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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May 11. 2023

기사 말고 소설

퇴사가 벼슬은 아니지만 18

소설을 좋아한다. (퇴사썰 각종 꼭지의 시작이 '~을 좋아한다'로 시작되는 게 유감이다. 그러나 퇴사 이후의 삶의 대부분은 좋아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확증편향'이 깊어진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왜냐하면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직장인 삶의 근간이니까, 퇴사자는 그 반대로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뭐든 좋아하게 되면 매체를 통해 열심히 들여다본다 -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 직접 해본다의 패턴을 거친다. 그렇게 들여다본 것은 소싯적의 종합격투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동방신기에 열광할 때 나는 뜬금 종합격투기 선수인 효도르에 심취했었다. 남동생을 따라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기 위해 XTM 채널을 뻔질나게 드나들다가, 당시 세기의 대결이라던 '효도르 VS 크로캅' 프로모션에 세뇌를 당했다. 디데이를 알리던 TV 화면 속 광고를 보다가 어느날부턴가 내가 그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됐고, 당일날 TV를 통해 생중계로 경기를 시청했다. 어려서부터 타이슨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격투기 중계를 좋아하던 나는 그 경기를 시종일관 마음 졸이며 봤고… 대학 때 서울로 유학 와서는 '최홍만 VS 아케보노' K-1 경기를 혼자 가서 직관했으며… 대학 가라데 소모임에 가입해 직접 격투기를 배워도 봤다. (정확히 앞서 말한 '본다 - 가까이서 본다 - 해본다'의 경로를 밟았다.)


소설을 좋아한 건, 연원이 더 깊었다. 초등학교 때 세계문학전집을 탐독했고, 고3 때는 야자 시간에 공부 대신 <토지>를 완독했다. 국문과에 진학해서 또 소설을 원없이 읽었고, 국회 의원실에서 인턴할 때는 국회도서관의 아무도 손대지 않은 신간 소설을 가장 먼저 빌려다가 읽는 재미로 살았다. 내 최고의 유희이자,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취미이기도 했다.


문화부에서 2년 반 동안 문학 담당 기자로 일한 덕에, 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도 자연히 생겼었다. 내가 연예인처럼 여기던 작가님들을 실제로 만나 궁금한 것들을 잔뜩 질문했다. 책의 기획, 편집을 맡은 편집자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는 것도 재밌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입을 딱 벌릴 만치 생소하고 굉장하다가도, 어떨 때는 '나도 그런 얘기는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지점들이 있었다. 경이와 친밀 사이, 거기서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나도 소설을 안 써본 건 아니었다. 편집기자로 일할 때, 출근길에 다리를 다쳐 한 달 병가 휴직을 한 적이 있었다. 휴직서를 제출하던 바로 그 날, 나는 타 언론사의 지면에서 신춘문예 접수가 시작됐음을 알게 됐다. 어라?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 깁스한 몸을 하고, 나는 집에서 소설이란 걸 처음 써 봤다. 내 이야기를 각색했음으로, 그닥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2주 정도에 걸쳐 일필휘지로 작성을 하고, 친구에게 해당 언론사로 제출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결과는 '탈락'이었다. 기대는 안했지만 결과를 마주하고는 나도 모르게 침울해졌다. 이후 문화부로 간 나는 신춘문예 당선자들에게 가장 먼저 당선 소식을 알리는 일을 했다. 그 분들의 환희와 희열 등이 핸드폰을 타고 건너오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스라하게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건너 퇴사를 결심했을 때, 회사 선배들이 물어보는 "이제 뭐할거야?"에 대응하는 내 대답이 "소설 강의 들어보려고요"였다. 회사 다니면서도 못 할 일은 아니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미뤄 봤을 때 '하루 종일 기사를 쓰고 와서 집에 와선 소설을 쓴다?'는 불가능한 명제처럼 보였다. 시간 많을 때 써봐야지, 그래야지. 2월 말부터 10주 과정으로 하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하는 소설 습작 강의에 등록했다.


근 12년 만에 다시 찾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 2011년, '언론고시' 준비생 시절일 때 나는 이곳에서 입사용 논술과 작문을 배웠다.


14명의 문우와 함께, 1주일에 한 번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습작의 이론'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리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10회 강의 중 이론 설명을 2회로 끝났고 그 다음부턴 바로 합평이었다. 3회째부턴 숙제로 소설을 써 가기 시작했다. A4 용지로 3장 짜리, 미니 픽션이었다. 초보자를 위한 강의이기에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보다는 '~을 묘사하시오' 같은 다소 단편적이고, 기술적인 숙제를 주실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전격적이었다. 다소 러프한 과제 주제에, 나는 '멘붕'이 왔다. 구상해둔 스토리가 하나도 없는데… 뭘 쓰지?


그 때부터 나는 작은 건수만 생기면 부지런히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굴렸다. 온라인 기사에서 본 흥미로운 주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내가 겪었으되 도무지 이해가 안 가 머릿속에 저장해둔 이야기 등을 고양-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 안에서 쇠똥구리가 쇠똥 굴리듯 굴려봤다. '만약 나라면? 캐릭터가 독특한 내 친구 A라면? 그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가 주된 탐구 사항이었다. 아주 약간의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거기에 어울리는 주인공의 이름들을 짓고 나면 어느덧 목적지였다. 그 쯤 되면 매우 뿌듯하고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 약간의 스토리를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냈다'.


