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 만나는 새 이야기 23
17. 선과 악을 판단하는 우리의 시선
- 탁란을 하는 뻐꾸기는 ‘패륜’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뻐꾸기의 이런 습성은 오랜 진화의 결과이지, 다른 새의 삶을 ‘망치려는’ 의도는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도 아낀다면 더할 나위 없다. ‘모든 알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번식 전략으로 뻐꾸기 새끼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도둑갈매기는 다른 새의 먹이를 빼앗으며 기생하듯 살아간다. 여기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제비갈매기’다. 그런데 도둑갈매기에게 툭하면 먹이를 빼앗기는 제비갈매기는 의외로 도둑갈매기를 반긴다. 특히 번식기에 그렇다. 왜일까? 북극의 고위도 지역에 둥지를 트는 도둑갈매기는 사실 이 구역의 ‘경호원’이다. 북극여우가 알이나 새끼를 노리고 접근하면, 도둑갈매기가 재빨리 감지하고 달려들어 여우를 영역 밖으로 몰아낸다. 제비갈매기로서는 번식기처럼 육체적으로 취약한 시기에 도둑갈매기 둥지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큰 이득이 된다. 물고기 몇 마리 빼앗기는 정도는 감수한다는 의미.
→ 나치 점령 시절,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은 법적으로 범죄자였다. 지금과는 다른 기준이다. 이처럼 선과 악의 개념은 본래부터 존재한 자연의 법칙이나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기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 실체 없는 두려움에 흔들릴 때
- 방울새 한 마리가 모이를 쪼다 갑자기 그림자 하나에 놀라 급히 날아오르다가 커다란 유리창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음을 맞는다. 이처럼 두려움은 때때로 어이없는 선택을 하게 한다.
- 두려움은 왜 생기는 걸까? 사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두려움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로서 생존에 도움이 된다. 인류는 두려움 덕분에 위험을 피할 수 있었고, 방울새처럼 ‘겁이 많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 그렇다면 ‘해로운 두려움’과 ‘이로운 두려움’, ‘정상적인 두려움’과 ‘비정상적인 두려움’을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새는 이로운 두려움과 해로운 두려움을 구분하지 못한다. 새는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날아오른다. 반면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비정상적인 불안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나 그런 반면 때로는 내면의 감정을 느끼는 동물적 본능을 잃어가고 있기도 하다. 두려움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신호이자, 삶을 지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 이제부터라도 몸이 보내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잃어버린 동물적 본능을 다시 일깨워보자. 이성적인 뇌는 때때로 우리를 속인다. 지나치게 계산적인 생각은 마음의 소리를 억눌러 들리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억누르지 않고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면, 비로소 마음이 하는 말을 또렷하게 들을 수 있다.
19. 다름을 특색으로 받아들이기
-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같은 종의 새라도 서식지에 따라 ‘억양’이 다르다. 푸른머리되새의 노랫소리는 스트라스부르, 파리, 아작시오 등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르다. 마르세유 되새는 파리 되새와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노래한다.
-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사투리’에 비유한다. 새들이 ‘사투리’를 쓰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다만 같은 서식지에 사는 개체들이 서로를 알아 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실제로 타지 억양을 가진 되새를 막는 효과도 있는 듯하다.
→ 되새가 다른 억양으로 노래하는 새를 침입자로 여기고 내쫓듯이 사람도 낯선 억양으로 말하는 이를 보면 은연중에 경계심을 품기도 한다. 반면 익숙한 억양을 쓰는 상대에게는 단지 ‘동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척 우호적이 된다. 과연 되새도 그럴까? 낯선 곳에서 같은 억양을 들으면 ‘우리 지역 출신이군!’ 하고 반가워할까? 인간이 과연 되새보다 더 진화한 존재인지 의문이 든다.
20. 나답고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맺는 관계
- ‘짐승 같은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동물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게 아니라, 오직 본능에 따른 행위를 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까려 있다.
- 짝짓기 철이 되면 청둥오리는 암컷보다 수컷이 많기 때문에 두세 마리의 수컷이 한 암컷에게 동시에 구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 암컷은 난폭한 수컷들에 눌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익사하기도 한다.
- 수컷 제비갈매기는 무턱대고 암컷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수컷은 암컷이 건강하게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작은 물고기를 물어와 암컷에게 선물로 건넨다. 수컷은 이렇게 정성 어린 선물로 암컷의 마음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짝짓기를 시작한다.
- 젠투펭귄 역시 수컷은 짝짓기 철이 되면 암컷에게 조약돌을 선물한다. 암컷이 알을 낳을 자리와 바닷가 사이를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수없이 오가며 조약돌을 하나씩 물어다 암컷 발치에 내려놓는다. 암컷은 수컷이 물어다 준 조약돌을 무척 소중하게 여기고, 게으른 이웃 수컷이 조약돌을 슬쩍 훔쳐가려 하면 악착같이 지켜낸다.
→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새들 가운데서도 ‘이성적이고 차분한’ 종들, 즉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짝짓기를 하는 종들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번식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21.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의 이면
- 새에게 화려한 깃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생존에 꼭 필요한 도구이다. 다른 개체와 소통하는 수단이자, 구애의 순간에 암컷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력한 무기이다. 암컷은 대체로 깃털이 화려할수록 건강하고 생존력이 강하다고 판단해 그런 개체를 선택한다.
-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수컷의 화려한 깃털은 대개 자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부족한 점이란 바로 노래 실력이다. 새들은 깃털이냐 노래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둘 다 가지지 못한 갈까마귀나 큰까마귀는 ‘지능’을 가진다.
- 최근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면 검은머리방울새의 암컷은 수컷들 가운데 가장 선명하고 화려한 색을 지닌 수컷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가 가장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가장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들은 색소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어서 먹이를 통해 얻어야 한다. 따라서 먹이를 더 잘 찾아내는 수컷일수록 깃털 색이 더 화려해질 수밖에 없고, 암컷이 수컷의 깃털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유도 새끼에게 충분한 먹이를 공급할 능력이 있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인간 사회에서도 외모를 잘 가꾼 사람이 표면적으로 더 많은 이성에게 관심을 받곤 한다. 유혹이란 넓게 보면 어느 정도의 지능을 발휘해 자신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 삶과 죽음을 배우는 법
- “새들은 죽을 때가 되면 몸을 숨긴다.”라는 말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자그마한 박새는 죽음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즐긴다. 앞날을 염려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지도 않으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도 않는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품지 않는다. 그저 지금을 살아갈 뿐이다.
-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어느 한쪽만 존재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 동물, 식물 등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이다. 게다가 생물학적으로 보면 완전한 소멸도 없다. 우리가 죽더라도 몸을 이루고 있던 원자들은 자연으로 돌아가 지렁이의 일부가 되거나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그 지렁이나 꽃은 언젠가 새의 먹이가 된다. 이처럼 생명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 자연과 새들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삶의 이치를 일깨워준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배울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