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쏴재 Jun 22. 2022

형편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오베라는 남자>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주인공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타인 그리고 이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설명한다.

  오베는 정의롭고 착하다.  키가 크고 건장하다. 어릴 때 엄마를 여의고 무뚝뚝하지만 사랑 넘치는 아버지와 함께 유년기를 행복하게 보낸다. 그러다 세상이 던진 위기가 닥친다. 아빠를 잃고 만다. 집도 잃는다. 주인공은 모든 걸 잃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절망에 빠질 틈도 없이 사랑을 만난다. 지독하리만치 불우한 그의 인생에서 그녀가 등장한다. 그녀는 구원자이며 천사임에 틀림없다. 무채색으로 생겨먹은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에게 그녀는 사랑 그 이상이다.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며 삶 그 자체이다. 그런데 세상은 또 그녀를 빼앗아간다. 세상을 저주하기 시작한다.

차라리 아빠를 잃고 집도 잃었을 때 목숨까지 같이 잃었다면, 그녀를 잃었을 때 함께 세상을 떠났다면 덜 아플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과 이웃과 타인을 덜 미워했을 테다.

그의 성격이 왜 괴팍하고 불절하게 변하였는지 이해가 간다.  자살하려고 하는지 충분한 근거를 보여준다.


영화와 소설은 현실과 다른가? 아니면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을 보여주는가?

픽션과 반대로 아주 독한 사람이나 형편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변하는 게 현실적인 것 같다. 세상 권선징악 하지는 못하지만(세계는 선악이 없고 진리가 없다.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는 힘들다.) 개인이 교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아주 좋은 사람이 흑화 된다. 세상은 아주  혹독하다.  비극적인 개인의 인생을 보여준다. 그런데 진짜 비극이었나 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처음부터 오베의 죽음은 예상된다. 오베는 계속 것처럼 보인다. 와이프를 만난 그 순간 행복했던 때를 제외하면 계속 세상이 이것저것 빼앗아간다. 그리고 결국 세상은 오베의 목숨마저도 가져간다. 아니 오베가 포기해버리고 반납해버린다.

영화는 극단적인 비극을 통해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데 슬프다. 우리의 삶은 슬프지만 아름답다고 퉁치는 것 같아서 회의감이 든다. 영화를 구성하기 위해 극적이고 슬픈 장면을 많이 넣은 거라 생각하고 싶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수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우주의 진리가 오베라는 개체에게 슬픈 건 당연한 거다. 영화는 오베의 인생을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작가의 이전글 불륜과 동성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