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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Apr 07. 2023

퇴사 후 배낭여행, 한 달 살기를 하지 않는 이유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1

퇴직 절차를 다 마치고, 한동안은 점심 저녁으로 약속이 이어졌다. 회사 및 업계 선후배들과 갖는 퇴직 인사였다. 점심 저녁으로 '퇴직의 이유'를 설파하며 남을 이해시키려다보니, 나 스스로도 정리가 됐다. "아, 내가 이래서 퇴사를 했구나…"


퇴사 후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에 하나는 "어디 안 가?" 였다. 이직이 아닌 퇴직을 한 이상 '이때야 말로 발리 한 달 살기를 해야 한다', '인도처럼 회사 다니면서는 엄두 안 나는 여행을 갈 때다' 등등의 조언을 들었다. 그러나 그 얘기들 다 나에게는 영 와닿지 않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혼자 하는 여행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유명 여행 유튜버들처럼 타지에 가서 변죽 좋게 사람 사귀는 재주는 없었고, 그렇다고 혼자서 앞뒤없는 상념에 젖어드는 여행도 싫었다.


나는 집을 좋아하지만 밖도 좋아하고, 여럿이 있는 걸 반기면서도 혼자이고 싶어하는 인싸 중의 아싸, 아싸 중의 인싸다. 그런 한편으로 완벽하게 내 손으로 통제된 공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 가서 '어버버' 대는 나를 목도하기도 싫었다. (내 인생의 '어버버'는 회사에서 그만큼 했으면 됐다 싶었다...)


하지만 느지막히 일어나 점심은 폭식, 저녁은 폭주를 하는 며칠을 지내다보니 퇴사 후의 어떤 리추얼, 칸막이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낸 여행지가 제주도였다. 엄마의 고향이라 매우 만만하면서도, 적당히 타지라는 느낌도 드는 제주도가 내게는 베스트였다. 내 성향상 한 달은 오바고, 닷새 정도가 젤 적당하다 싶었다. 그러나 혹 모르니까, 하며 서울로 올라오는 표는 끊지 않는 '퇴사자 플렉스'를 누리며 12월 18일 제주로 향했다.


'따로 또 같이'를 지향하는 나답게 여행 일정은 적당히 친구와, 또는 홀로 있는 일정으로 짰다. 내게는 제주도에서 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기에, 제주 시내에 있을 때는 그와 조우하고 산골로 들어갈 때는 홀로 있는 편을 택하기로 했다.(모르는 분이 있을까 싶어 일러두는데, 제주는 어마어마하게 큰 섬이며 제주 시내에 사는 네이티브더러 자꾸 서귀포나 애월, 구좌로 가자 그러면 그들에게는 보통 부담이 아니다.) 마침 내려가는 날부터 바다에 돌풍이 불어, 대다수 비행기편이 결항된 가운데 내가 예약한 비행기는 가까스로 '떴다'. 1시간 반을 오르락내리락 멀미를 유발하더니 곡절 끝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첫 이틀은 탑동에 숙소를 잡고, 제주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웨이팅이 길다는 신상 이자카야에 가서 친구와 맥주도 기울이고, 서울 못잖게 힙해보이는 빈티지샵을 찾아다녔다. 운전면허가 없기 때문에, 친구와 있을 때가 아니면 철저히 두 다리에 의지해서였다. 친구와는 지난 여름에도 제주에서 만났으니까, 불과 네 달만이었다. 근 몇 년 간 제주도에 내려올 때마다 '퇴사 퇴사'를 외쳤던 애가 '레알' 퇴사하고 돌아온 것에 친구는 적잖이 놀랜 거 같았다. 그러나 더 많이 축복해주었다. 맛난 술도 척척 사주고, 가고 싶다는 맛집은 다 데려가 주었다.


사흘째부터는 구좌읍 종달리로 들어갔다. 거기 있는 게하 1인실에 2박을 예약해놓은 터였다. 종달리는 내가 좋아하는 평대리처럼 적당히 힙하고 적당히 조용한 게 괜찮아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카페와 술집, 책방들도 꽤 있는 한편으로 바다와 오름이 다 멀지 않은 게 맘에 들었다. 이 나이에 호텔이나 펜션도 아닌 게하는 좀 벅차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고작 이틀이니까' 하며 호기롭게 넘겼다.


폭설과 돌풍이 나린 2022년 12월의 종달리.


밤이면 적당한 아늑함이 인상적이었던 게하의 이른바 '커뮤니티룸'에서, 나는 근처 와인샵에서 산 하트 보틀 와인을 들고 앉아 홀짝였다. 따땃한 코타츠에 앉아 책을 읽거나, 가져온 타로 카드로 내 앞으로의 운을 점쳐보기도 했다. 그렇게 정신이 혼곤해진채 앉아 있었더니, 또래의 게하 주인장이 말을 걸어왔다. 사업운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익숙치 않은 분야에 새로 사업을 확장하며 겪는 어려움 등이 타로로 보여서 그렇게 얘기해줬다. 그는 "안 그래도 최근 멘붕이 왔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가 들려주는 향후 사업 구상에서 젊은 나이에 사업으로 단련이 된 이의 근력이 느껴져서, 적이 멋져 보였다.


