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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쏴재 Jul 07. 2022

방전과 충전

도시와 자연

스마트폰 배터리가 닳듯 나의 에너지가, 감정이, 무언가가 닳아 없어지는 게 느껴진다.

소비나 사용이 아니다.

손 틈 사이로 모래가 흘러나가듯이, 딱히 어디다 썼는지를 모르겠는데 어느샌가 가진 게 없어진 느낌이다.  

주말에 출근을 안 한다고 이 에너지가 다시 자동 충전되는 것도 아니다.


나를 충전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대로라면 에너지 고갈로 말라죽기 십상이다


도시에서 나의 에너지가 방전되고 소비되는 속도는 자연에 있을 때 보다도 더 빠르다. 그냥 자연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전되지는 않지만 방전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방전이 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있는 것처럼, 강력한 진공청소기처럼 도시가 사람들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도시라는 큰 기계를 돌리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사람들에게서 착출 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동물이나 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 같다. 내방의 작은 화분들이 힘겹게 자라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헬스장에 가고, 한강에도 가서 살기 위해 충전할 곳을 찾는다


특히 여의도나 강남 쪽으로 가면 종로보다 도시의 힘이 더 세지는 것을 느낀다. 풍수지리를 모르지만 조선왕조가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알 것 같다. 도시와 자연의 힘이 조화롭다. 은평구나 도봉구 쪽으로 가면 북한산의 정기를 받아 내 마음이 웅장 해지는 것을 느낀다. 현대에는 도시의 힘이 과거보다 더 세져서 서울 도성, 4대 문 밖인 은평구 성북구 정도는 밖으로 나가야 도시와 자연의 힘이 균형을 잡는다. 직장의 위치가 너무 멀지만 않다면, 수고로운 출퇴근을 하더라도 자연의 힘이 센 곳에서 살고 싶다. 아파트 말고, 높지 않게,  땅과 가깝고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


도시에 사는 것들의 에너지가 빨려 들어가는 블랙홀이 있으면 그 반대의 화이트홀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시외로, 강으로, 바다로, 산으로 가면 자연의 힘은 강력해진다. 여기 어딘가에 화이트 홀이 숨어 있다. 여기선 기계 같은 도시가 자랄 수 없을듯한 느낌이 든다. 나의 작은 화분을 여기다 여기다 두면 물을 주지 않아도 무성히 잘 자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말라죽기 않기 위해 주말마다 밖으로 돌아다니다 보다. 

자연의 에너지를 받기 위해서는 숲 속에서 그저 누워만 있어도 좋지만 등산을 하거나 활동을 하는 게 더 좋다. 내린천의 차가운 물에 흐름에 몸을 맡기고 래프팅을 하면 자연에 흠뻑 빠질 수 있다. 내가 동물을 사랑하면서도 낚시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동물을 아끼는 것은 역설적이게 인간의 도덕을 동물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낚시를 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나는 서핑을 좋아한다. 

동해바다도 자주 다녔고 해외로도 다녔다. 상어가 나올까 봐 무섭기도 하지만 가끔씩 만나는 물고기나 갈매기나 거북이는 너무 반갑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바다 물속에 있기에 더 이상 젖는 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빗물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며 나의 존재를 감사할 수 있다. 


사실 도시는 낮의 모습이며 낮에만 힘을 쓸 수 있다. 밤이면 상황이 달라진다. 도시의 불빛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자연이 스멀스멀 도시에 침투한다. 아침에는 처져있고 밤이면 생기를 찾는 사람들은 이 에너지를 느꼈음에 틀림없다. 자연은 이곳을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 명의 전우도 전장에 남겨두지 않는다. 매일 밤 자연은 도시를 탈환하기 위해 밤을 보낸다. 비를 보낼 때도 있고 눈을 보낼 때도 있다. 장마가 오거나, 폭염이 오거나, 한파가 오는 것은 바로 자연이 도시가 차지한 공간을 되찾으려 하는 전투이다.


나는 도시에 속한 인간이 아니다.

나는 원래 고래였고 

내 영혼의 고향은 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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