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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pr 06. 2023

퇴사의 트리거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0

"어떻게 퇴사를 하셨어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매번 하는 말이 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은 평시에는 호수의 물 마냥 잔잔히 고여 있다. 그러다 결국은 '트리거'가 되는 어떤 일이 발생하여 갑자기 둑 터지듯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일로써 만난 일련의 퇴사한 여성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지난 5화(퇴사를 피하고 싶어서 1)에서 던져 놓고 여지껏 수거 못한 떡밥을 이제사 주워담자면, 서울에서 고양으로 갓 이사를 한 나에게 들이닥친 '청천벽력' 같은 일이란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2022년 5월 30일, 이사 당일. 나는 잔금 치르고 이삿짐 나르고 전입신고를 하는 기타 등등의 일로 손발이 어지러웠다. 한참 있다 들여다본 핸드폰에는 확인하지 못한 단톡방 대화들이 몇백개씩 밀려 있었다. 특히나 회사 톡방이 뜨거웠다.


"사옥 이전한대."

"어디루?"

"우면동 아님 상암이래는데"

"헐"


마지막 '헐'은 대화 내용이기도 했지만 내 육성이기도 했다. 아니, 나는 광화문에 있을 회사 출퇴근을 전제하고 비교적 광화문 통근이 용이한 고양으로 막 이사를 했는데 회사가 이전을 한다고? 고양에서 가까운 상암이라면 땡큐지만 위치가 극과 극인 우면동이라면? 것도 이삿날에 이런 소문이 퍼지다니 재수 옴 붙…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싶게 소문이 들리고 약 네 달 뒤, 회사는 우면동으로 이전했다. 그 네 달 간 흉흉한 소문 속에서도, 처음에는 "나야 뭐 어차피 출입처로 가면 되니까… 회사 갈 일 몇 번 있겠어?" 싶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여성가족부 출입 기자라, 여가부가 있는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하고 있었으니까. 취재 기자들은 대부분 출입처 기자실로 출근을 하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하는 야근날이 아니면 회사로 갈 일이 없다. 그러나 사옥 이전 직전에, 나는 부서 발령이 났다. 내근이 많은 국제부로.


그 당시, 나의 마음을 묘사를 하자면 여러 마음이 갈래갈래 떠나는 느낌이었다. 온 우주가 나를 퇴사하라고 떠미는 걸까. 회사가 사옥을 이전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나는 불만이 많았고, 동료들과 함께 항의하는 성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이전을 하게 됐을 때, 나는 하필 내가 이사하던 날에 떠돌았던 '이전 소문'을 생각하며 '이것은 데스티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환승 3번을 포함해 왕복 3시간은 족히 걸렸다. 기자 안하고픈 마음이 늘 호수처럼 고여 있는 한편으로 내 의지와 다른 부서 발령에 내 의지와는 삼만광년이었던 사옥 이전까지 밀려오자 정신이 아득했다.


거기에 인력 부족에 시달렸던 부서에서, 나는 내 연차에는 황감한 비공식 차장 역할도 해야 했다. (신문사에서 차장은 보통 15~16년차 이상이 한다.) 부장 부재시 편집 회의에 들어가 지면 계획도 꾸리고, 오후에는 데스킹도 봐야 하는 자리였다. 남들은 모를터지만 경험이 일천했던 나는… 편집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다종다양한 국제 이슈 기사를 데스킹할 때마다 걱정에 걱정을 짊어져야했다.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회사가 밉고, 더러 야속했다.


그러던 마당에 부서에서 함께 의지가지하던 후배 둘이 한 달 간격으로 연달아 나갔다. 외로움이 호수처럼 밀려들었다. 물(한강) 넘고 산(인왕산, 우면산 등등) 넘어 회사에 갈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국제부의 특성상 발제와 달리 잡히는 기사가 늘어갔다. 곧 심신의 피로도 호수처럼 밀려들었다…


그 즈음 나를 추동했던 두 가지 문장은 이러했다. '쓰기 싫은 글은 쓰기 싫다', '기자로는 더 살기 싫다'. 우야근동 앞으로도 내 인생이 '글'을 주축으로 흘러갈 것은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한 때의 꿈이었던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원없이 경험해봤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란 인간은… 회사의 녹을 먹는 직장인으로서는 과하리만치 하기 싫은 일, 쓰기 싫은 글에 대한 반작용이 큰 인간이었다. 물론 밥벌이를 위해서는 나도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오랜 세월 겪어본 나란 인간은, 불가피한 게 불가피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12월 초, 회사에 사직을 고했다. 바뀐 시스템에 따라 내가 사내 전자결재 1호 퇴사자여서, 다른 이들처럼 종이가 아닌 '클릭' 한 번에 사직서를 올릴 수 있었지만, 클릭 이전에 편집국장실부터 '낙낙' 했다. 클릭 이후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눈물은 생각보다 별로 나오지 않았다.


나흘 간의 연차 소진 기간이 끝나고, 12월 8일 나는 비로소 퇴사를 했다. 만 9년 만에 겪는 무소속 인간, 벼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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