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따기의 의미
그는 제주 현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귤 따기 아르바이트에 도전하기로 했다. 제주의 상징인 귤을 직접 따보는 일이야말로 가장 제주다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휴일 아침, 숙소를 나서자마자 신선한 공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던 맑고 상쾌한 바람, 이슬에 젖은 풀이 운동화를 적시는 촉감이 특별했다. 농장에 도착하니, 주황색 귤들이 청녹색 잎 사이로 빛을 발하며 환영해 주는 듯했다. 농장주는 귤 가위를 건네며 사용법을 간단히 설명했다. 짧지만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졌다.
“처음이면 손 조심해. 가위에 찔리는 사람 많아.”
옆에서 일하던 고수의 조언이 이어졌다.
“귤은 비틀어서 살짝 따야 해요. 힘을 주면 가지가 상해요!”
그리고는 대뜸, “여기 나무 열 그루, 오늘 다 끝내줘야 해요!”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처음에는 귤나무 아래에 앉아 가위를 들고 귤을 따는 일이 꽤나 재미있었다. 노란 귤을 따서 바구니에 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손에 느껴지는 귤의 매끄러운 감촉과 주렁주렁 달린 귤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흥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단함으로 변했다.
1시간쯤 지나자 손목이 뻐근해지고, 바구니는 점점 무거워졌다. 귤나무 아래를 기어 다니며 귤을 자르고 또 자르는 반복적인 동작이 생각보다 힘에 부쳤다. “이제 한 나무 다 땄다!” 싶었는데 뒤돌아보면 어김없이 가지 사이에서 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귤을 다 따고 난 후에는 꽤 먼 거리를 바구니를 들고 걸어가야 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바구니 손잡이가 아팠지만,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번은 참지 못하고 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봤다. 과즙이 터지며 입안을 채웠지만, 기대했던 달콤함보다는 새콤한 맛이 강했다.
“막 딴 건 덜 익어서 그런 맛이야.”
농장주의 말에 놀라 돌아보니, 그는 웃으며 바구니를 가리켰다.
“일 끝나고 맘껏 가져가도 되니까 그때 먹어.”
점심시간이 되자 농장주는 막걸리와 귤김치를 꺼내놓았다. 귤김치라는 낯선 음식은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묘하게 입맛을 돋웠다. 농장주는 농담처럼 말했다.
“귤 따는 건 전쟁이야. 나무들이 다들 ‘나 여기 아직 있어요!’ 하며 까불고 있어.”
그 말이 꼭 맞았다. 귤 따기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나무와의 눈치 싸움이었다.
오후로 접어들자 일은 더 고됐다. 귤 가위에 손가락을 살짝 긁히기도 했고, 나무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 때마다 가지에 이마가 부딪혔다. 그러나 점점 느껴지는 피로감 속에서도 그는 귤나무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방 가득 담긴 노란 귤들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귤을 단순히 소비제품으로 보지 않았다. 자신의 손을 거쳐 수확된 귤은 그에게 생산의 가치와 제주의 삶을 조금 더 깊이 알려줬다. 그렇게 그의 일상은 조금 더 제주스러워졌다.
일주일 매일을 직장과 알바만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일상이 적응될데 즈음, 제주스러운 취미를 찾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것이 서핑이었다. 날씨는 추워져서 내년부터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던 일이다. 그러나 바닷물은 한시즌 늦게 올꺼라고 생각했고 조금은 즐겨보자고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이호테우 해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