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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길을 걷다(2일 차)

by 서서희

제주 4.3길을 걷다(2일 차)


사진, 글 서서희


제주 4.3 역사탐방 2일 차는 새벽 북촌포구를 감상한 후 시작되었다. 먼저 너븐숭이 기념관에서 북촌리 사건에 대한 개괄 설명을 들었다. 너븐숭이는 넓고 평평한 지형을 말하는 것으로 북촌은 4.3 사건 중 마을 주민 삼분의 일이 희생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피해자를 낸 곳이라고 한다. 1949년 1월 17일 군인 2명이 죽은 데 대한 보복으로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로 모아놓고 편을 갈라 경찰 가족들은 살리고, 빨갱이 가족이라고 지목된 사람들은 옴팡밭(움푹 들어가 있는 밭), 낸시빌레(냉이밭)등에서 학살했다고 한다. 그래서 4.3 사건 후 무남촌, 과부마을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애기무덤 안내판에는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 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20여 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는데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 대학살 때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라고 적혀 있다.

옴팡밭 안내판에는 <'옴팡밭'은 '오목하게 쑥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4.3 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당시 이 일대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 밭의 가운데 있는 작은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순이삼촌 문학비 안내판에는 <현기영은 소설 '순이 삼촌'을 통해 4.3 사건의 참혹상과 그 후유증을 고발함과 동시에 오랫동안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시켰다. 지난 2008년에 정부는 옴팡밭 부지를 매입하여 '순이 삼촌 문학비'를 세웠다. 붉은 피로 상징되는 송이 위에 눕혀져 있는 비석들은 당시 쓰러져간 희생자들의 모습이다.>라고 ...


진지동굴 가는 길에 이희순이라는 유족 분의 체험담을 들었다. 서너 살 무렵 그 당시 집에 없었던 사람들을 산사람이라고 해서 죽이거나 잡아가기에 아버지는 부산에 갔다 돌아와 굴 속에 숨었다고 한다. 잠잠해진 것 같아 나오다가 잡혀갔다고, 그래서 행방불명된 줄 알고 살았는데 나중에야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 처형된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북촌초등학교에 모였다가 동서로 나뉘어 할머니 가족은 죽는 편에 속해 있다가 간신히 도망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모인 사이 마을은 전부 불타 없어져 함덕으로 이주했지만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할머니 가족은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마을로 돌아와 집을 짓고 살았는데, 빨갱이 집이라고 계속 조사가 나왔다고. 할머니 자신은 공부 못하고 살아도 아쉬울 게 없었지만 유복자 남동생은 머리가 좋은데도 연좌제에 걸려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모든 것이 밝혀져 보상을 받는다는 말을 들은 남동생은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하는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설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먹고 다랑쉬오름이 있는 곳에 있다는 다랑쉬굴로 이동했다. 다랑쉬굴 안내판에는 <1948년 12월 18일 하도리, 종달리 주민 11병이 피신해 살다가 굴이 발각되어 집단 희생당한 곳이다. 이 날 군경민 합동 토벌대는 수류탄 등을 굴속에 던지며 나올 것을 종용했으나, 나가도 죽을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놓아 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유족들은 민보단원들로부터 가족들의 희생 소식을 전해 들었으나 당시의 상황은 사체를 수습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곳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제주 4.3 연구소' 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으며,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만인 5월 15일 한 줌의 재로 변해 바다에 뿌려졌다. 다랑쉬굴은 유해들이 밖으로 꺼내진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는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라고... 지금은 다행히 콘크리트를 부수고 돌로만 막혀 있었다. 다랑쉬굴에서도 사람들이 죽었지만 다랑쉬마을도 모두 불태워져 역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제주항을 들렀다. 제주항은 과거에 산지항으로 불렸으며 산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모아 제주항에 있는 일제강점기 동척회사 자리인 주정공장으로 모아 와 일부는 죽이고 일부는 대전, 대구 형무소 등으로 보냈다가 거기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지금 주정공장 자리는 많이 없어지고 일부만 매입되어 기념비를 세우고 건물을 지어 용도를 논의 중이라고 한다.


1박 2일의 제주 역사기행을 하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올해 74주년이지만 반 세기 정도를 4.3에 대해 함구하고 지낼 수밖에 없었으며 개인이나 마을이 연좌제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마을 이름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제주도 전체로는 10분의 1이 죽었고, 북촌은 마을 사람들의 3분의 1이 죽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북촌은 한날한시에 마을 전체가 제사를 지낸다는 이야기...

그동안 제주를 다니면서 아름답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아픈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 것에 대해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좀 알았으니 다음에는 친구들과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제주 올레길을 걸을 계획이 있는데 제주 4.3길을 걷자고 의논해 봐야겠다. 1박2일 정말 뜻깊은 여행이었고, 이런 여행을 세세히 준비해주신 관계자분들께 정말 깊이 감사드린다.


*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분들과 유족분들께 머리숙여 애도를 표합니다.


KakaoTalk_20220616_104356387.jpg 너븐숭이 기념관 앞 애기무덤 앞에서...
KakaoTalk_20220617_154631201_03.jpg 소설 <순이삼촌> 기념비
유족의 체험담.jpg 유족의 체험담 듣는 시간
KakaoTalk_20220616_121258337_01.jpg 진지동굴
KakaoTalk_20220617_171407786_20.jpg 북촌초등학교 비문 앞에서
KakaoTalk_20220616_144129449_02.jpg 다랑쉬굴 앞에 세워진 비문
KakaoTalk_20220616_163140121_02.jpg 옛 주정공장 터에 세워진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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