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오고, 머무르고, 커지는 것들에 대하여

ADHD_관찰_03

by 쏴재

내에게는 다섯 개의 문이 있다.
눈, 귀, 피부, 코, 입.
이 문들은 늘 열려 있고, 그 사이로 자극과 정보가 쉼 없이 들어온다.

이 흐름은 완전히 막을 수 없어 보인다.
귀를 막으면 소리는 줄일 수 있지만,이미 들어온 소리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눈을 감아도 빛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자극들 가운데 무엇을 붙잡을지, 무엇을 흘려보낼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게 우리가 말하는 ‘주의력’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내 몸에서는 수많은 신호가 올라온다. 모니터에서 나오는 빛이 눈을 자극하고,

멀리서 들리는 소음이 귀를 스치고, 키보드를 누르는 손끝의 감각이 전해진다. 배 속 어딘가의 묵직함,
바닥에 닿아 있는 발끝의 차가움도 가만히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중 일부만을 선택해 글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잡생각 하나에 붙잡혀 문장을 놓칠 수도 있다. 시각이나 오감에에 집중을 하면 무시하거나 놓지던 디테일들을 볼수있다. 그 순간 다른생각을 하거나 판단을 하면 집중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오늘따라 눈이 유난히 건조하거나, 발이 유난히 시리다면 집중이라는 이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그 자극은 집요하게 나를 불러 세운다. 춥다, 건조하다, 불편하다는 판단은 단순한 감각 그 자체가 아니라 뇌의 또 다른 작용일 것이다. 그 과정은 아주 빠르게 일어나고, 그 순간 뇌의 일은 아주 조금 늘어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인 것 같다.

“아, 발이 시리네.”이 정도에서 끝나면 아마 괜찮은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다 감기 걸리면 어떡하지?”

“오늘 잠 설치면 내일 컨디션 망가지겠지.”
“왜 나는 이런 것 하나도 그냥 못 넘길까.”

이렇게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자극은 감각을 넘어 연상이 되고, 뇌의 일은 갑자기 많아진다. 내가 느끼는 피로의 상당 부분은 이렇게 증폭된 연상에서 오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든다.


뇌 안에는 지금 이 순간의 감각뿐 아니라 수많은 기억이 함께 들어 있다. 1분 전의 장면도, 수십 년 전의 기억도 원하면 꺼낼 수 있고, 원하지 않아도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말 한마디, 끝난 관계, 그때 하지 못한 선택들이 갑자기 나를 붙잡는다. 집착과 고통은 어쩌면 처음에는 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느낌이 된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뇌속에서는 자연의 법칙처럼 느껴지는 것들과 내 의도가 뒤섞여 작동하는 것 같다. 돌이나 물 그리고 중력이나 열처럼 의심할 수 없이 ‘있는 것’들은 아무도 개입하지 않아도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내 의지( 인의 개입 없이)는 스스로의 상상속에서만 존재하고 실재하지 않는것 처럼 느껴지기도한다. 재미있는 건, 오감을 통해 들어온 자극을 완전히 무시하면 그것은 내 뇌속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라진다는 점이다. 반대로 아주 오래된 기억이 지금의 나를 자극한다면 그 기억은 마치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 선명해진다.


우리는 뇌를 분석하고 설명할수록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곧 경험은 아니다.

설탕을 분석하면 그 성분과 구조, 몸에 미치는 영향은 알 수 있다. 하지만 혀에 닿는 단맛의 강렬함은
알 수 없다. 나는 요즘 그 차이를 자주 떠올린다. 그래서 나를 설명하는 대신, 나를 해석하는 대신,

나를 경험해 보고 싶다.


지금 어떤 자극이 들어오고 있는지,
어디서 생각이 커지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내가 붙잡히는지.

판단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지켜보며 나를 알아가는 경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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