데요."


약이라는 이물로 내 정신 상태를 이렇게 저렇게 바꾼다는 것이 영 싫어서, 나는 항변을 했다. 평소에 술이나 카페인은 잘만 먹으면서 유독 정신과 약에만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한 까닭은 아무래도 약의 도움을 받는 내 정신이 싫어서였던 거 같다.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약은 나를 도와주는 거예요." 도움이고 뭐고, 그런 도움 난 필요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안 그러면 출근을 못하게 생겼길래 고분고분 처방전을 받아들었다.


이후에는 선생님 말대로, 술과 카페인을 금하며 약을 시간 맞춰 먹었다. 처음 먹어본 신경안정제는 아침부터 과도한 졸음을 불렀다. 오전 9시 30분. 아침 발제를 해야하는 그 중요한 타이밍에 '꾸벅꾸벅' 졸음이 올 수준이어서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밤에 잠이 안 오는 증상은 여전했기 때문에 오전의 신경안정제 처방분은 줄이고, 저녁의 양을 늘리는 걸로 해결을 봤다. 그렇게 매주 선생님을 찾아 내 기분 상태에 따라 어떤 약을 줄였다 늘리고, 다른 약을 보강하는 삶은 기분이 요상했다. 나는 나를 완벽히 통제하리라 믿었던 '통제 강박자'에게는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황'이라는 병을 더욱 상세히 알고 싶어서, 나는 내 직업도 적극 활용했다. 나는 그 즈음 부원들과 돌아가며 6주에 한 번 '건강면'을 쓰고 있었다. 공황을 경험하고 돌아온 내 순번에 나는 '공황장애'를 취재했다. 여러 정신의학과 교수를 인터뷰하고 관련 문헌을 읽으면서, 나는 간만에 내 직업의 효용을 느꼈다. 그 가운데 '공황장애까지는 아니어도 공황발작을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 사람은 10%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말이 내게 큰 위안을 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온 공황을 여러각도로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믿고 내맡기는 지인들에 한해서 자주 공황 얘기를 토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듣다 보면, 병원에 안 갔다 뿐이지 공황인줄도 공황을 경험한 사람은 매우 많았다. "이게 공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출근길에 역마다 내려서 토를 한 적이 있어." 별 일 아니라는듯 얘기하는 선배의 태연함에는 '아, 역시 공황이란 별 게 아닌데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처음 3개월 간은 1주일에 한 번, 이후 3개월 간은 2주에 한 번 선생님을 만나 이런저런 얘길했었다. 그 해에는 연말정산 환급금이 평소보다 과하게 들어와서, 그 돈으로 40만원에 달하는 심리검사를 받아보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인데(MBTI 검사하면 매번 INFP로 나와서 스스로는 '감정의 노예'인 줄 알고 살았다) 생애를 통틀어 감정 표출을 억제하고 살아서, 가끔 감정에 관한한 컨트롤+매니징이 잘 안된다는 평을 들었다. 기자 일을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자 일을 하며 늘 한계에 부딪히는 나에게는 적잖이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공황의 경험'은 내게 '참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구나' 하는 자각을 줬다. 병원에 열심히 다니던 6개월 새 공황 증세는 사라졌고, 나도 일정 부분 예전의 상태로 돌아왔지만 '더이상 안간힘까지는 쓰며 살고 싶지 않다'는 깨달음을 줬다. 공황이 나의 퇴사에 미친 영향은 한 2할 정도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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