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루틴
족저근막염, 힐패드증후군, 어깨와순파열로 꽤나 고생했다. 회복될 것이라고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1년 이상 지속된 통증은 나를 여러 번 무너뜨렸다. 하마터면 수술을 택할 뻔하기도 했다.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거란 걸 알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의지할만한 무언가를 계속 찾곤 했다. 전문의의 소견, 유투버의 증언, 자기 실험과 관찰에 현혹되었고 목적도 상실한 체 복잡한 길을 택했다. 여러 번의 분노-타협-우울-수용을 거친 시간들이었다
다치기 전 거의 매일 운동을 했었다. 조금 무리를 했다고 느껴지더라도 다음날이면 금세 통증 없어졌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나의 세포들이 좀 더 강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다만 여러 가지 욕망과 경쟁심이 더해져 몸을 과하게 쓰게 되었다. 약간의 통증은 그리 위험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훈장처럼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의 세포들이 불만은 조금씩 커져갔지만 나의 욕망은 완강했다. 둘 중 하나가 포기하기 전까진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완전 파업에 돌입했고 운동생활은 물리적 동력을 잃어버렸다.
아주 고루하게 조금씩 회복되었다. 돌이켜 보아도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 한 가지를 꼽기는 힘들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졌다.
처음부터 다치지 않는 것이다. 강화운동보다 준비운동이 더 시급했다.
난 아침 러닝을 매우 좋아한다. 저녁보단 공복상태의 아침을 더 선호한다.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한 필수 코스이다. 빼먹게 되는 날엔 몸이 영 찌뿌둥하다.
다치기 전까진 밤새 뻣뻣하게 굳은 몸을 고려하지 못했다. 적당히 스트레칭을 조금 하고 4~5킬로를 느린 속력으로 달렸다. 느리게 달리는 것이 준비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몸이 조금 피로하더라도 늘 비슷한 시간에는 눈이 떠졌고. 모닝커피 한잔이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몸에 부담이 된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저녁에 달리면 오히려 정신이 지쳐있었다. 나의 정신력은 저녁시간 즈음 딱 알맞게 고갈된다. 의지로 방전된 배터리를 다시 채워 운동 가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운동 종료 후 다시 빠르게 방전을 시키고 숙면을 취하기도 어려웠다.
운동시간을 줄이고 준비운동시간을 늘리기로 했다. 15분 달리기를 위해 30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모닝 루틴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기다려온 커피를 눈뜨자마자 찾는 건 이전과 같다. 다만 커피를 만드는데 좀 더 오래 걸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에스프레소 기계가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만들어 내는 데는 몇 초면 충분하지만 새로운 방법은 좀 더 오래 걸린다.
볶은 원두봉투를 열면 커피보다 더 진한 향기가 난다. 몇 숟갈 덜어 그라인더에 넣는다. 무선 자동 그라인더가 꽤나 편리하다. 수동그라인더는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굵기조절까지 하면 더 까다롭다. 아침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수동그라인더가 만들어내는 커피 향을 더 즐길 수 있다.
원두의 절반정도를 굵은 입자로 갈아낸다. 베트남 커피드리퍼(사진에 위쪽)에 담는다 그리고 중간 덥게(사진의 왼쪽)를 강하데 눌러 닫는다. 일단 필터 완성이다. 그리고 고운 입자로 원두 나머지를 갈아내고 담는다. 굵은 입자 없이 고운 입자만 담으면 진흙처럼 뭉쳐 물이 내려가질 않는다. 베트남 커피드리퍼는 굵은 입자로 만든 원두필터를 사용하여 텁텁한 맛을 낼 수 있는 고운 입자를 걸러낸다. 그래도 걸러진 커피 원액에 침전물이 약간 생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조금만 기다리면 원두가 물을 머금는다. 그리고 한두 차례 물을 더 부어주고 몇 분 기다리면 완성. 진하기를 조절하여 마시기만 하면 된다. 그동안 책 몇 페이지를 읽을 시간은 충분하다.
이제 정적 스트레칭 시작. 장딴지부터 골반까지 구석구석 늘려준다. 그래도 10분을 넘진 않는다. 운동복을 입고 갈아입을 옷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걷기 시작한다.
이젠 호흡스트레칭이다.
숨을 크게 들어마 쉬고 내뱉어 횡격막과 가슴근육을 풀어준다. 걸어가면서 CO2테이블을 연습하기도 한다. 30보를 걸을 동안 숨을 참고 10보를 걸으며 호흡을 한다. 이때부터 몸이 조금씩 이완되는 느낌이 든다.
다시 한번 발목을 스트레칭을 하고 제자리에서 발구르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느리게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땀이 나기 시작면 재킷을 벗고 달린다. 자꾸만 빨라지는 속력을 줄이기 위해 신경을 쓴다.
한참을 뛰고 신호등을 만난다. 이때부터 운동강도를 올려 런지를 한다. 주변에 올라설만한 계단 같은 게 있으면 스텝업 런지를 한다. 신호가 바뀌면 다시 달린다.
회사 근처 헬스장에 도착이다. 회복 스트레칭을 한다. 눈을 감으면 매우 평온하다.
샤워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