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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와샐리 Dec 04. 2023

친구 결혼식 축사를 하다(3인칭 시점)

축사하는 남편의 준비과정부터 축사하는 당일까지 관찰기

결혼식에서 축사하는 모습을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친구 또는 가족, 지인의 결혼식을 축하하면서 건네는 정성스러운 인사말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암튼 그런 거다. 지금까지 갔던 결혼식에서는 주로 신부의 친구나 가족 아니면 공통지인이 하는 축사를 봤던 것 같다.

남편이 “나 축사하기로 했어.”라고 말했을 때, ‘오? 신랑 가족이 축사하는 건 본 적이 있는데 신랑 친구가 축사하는 건 처음 봐!’라고 생각했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축사까지 하다니.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기분이 뭔가 오묘했다.

그들의 우정을 내가 감히 다른 말을 얹을 수는 없어서 속으로만 생각했지만, 사실 이 친구의 청첩장 모임을 다녀와서 술 문제로 남편과 대판 싸웠었기에 처음에 썩 내키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축사의 주인공은 우리 결혼식에서 사회를 맡기로 했었지만 결혼준비 등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다른 친구에게 사회를 넘겼던 남편의 친구였다. 결혼식도 다 끝나고 마음 편한 남편은 축사를 하게 되었구나. 나는 옆에서 함께 도울 수 있는 것은 돕기로 했다.

결혼식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축사를 같이 하기로 한 친구와 만나서 축사를 적을 예정이라고 해서 나도 함께 갔다.

남자들의 모임이란 이런 건가. 만나자마자 노트북을 켜고 할 일을 시작한다. 안부와 수다는 사치다. 타닥타닥. 타자소리만 들려온다. 이럴 거면 왜 만나서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나야만 진행이 되니까 만난 걸까? 그렇게 각자 맡은 부분을 적고 나서 한번 쭉 읽어보더니 “됐다!”하더니 그들의 만남은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끝난 것 같다. 나도 옆에서 슬쩍슬쩍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어때?’하고, “와이프 말 잘 들으라는 거 넣자. 나 지금 행복해 보이지? 너도 와이프 말 잘 듣고 행복하렴^^” 이런 농담스럽지만 내 바람 같은 마음도 추가해 달라고 했다.(그런데 저건 정말 맞는 말인걸….?)


결혼식 전날은 함께 축사를 하는 친구가 우리 집 집들이로 놀러 왔다. 저렇게 술을 많이 먹어서 내일 축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술병이 다 비워져야 집에 갈 것 같아서 말리지는 않았다. 다음날 보기로 하고 적당한 시간에 집으로 향했다.

대망의 당일날, 먼저 만나서 축사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나도 역시 함께했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수정할 부분을 확인하고(당일에도 수정하는 이 남성들,,,) 스톱워치를 켜놓고 한 번 읽어보니 그들의 연습은 끝이 났다. 준비하는걸 옆에서 봤을 땐 떨지도 않고 대강 준비하는 것 같더니 시간이 다가올수록 떨린다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무심하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니 당일날 인사는 어떻게 하지, 동선은 어떻게 하지 친구와 걱정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으로도 너무 재밌었다. 우리 결혼식 때도 보지 못했던 저 떨리는 표정이라니. 사진을 찍어둘걸 그랬다.

드디어 다가온 축사시간! 나는 왜 조마조마한 건지! 신랑의 표정, 축사하는 남편과 다른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떨리는 목소리로 들리진 않았지만 준비 과정을 전부 지켜본 나에게는 떨리는 진심의 목소리로 들렸다.) 동영상을 찍어 주려고 했지만 사뭇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카메라를 내려놓고 지켜보았다. 고등학교 친구라 그런지 준비할 때도 마냥 고등학생 같더니만 앞에 선 그들은 신랑과 멋진 신랑 친구들이었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실수하면 어쩌지, 너무 장난쳐서 분위기 이상해지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둘은 축사를 잘 마쳤다. 감명받기도 했지만 나는 속으로 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지!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식사 시간에 축사 너무 잘했다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마음은 어떤지 궁금했다. 결혼식이 마친 뒤에도 남편에게 거듭 고맙다고 감동을 전하는 신랑의 모습을 보니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고 부럽기도 했다. 나도 결혼식 순서에 축사를 넣을걸 하는 아쉬운 마음도 살짝 들기도 했다.

옆에서 축사 준비를 쭉 지켜보면서 축사를 통해 그들의 우정이 더 깊어진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약간 내가 부케 받았을 때 받았던 그런 비슷한 느낌이려나…? 친구의 결혼식의 한 부분을 맡으며 더 뜨거워진 그들의 우정이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술 먹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의 어른의 우정으로….^^ 영원하길 바란다.)


<남편이 쓴 글>

친구 결혼식 축사를 하다(1인칭시점)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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