다음은 마감 직전, 텅 빈 화면 위 커서를 마주하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나왔다. 내가 소설을 쓰는 목적은 뚜렷했다. 도시 여자 이야기. 첫 수업, 자기소개 시간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도시와 여자 이야기에 환장합니다. 2023년 버전 '칙릿' 소설을 쓰는 게 제 꿈입니다." 나는 2000년대 중후반, <달콤한 나의 도시>나 <스타일> 같은 이른바 '칙릿' 소설을 탐닉했다. 고3때 <달콤한 나의 도시>가 신문에 연재되던 때는, 아침에 부리나케 읽고서 학교에 가 변사처럼 친구들 앞에서 그래서 그들이 사귀는지 안 사귀는지를 열심히 설파했었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 내가 실제 도시에 홀로 선 여자로 살아갈 때는 그들의 삶이 실제 내 삶과 맞닿아 있다고 여겼다. 비슷할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었지만, 어떤 극적인 국면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나는 '칙릿'의 영향을 받았다고 나는 단연코 말할 수 있다. 나의 퇴직 결정도 그렇고.


나의 소설은 주로 '술술 읽힌다'(이 얘기는 소설 뿐 아니라 기사나 칼럼 같은 나의 글쓰기 전반에서 내가 자주 듣는 피드백이다), '속도감이 있다'('술술 읽힌다'와 비슷한 말 같다), '재미는 있되 의미가 부족하다' 등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내 바깥의 상상을 못하는 지극한 이기주의자여서, 내 소설은 자연히 내 얘기를 '디벨롭' 시킨 게 많았다. 여러 기억들을 디스크 조각모음 하듯 오려 붙여서 쓰는 소설이었기에, 구체성은 확보한 대신 주제 의식은 흐릿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소설을 쓰는 동안 재밌었다. 팩트에 천착한 글쓰기를 해야만 했던 기사에 비해, 내가 맘껏 꾸며낸 허구 속으로 숨어 들 수 있는 게 기뻤다. 어느 정도 구상만 잡히면, 나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날아다녔다. '이건 내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니까, 당사자가 있는 기사처럼 누구한테 '팩트가 틀렸다'고 항의 받을 일도 없어! 너무 행복해!!'가 소설을 쓰는 동안의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허구의 스토리는 되레, 나를 쪼그라들게 했다. 합평을 두 차례 이어가면서,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는 나의 편견과 편협함을 포함한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사는 사실의 뒤에 숨을 수 있었는데, 소설은 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문우들, 선생님으로부터 '왜 이 인물이 이런 무리한 선택을 했는지 납득이 안 간다'는 등의 평을 받을 때면 나는 백숙 속 털을 다 벗겨낸 닭 마냥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소설은 대단히 무서운 장르로구나… 글을 쓰면서 자신을 숨긴다는 일은 결코 있을 수가 없구나…' 깨달음이 쌓여갔다.


또 한가지,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대상화의 늪'이었다. 당사자도 아닌 내가, 특히나 피해자성이 두드러지는 누군가의 일을 다룰 때 그것은 '대상화인가 아닌가'. 나의 작품을 위해 특정 사건사고를 다루는 것은 사안을 도구적으로 다루는 일인가 아닌가. 나는 내가 취재했던 사건사고들을 소설에 적극 활용하고 싶었지만, 그 떄마다 이같은 생각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특정한 일을 다룬다고 해서 모두가 '대상화'는 아니고 '도구적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소설이 거기서 비껴나 있는가에 대해선 자신있게 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합평, 자유 주제로 실제 단편 소설 분량(원고지 200자 기준 80장 안팎)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이같은 고뇌가 극대화됐다. 나는 그 과제에, 한때 내가 취재했던 '세월호' 얘기를 넣었다. 전격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었고, 소설 주인공이 겪는 여러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소설은 '대상화의 늪'에 빠져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나의 다른 소설들과 달리 문체가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날 합평에서, 문우들은 그런 나의 변화를 대번에 알아챘다. 선생님은 "세월호에 관해서는 다른 소설에서 한 번 '정면 돌파'해 볼 것"을, 문우 중 한 명은 "'도구화를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를 내려놔야 더 잘 써질 것"이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절로 끄덕여지고, 홧홧했던 마음이 차분히 내려앉는 조언이었다.


합평의 재미는, 합평을 거듭하면서 더욱 뚜렷이 알게 되는 문우들의 캐릭터 파악이다. 작품들에 대해 각자의 비평을 쏟아내는 동안, 자연히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더 알게 된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는 더욱 더. 가끔은 그런 일도 있었다. 어떤 문우가 내 작품에 대해 "주인공의 선택이 이해가 안 된다"며 반문을 했는데, 내 대신 다른 문우가 "그건 이러이러해서 슬기님이 이렇게 쓰신 거 같고, 저는 이해가 된다"며 답하는 일도. 딱 그 마음이 내 마음이어서, 신기했다.


현재, 나로선 모든 과제를 제출했고 이제 다른 문우들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이 10주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나의 글쓰기 실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거나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나는 순수창작엔 재능이 없는 거 같다고, 자기 객관화를 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칼럼 작성과는 다른 근육을 쓰는 일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꼈다. 그리고, 작은 개인인 내가 이 커다랗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편 중의 하나가 소설 습작이자 감상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앞으로도 나는 기사나 칼럼이나 에세이로 이해 못하는 세상과 맞닥뜨리면 소설로 달아나고자 시도해 볼 것이다. 올해 신춘문예에 낸다거나, 그런 건 장담 못하겠다. 소설은 철저히 취미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


소설 수업 후 먹었던 내장탕. 이상하게 수업만 끝나고 나면 선지가 듬뿍 들어간 내장탕이 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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