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미친년처럼 뛰어봤다.
사모예드(Samoyed) 온돌이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30층이다.
누군가가 방문을 하면, 온돌이는 내뒤에 서서 반쯤 열린 현관문 사이로 누가 왔는지 빼꼼히 쳐다만 본다.
손님이 돌아갈때면 온돌이는 집안에서 장난감 하나를 입에 물고선 꼬리를 흔들며 배웅을 하곤 한다.
비가 내리는 수요일 오후였다.
"짬뽕 먹을래? 비 오니까 생각난다." 옆동네 사는 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오늘 프랑코 봐주고 있는데..." 쑤가 대답을 한다.
"그럼, 프랑코 델고와. 애들 데리고 밥이나 같이 먹자" 나는 전화를 끊고, 무얼 먹을지 배달앱에서 메뉴를
골랐다.
프랑코는 까만 왕코가 매력인 온돌이랑 동갑내기 여덟 살 스탠다드 푸들이다. 둘의 사이는 그닥 친하지도 싸우지도 않는 대면대면하는 사이다. 가끔 온돌이가 프랑코에게 좋아하지 않는 표현을 할때가 있다.
내 생각이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온돌이 보다 키가 크기 때문이다.
온돌이는 자기 보다 키가 큰 친구들을 보면, 소심하게 '크르릉' 하며 짐승소리를 낸다.
근래는 프랑코가 유일하다. 하지만, 프랑코는 온돌이의 크르릉이나 으르렁을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는 쿨한 친구다.
주문한 탕수육과 짬뽕이 프랑코를 데리고 온 쑤와동시에 도착했다.
쑤와 나는 일상 수다를 떨며 짬뽕을 흡입했고, 우리만 먹는 게 미안해서 온돌이와 프랑코에게는 고구마를 삶아서 사이좋게 나눠먹고 놀았다.
저녁 6시, 밖은 유난히 어둡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딱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프랑코 견주가 퇴근 후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잠시 후, 지하 주차장 공동현관 벨이 울렸다.
우리 집은 30층이라 지하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엘리베이터가 한대뿐이라서, 더욱이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빠라람라랑" 우리 집 현관문 벨소리가 울렸다.
프랑코 견주는 우리 집에 처음 온거라 현관문을 열고, 어색함과 반감움을 섞어 우리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땡!!"
그사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알림 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가 없었다. 9년 동안, 현관문이 열려있어도 온돌이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탄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엘리베이터의 화살표는 29, 28, 27...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곧장 비상계단으로 뛰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내가 엘리베이터보다 빠를 수가 없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집에서 입는 헐렁한 티와 레깅스, 양말만 신은 채로 비상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내려 갔다.
나는 22층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봤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5층이었다.
한 층에서도 멈추지 않고 엘리베이터는 전속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쩜 좋아. 괜찮을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걱정했던 건, 온돌이를 만날 아파트 주민들이었다.
무방비상태로 주인 없는 하얀색의 큰 대형견을 마주치면, 누구라도 기절하게 놀랄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민폐'를 끼치게 되는 상황이다. 생각만해도 피곤했다.
하지만 내가 1층에 도착했을 때, 민폐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에 온돌이는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주민들만 있었다.
온돌이는 대형견이라 키가 큰 편이어서, 공동현관의 자동문의 센서가 감지를 한다.
온돌이는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온돌이 이름을 불렀다. 비가 오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온돌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양말만 신고 있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온돌이 이름을
계속 불렀다.
온돌이는 사모예드(Samoyed), 앞으로만 달리는 썰매견이다.
작정하고 뛰면,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고 직직만 아는 개다.
그리고, 사모예드 견종은 콜이 되지 않는 편이다.(주인이 부르면 되돌아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콜이 되는 사모예드도 있기는 하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거의 콜이 되지 않는 편이다)
더욱이 요즘처럼 기온이 내려가는 쌀쌀한 계절엔 신나서 더욱더 뛰는 속도가 빨라진다.
"온돌아~~!!"
"온돌아~~!!"
나는 온돌이를 부르면서, 우리가 산책하는 코스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서 뛰었다.
양말만 신고 나온터라 발이 축축해지고, 날카로운 것들의 찌름이 느껴졌다.
옆단지와 연결된 육교를 건너, 온돌이의 똥스팟을 거쳐, 동네 큰공원까지 뛰어갔다.
비가 내리는 저녁, 양말만 신은 채로 공원을 뛰어다니며 울부짖고 있는 아줌마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며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눈빛은 궁금함과 안타까움 같았다.
정신나간 여자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정말로 정신이 나가있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온돌이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질 않는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이 밀려왔다.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어디까지 간 건지? 도로를 건넜으면 어쩌지?
아파트 앞 4차선 교차로를 건너려고 하면 안 되는데...
마주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놀랠 것이며, 무엇보다 온돌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축축한 양말 사이로 깨알 같은 작은 돌들이 나를 콕콕 찌르며 정신을 차리라고 알려주었다.
빨리 돌아가서 CCTV를 확인하고 아파트 관리실에 방송을 부탁해야겠다는 생각과 온돌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진짜 온돌이를 잃어버렸어. 못찾으면 어쩌지...'
그제서 실감이 됐다.
눈앞에서, 그리고 내 집에서 온돌이를 잃어버렸다.
우리 동으로 돌아와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외출 후 들어오시던 앞집 아저씨가 나를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며 놀라 물으셨다.
"나도 나가서 찾아볼게요. 어디 멀리 안 갔을 거예요"
집으로 올라와 핸드폰을 챙기고, 운동화를 신는데 젖은 양말 때문에 운동화에 발이 들어가질 않았다.
온전히 내 잘못으로, 온돌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사실 요즘 다른 일들 때문에 내 정신이 제자리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분노가 밀려와 신발에 내발을 구겨넣다 또 주저앉아 울었다.
"언니!! 온돌이 찾았어. 그대로 있어. 내가 올라갈게"
온돌이를 찾으러 내 뒤로 나온 쑤가 배달하시는 분에게 들었다고 했다.
"엄청 큰 개가 신나서 저기로 뛰어가던데요?!" 나와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고 했다.
평소에 나와 온돌이가 산책을 다니는 방향이 아니었다.
우리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온돌이는 쑤에게 귀를 잡힌 채로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혓바닥이 옆으로 쑤욱 밀려 나온 채로 모험을 마친 신난 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온돌이, 너 엄마한테 많이 혼나겠다" 앞집 아저씨가 웃으시며 같이 서계셨다.
나는 온돌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고마워. 놀라지 않았어? 큰일나. 그렇게 혼자 나가면"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곧 수능을 보는 아들 때문에 먹으려고 두었던 안정액을 쑤와 나는 반반씩
나눠 먹었다. 프랑코와 프랑코 견주는 나를 따라 계단으로 내려가다가, 프랑코가 16층에서 더는 못 내려간다고 버텨서 애먹은 얘기를 들으며 우리는 울며 웃었다.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해프닝을 얘기했다.
"온돌이는 변한 게 없는데, 우리가 느슨해진거지. 따듯하게 목욕하고 자. 고생했네"
온돌이를 찾지 못할 두려움에 휩싸였을 때, '사랑'이라는 단어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동물 갖고 유난을 떤다고 할지 모르겠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세상의 무엇이든 간에 어리석게도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눈앞에 사라졌을 때 바로 알게 된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소중히 아껴야 하는지,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