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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Mar 17. 2023

곰곰이 생각해 봐도 답은 역시 나인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는 걸 알고 있다

왜 인지 이유를 모른다.

언제 오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달려와서는 나에게 쿵하고 처박은 놈

놈의 이름은 무력감, 우울감, 슬럼프라고 불린다


헤쳐나갈 뚜렷한 방도는 없었다.

그냥 무작정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동서고금의 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이놈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에게 강약중간약의 고통을 주었다.

때로는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강렬한 고통을 주고,

가끔은 '정말 나를 죽이려는 생각이 아니야.'라는 착각이 들게끔 나의 숨통을 살짝 풀어준다.


나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이놈에게 지지 않으려고 싸웠다.

아침 6시, 이른 새벽, 해가 뜨기도 전 일어나 운동을 했다.

체력으로 이겨보려 했다.

잘 읽히지 않는 책을 억지로라도 쑤셔 넣었다.  

그놈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러다

작은 균열이 생겼고

그 작을 균열은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패배했고 더 깊은 곳으로 빠져버렸다.


산책도 하기 싫었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는 일도 너무너무 귀찮았다.

집안에 빨래는 쌓여갔다.

잠을 잘 자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겨울처럼 무거운 시간을 보냈다  


병원을 뻔질나게 다녔다.

고질병인 거북목 치료도 받고 족저근막염 치료도 받았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서 식사량도 줄였다.

충치가 새로 생겼는지 어금니가 불편해 치과도 다녀왔다.

그렇게 고루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나 돌아볼 수 있었다.


결국 시간이 약이긴 했지만 난 나에게 좀 더 칭찬을 하고 싶다.

가라앉는 동안 나는 내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고 싸워냈다.

그리고 결국은 꺾이고 말았다.

패잔병이 되어 모든 걸 잃고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 모든 것에 대비가 되어있었다.

나에게 휴식시간을 주고 스스로 치유하게끔 만들었다.

병원을 갈 만큼 몸이 엄청 아픈 것도 아니었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몸이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했는지 무언가를 할 의지가 생겼다.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이 생겼다.

더 이상 난파되어 침몰 중에 배가 아니다 추진력이 생긴 잠수함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 속이지만 이제 어렴풋이 보이는 수면의 빛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다

바로 도착해서 시원한 공기를 맛볼 수는 없지만

이제 불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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