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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장하트 Aug 22. 2023

서랍 속에 넣어둔 자아

글로 남기다 보면 찾을수 있을까

꿈이 있었을까?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꿈, 진로' 이런 단어를 접했다.

아이는 무덤덤한데, 엄마인 내가 이런 말들을 접할 때면 종종 설레고 흥분되었다.

내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멋진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일테다.



나의 어린 날은 살아남기에 급급했기에, 잃어버린 건지 잊어버린 건지 모르는 '자아'는 없었다.

초등학교를 대충 다녔고, 중학교에 올라가 사춘기에 들어서는 방황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만한 친구관계는 있었지만, 내 속을 터놓을 단짝 친구는 없었다.

예민함은 눌러두고, 여러 명의 사람과 두루 어울리는 방법은 잘 알고 있던 터라 타인에게 맞추고

사는 게 편했다. 집에서도 나를 표현해 본 적이 없으니, 밖에서는 더더욱 해본 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고3, 여름의 어느 날

아빠가 나에게 간호학과를 가라고 하셨다. 

"간호사?" "나보고 간호사를 하라고?" 

간절하게 뭐가 되겠다고 꿈꿔본 적은 없었지만, 간호사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진로였다.

아빠의 이유는 간단했다. 

"살다 보면 여자는 이혼을 할 수도 있어. 그러면 혼자 살아야 하는데, 직업이 있어야 해.

나는 네가 이혼하고 오면 받아줄 생각은 없어. 여자는 선생님이나 약사가 좋은데..."

지극히 현실적인 제안이었고, 내 성적 수준으로 가능한 것도 그랬다.

"내가 이혼할 것 같아?"

생가해보면 재미있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고3인 열아홉 살의 딸과 아빠의 대화 내용이라니...

아빠가 '너는 어른이 돼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을 했다면, 달라진 게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때라도 서랍 속에 내 자아를 꺼내볼 생각을 했을까?

시큰둥한 딸의 반응이 맘에 드시지 않았는지, 다른 사립대학은 보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년부터 용돈은 주지 않을 테니,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하셨다.


엄마, 아빠에게 나는 짐이구나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염려하고 현실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건,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보통 부모들이 그랬듯이, 자식의 감정은 중요시하지 않는 언어적 표현도 이해된다.

그저 자신들의 선택으로 태어난 딸에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딸에게, 경제적인 독립을 먼저 요구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진다.

어려서도 아들이 아닌 사실에 '죄스러운' 마음으로 커왔는데, 성인이 되면 '사라지라'라고 하는 말로 들렸다.

태어난 시작부터 지금까지 부담스러운 자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유난히도 어려웠고 조심스러웠던 부분이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몇 개로,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노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배운 대로 나는 아이에게 여러 번의 상처를 주었고 그때마다 매번 좌절했었다.


어쨌든 그렇게 직업 탐색이나 적성은 고려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고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꿈꿔본 적 없는, 원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는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처절하게 깨달으며 살았다. 

이제 와서 그때의 선택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이 안타깝고, 가여운 마음이 자꾸만 든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지?"

"나는 어떤 사람인 걸까?"

라는 질문을 반복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하는 걸 해본 적도 없고, 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말은 날아가 버린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고, 배우고 싶고, 글은 남는다.


내가 살면서 가장 어색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표현을 해줄 때다.

적당한 표현을 주고받고를 해본 적이 없어서, 나는 여전히 내 아이에게도 표현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그래도 나는 변하고 싶고, 나아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자아를 찾아서 헤매고 있고, 끝내 만나서 꼭 안아줄 거다. 

글로 차곡차고 채우다 보면,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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