게하 주인의 선전(?)으로 혼곤한 타로 살롱에는 간혹 손님이 찾아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 직전에 홀로 제주를 찾은 20대 중반의 여성 손님과 함께 일하던 이를 못 잊는 게하 스태프 등이 손님으로 왔다. 복채는 와인 한 잔과 사진 엽서 두 장, 막 내린 커피 한 잔 등이었다. 내 리딩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도, 가로젓는 이도 있었다. 엉터리방터리 도사인 나는 "그것이 곧 본인의 마음"이라고 일러줬다.


타로 복채로 받은 엽서와 산미가 인상적이었던 갓 내린 커피 한 잔.


게하에서의 둘째날 밤에는 하프가 아닌 온전한 와인 한 병을 사다가 동네 포차에 갔다. '비처럼 음악처럼'이 우퍼 빵빵한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주인장 아저씨가 연신 두부 조림, 알배추 등의 서비스 안주를 내줘서 혼자서 도합 4~5개의 안주를 품고 와인 한 병을 빠르게 비워내려갔다. 배가 빵빵해졌고 게하에 와서는 곧장 잠이 들었다.


'비처럼 음악처럼'이 흐르던 종달리의 포차. 콜키지도 프리였다.
뒤이어 나온 멍게 안주. 굿...


제주 여행의 나흘째 되던 날, 다음날 뜨기로 돼 있던 내 비행기가 결항됐다. 제주에 와보니 역시나 여행은 닷새면 충분하다는 내 판단에 따라 급히 예약한 비행기였는데 결국 결항이 된 거다. 2년 전 퇴사를 선언했다가 갑자기 긴 휴가를 받았을 때도 난 제주에 내려왔고 그때도 서울로 가는 비행기가 결항이 됐기에 결항에는 제법 익숙했다. 곧바로 머무르던 게하의 숙박을 하루 연장했다. 비바람을 뚫고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국인 세화우체국에 방문해 친구들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부쳤다. 우체국 직원은 "기상이 안 좋아 배가 언제 뜰 지 모른다"며 "우편물이 늦게 도착해도 괜찮느냐" 물었다. 그렇게 된다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아닌 연하장이 되겠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그날은 게하 근처 호프에서 돈까스 안주에 생맥주를 마셨다.


쓰다보니 '난중일기'처럼 돼 가는데, 제주는 그만큼 기상의 영향이 큰 곳이다. 더군다나 나같은 뚜벅이는 그토록 치열한 돌풍과 폭설을 맞닥뜨리고 보니 하는 수 없이 종달리에 고립될 수 밖에 없었다. 낮에는 날이 좀 잠잠해졌을 때를 기다려 부지런히 걸어 밥을 먹고, 이 카페 저 책방으로 옮겨다녔다. 제주 도착 엿새째 되던 날, 어렵사리 새로 예약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제주 시내로 오자마자 또 결항을 맞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결국 크리스마스까지 제주에서 보내라는 것이 하늘이 계시로구나…' 고양에서 두 냥이를 돌봐주는 친구에게 '하루만 더'를 외치고, 시내에 호텔을 잡았다. 그날 저녁, 다시 만난 친구와 흑돼지를 먹었다. 호텔을 수놓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날을 자축하는 조그만 조각케익도 샀다. 부지런히 수다를 떨고, 호텔 욕조에서 반신욕도 즐긴 뒤 잠이 들었다.


제주의_크리스마스.jpg


제주 입도 일주일 되던 날에서야, 나는 출도할 수 있었다. 바다 건너 산 건너 집으로 왔더니 지독한 똥냄새와 함께 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두손 가득 그들을 안았더니, 그들 특유의 꼬순내가 훅 끼쳐 왔다. 그래, 이게 우리 집이지. 마 홈 스윗 홈.


그 일주일 간의 여행 후, 나의 여행욕은 거의 싸그리 사그러들었다. 결항 때문에 연거푸 희망고문을 당한 탓도 있고, 눈에 비바람에 제주 날씨가 무자비한 탓도 있었지만 난 여행 펄슨(person)이 못 됨을, 그 짧지만 내 인생에서는 젤 길었던 여행에서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그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돈을 쓰기만 하는 기분이 별로였다. 밥 먹으러 간 식당에서 만 원, 카페에서 오천원, 책방에서 만 오천원 하는 식으로 내 삶이 '소비의 영역'으로만 수렴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미리 등산이나 요가 같은 어떤 액티비티를 계획하고 갔으면 좀 나았으리라고 친구들은 첨언했지만, 나는 그렇게 다이나믹한 활동을 즐기는 펄슨도 못 된다. 게다가 모든 게 나를 위해 세팅돼 있는 고양의 '홈 스윗 홈'과 거기 있을 두 마리 냥이들이 생각나서 원거리의 삶이 그닥 즐거운 게 못 됐다. 내게는 여행이(남들에게는 다를 수 있겠지만) '부유하는 삶'으로만 여겨졌다.


지독히도 나는 '내 자기장 안에서의 삶'만 바라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으로, 남들 다 한다는 퇴사 후 배낭여행과 한 달 살기 등은 자연스럽게 접혔다. 나는 나만의 왕국에서 방구석 여포로 잘 지낼 것이다. '퇴사자 인 더 하우스'야말로 나에게 국룰임을, 나는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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