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과거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한 성향을 가지고 귤 따기 아르바이트와 서핑을 하는 현재의 모습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과 선택의 결과다. 개인의 성격과 심리는 유전적 요인과 경험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다. 유전은 뇌 구조와 신체 발달처럼 큰 틀을 결정하지만, 감정의 세세한 부분은 경험이 만들어낸 시냅스 배선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마치 강아지가 낯선 사람을 보고 짖는 이유가 과거의 경험에 뿌리를 두듯, 그의 성격과 기질 역시 그가 살아온 여정을 반영하고 있다.
그가 살아온 40여 년의 시간을 장소로 추적해 보면, 한국 남쪽의 고향에서 시작해 서울, 뉴욕, 다시 서울, 호찌민, 서울, 하노이, 서울을 거쳐 제주에 이르렀다. 이 이정표들은 그의 삶의 큰 전환점이자,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조각들이다.
어린 시절, 그는 빨간 유선전화기를 붙잡고 울었던 기억을 품고 있다.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형과 집에 남겨지곤 했던 그는 사소한 다툼에서 억울함을 느낄 때마다 전화기를 들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했다. 울먹이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양비론적인 “둘 다 잘못했다”였다. 그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타당한지, 그리고 그것을 가까운 타인이 인정해 주길 원했다. 물건이나 옷을 요구했던 기억은 거의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이 이해받지 못해 서러웠던 기억은 깊이 새겨져 있다. 그런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다른 근거를 댈 수 있지만 그가 느낀 감정은 실재했다.
11살 때는 함께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는 3일 밤낮으로 울며 밥조차 먹지 않았다. 그 억울하고 슬픈 감정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공정함의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되살아났다. 그렇게 그 감정을 경험했고 만들었다.
그는 옳고 그름에 집착했고, 공정함에 갈망했다. 그러나 이 집착은 단순히 정치적 논쟁이나 사회적 가치 판단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도 그의 감정은 이 집착에 의해 종종 방해를 받았다. 업무와 감정이 충돌하면 감정이 중요해지고, 다툼이 발생하면 공감이나 위로보다는 사건의 공정한 판단을 기대했다. 그는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서 자신의 억울함을 외치고 싶었다.
그의 이런 성향은 인간관계, 특히 연애에도 투영되었다. 그가 과거 연인들과 겪은 일들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연인에게 요구를 거의 하지 않았고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 물 한 잔을 부탁하는 일조차 어렵게 느껴졌다. 대신 연인에게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로는 넘치는 사랑이 있었지만, 그것을 말이나 행동으로 옮기는 데 서툴렀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착한 아이여야 사랑받는다"는 내면의 신념 때문일 것이다.
더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은데 장자가 항상 이기는 것에 분노해 좀 더 공평하고 이상적인 것을 찾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외국이다. 발전된 서양 사회에 대한 선망이 생겼다.
다른 나라에서 온 연인을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