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늘은 뭘 배웠니?" 아버지가 수저를 들며 물었다. 식탁 위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내일도, 모레도 반복될 것 같은 피로가 묻어있었다. 늘 그랬듯 그의 옷깃에는 산에서 묻어온 흙먼지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산문 쓰는 법을 배웠어요." 소녀는 밥그릇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선생님이 자연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산에 대해 썼어요."
창밖으로는 남색 하늘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산의 실루엣이 점점 짙어졌다. 마치 오래된 수묵화처럼 흐릿하면서도 선명했다.
"산이라니."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다른 애들은 꽃이나 바다, 강아지 같은 걸 썼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체념 같은 것이 묻어있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산의 주름처럼 깊게 파여 있었다.
"산이 좋아요. 어릴 때부터 늘 제 곁에 있었으니까요."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오늘도 산에서 새를 만났어요. 저를 따라오면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산이 저한테 말을 걸어주는 것처럼요." 그 새가 할머니 같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식탁 위로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한숨 소리가 마치 산에서 부는 바람 같았다.
"산에는 미래가 없다."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미래는 공부에 달려 있어. 산이 너를 먹여 살려주진 않아." 나는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거친 손등 위로 산에서 생긴 상처들이 지도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의 부모님도, 그도,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에게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사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럼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냐?" "산에서 사는 게 네 꿈이기라도 하다는 거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저는 산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빠처럼요'라고 그녀는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한 채 밥그릇만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 속에는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창밖으로는 어둠이 점점 더 깊어져 마치 먹물을 풀어놓은 듯했다. 산은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맺어온 약속을 지키듯 그들의 침묵을 묵묵히 지켜보며 긴 시간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밥그릇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도 어느새 사그라들어 차가워진 저녁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