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나요?”

ADHD_관찰_02

by 쏴재

1년 전, 병원에서 여러 가지 ADHD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새로운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으려 하니 다시 검사를 해야 했다. 이미 겪어본 절차였지만, 설문지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가다 어느 문장에서 손이 멈췄다.


“대화 중에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하는가 스스로 자문한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매우 그렇다’에 체크했다. 체크를 하고 나서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말이 많은 것’이 정말 주의력 결핍의 지표일까? 그리고 ‘스스로 자문하는 것’은 불안의 특징일 수는 있어도 ADHD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걸까?


질문은 질문을 낳았고, 나는 그 문장 하나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문항에 유독 걸렸던 이유는 어쩌면 아주 단순했다. 나는 평소에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다.

왜 이렇게 느껴질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말했을까,
왜 나는 이런 반응을 했을까.

누군가는 이것을 호기심이 많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연구자나 과학자에게는 유용한 성향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ADHD적인 특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디서부터가 개성이고, 어디서부터가 병인지 선을 긋는 일은 쉽지 않다. 나를 이루는 일부를 ‘이건 병이다’라며 잘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이 산만함, 아니 어쩌면 집착에 가까운 의문들은 분명 나를 지치게 한다. 잠들기 어려운 밤들이 그 증거중 하나가 아닐까?

불을 끄고 누우면 하루 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들이 폭발하듯 밀려온다. 연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내부 독백은 멈출 줄을 모른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이 생각은 사라질 것 같아.” 그래서 머릿속에서 혼자 말을 계속한다. 이미 지나간 대화를 다시 재생하고, 아직 오지 않은 장면을 미리 걱정한다. 몸은 누워 있는데 의식은 계속 돌아다닌다.


다시 그, “말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스스로 자문한다”는 문항의 자답으로 나의 두 가지 모습이 떠올랐다. ‘말을 먼저 한다’는 건 내가 나를 충동적이라고 느낀다는 뜻이고, ‘스스로 자문한다’는 건 그 충동을 뒤늦게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충동적인 성향을 나는 오랬동안 지켜봐 왔고 나이가 들어서 인지 더이상 충동적인 말을 내밷는 나의 행동이 자주 관찰되는것 같지는 않다. 반면 나는 오랫동안 내면에 불안을 안고 살아왔고 여전히 이와 관련된 모습과 행동을 보인다. 욕망이 결핍에서 비롯되듯, 관계 속에서 무언가 일이 생기면 나는 더 많은 공감과 인정을 바라게 된다. 다툼이 생겼을 때, 오해가 생겼을 때, 나는 말이 많아진다. 설명하고, 해명하고, 덧붙이고, 뒤늦게는 “내가 너무 말했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쩌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조차 내 불안과 고통을 누군가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원인은 복잡하지만 생각과 행동에 '집착'과 '불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것 같다.


“왜?”라는 질문은 누군가에게는 답을 건네는 도구가 되지만, 나에게는 질문과 불안을 더 크게 키우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나의 ADHD적인 성향을 관찰하는 이유가 또 다른 질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고치기 위해서도, 해결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그냥 그 모습 그대로의 나와 조용히 함께 앉아 있기 위해서.

이건 이런 거야, 저건 저런 거야, 라고 결론을 내리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잠시 머물러 주는 것.

어쩌면 타인의 대답이 아니라 스스로의 공감을 조금 더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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