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 2

- 책으로 만나는 새 이야기 21

by 서서희

글 서서희

참고한 책 <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엘리즈 루소


7.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 사랑

- 멧비둘기 한 쌍이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아 다정하게 서로 깃털을 골라준다. 회색기러기는 제 짝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쏟는 것은 물론, 새끼가 자라는 첫해 내내 끈끈한 가족애를 다진다.

- 새들 역시 ‘우정’이라는 이름의 사랑을 주고받는다. 수염오목눈이나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무리를 지어 산다.

- 티티새는 ‘저 예쁜 암컷에게 세레나데를 부를지 말지’를 몇 시간 동안 고민하지 않는다. 수컷은 마음에 드는 암컷이 있으면 곧바로 다가가 노래를 부른다. 상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 우리도 ‘망설임’이라는 것을 거의, 아니 전혀 모르는 듯한 새들에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란 멧비둘기 한 쌍처럼 그저 서로를 보듬는 것일는지 모른다.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다른 어디로도 가고싶어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DSC_2692.jpg 2025년 12월 중국에서 만난 수염오목눈이
KakaoTalk_20240102_195522249.jpg 2024년 교동도에서 만난 붉은머리오목눈이

8. 지금 여기에 만족하는 삶

- 암탉에게 흙목욕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부드럽고 먼지가 잘 이는 흙을 찾아 그 흙에 마구 뒹굴며 온몸을 비비는데 그 몸짓이 어찌나 격렬한 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러다 먼지 구름이 가라앉을 때, 암탉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감았다 하며 만족스러운 듯 낮고 깊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꽤 오랫동안 이어지고 느긋하게 그 시간을 즐긴다.

- 흙목욕을 하고 있는 암탉을 보고 있노라면 라틴어 경구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과 ‘지금 여기에 머물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생각난다.

→ 우리는 늘 해야 할 일에 쫓기고, 이미 지나간 일을 곱씹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목욕하는 순간조차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암탉이 매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듯이.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9. 아름다운 예술이란 무엇일까?

-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성이 “예술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 오목눈이가 깃털을 비롯해 버들강아지, 가는 나뭇가지, 작은 이끼 덩어리로 지은 둥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 호주에 서식하는 바우어 새는 ‘예술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하게 둥지를 꾸민다. 수컷은 둥지가 암컷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푸른색 페인트’를 칠한다. 보라색, 파란색, 검은색 열매를 모은 뒤 자신의 침과 산불로 생긴 숯을 섞어 페인트를 만들어 작은 나뭇껍질 조각을 붓 삼아 둥지에 바르고는 둥지 주변을 온갖 푸른색 물건으로 장식한다. 이것이 예술이고 창조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 새들의 노랫소리 또한 예술이다. 봄철 숲으로 나가면 같은 종의 수컷 두 마리가 가까이에 앉아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고 누구의 음색이 더 다양한지를 겨루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조류 중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수컷이 암컷의 마음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다. 비록 생존과 번식을 위한 구애의 노래라 해도, 새들의 노래는 자연스럽게 예술이 된다.

→ 예술에 대한 갈망에는 선천적이고 본능적이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무언가가 깃들어 있다. 인간도 각자의 영역에서 자마다 창의력을 발휘하고, 수많은 아름다움에 감동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창의력을 억누른다는 데 있다. 우리가 가진 예술성과 창의력을 발산한다면 우리도 새들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DSC_3830_00001.jpg 2018년 서울 창경궁(?)에서 만난 오목눈이
DSC_5735.jpg 2025년 서울식물원에서 본 개개비 둥지
KakaoTalk_20230622_235431785.jpg 2023년 어린이대공원 꾀꼬리 둥지
스크린샷(290).jpg 네이버에서 퍼온 사진(새틴바우어 새의 둥지 )

10. 머무를 자유, 떠날 자유

- 새장의 문을 열어놓으면 카나리아는 새장을 벗어나 한껏 들떠 하늘로 날아오르지만, 이내 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익숙한 작은 세계, 새장으로 돌아간다.

- 닭장 속 암탉도 문이 열리면 선뜻 바깥으로 못나가다가 조금씩, 서서히, 더 멀리 움직인다. 하지만 닭장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몇 주가 걸린다.

- 새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암탉이나 비둘기는 굳이 가두지 않아도 자신이 사는 닭장이나 집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은 날씨가 궂거나 위험을 감지하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반드시 어딘가를 떠나거나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따뜻하고 평온한 집이 있다면,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가까이 두고 보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아늑한 둥지를 마련하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둥지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어우러진 삶, 이것이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11. 자유분방한 사랑을 이해하는 일

- 평범하기 그지없는 바위종다리는 화려한 깃털도, 아름다운 노랫소리도,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새는 일부다처와 일처다부를 동시에 실천한다. 암컷은 먹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굳이 멀리 나가지 않고 좁은 영역 안에서 생활한다. 암컷이 모여 있으니 수컷은 짝을 선택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만큼 번식 성공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암컷을 먹이를 찾아 먼 곳으로 이동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수컷을 만날 가능성이 커진다.

- 그러므로 바위종다리의 방탕한 성생활은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자연의 균형이 깨졌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신호라 할 수 있다. 바위종다리가 ‘다처다부’라는 번식 전략을 선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기고 유전적 다양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이 새는 스칸디나비아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질 수 있었다.

- 물론 거위나 백조, 일부 맹금류처럼 일처일부제를 충실히 지키는 종도 있다.

→ 인간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어떤 방식의 육체적 사랑을 택하든 결국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 어떤 사랑은 백조처럼, 어떤 사랑은 바위종다리처럼. 선택은?

DSC_4582_00001.jpg 2018년 불암산 정상에서 만난 바위종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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