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엠립
여행을 떠나기 전, 내게는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그저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을까.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는데 꿈은 여전히 멀었다. 밤에 누우면, 깊은 공동에 처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밤 소리 죽여 울었다. 나는 끝내 내가 되고 싶은 것에 가까이 갈 수 없을 거라는 절망이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단출한 짐을 싸서 캄보디아로 떠나 한국인이 아무도 없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았고, 해가 잘 들지 않는 독방을 구했다. 바깥은 뜨거운 여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방은 어둡고 축축했다. 하얀 시트가 깔린 침대 위에 눕자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절망이 거기까지 나를 따라온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혼자였고, 그래서 소리 내 울 수 있었다.
900년이 된 유적지의 일주일 치 표를 샀고, 툭툭 기사에게 일주일 동안 나를 그 유적지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사원을 찾아가 벽이 모두 허물어져서 볼 것이 없는, 그래서 인적이 드문 사원 뒤편의 그늘에 앉아서 하루를 보냈다.
무너져버린 벽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라져 버린 것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녁에는 일몰을 보러 언덕에 올랐다. 언덕은 사원과는 반대로 수많은 인파로 매일 붐볐다. 나는 관광객들이 일몰에 감탄하는 것을, 일몰을 향해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을, 일몰을 등지고 키스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 안에서 유일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은, 일몰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는, 인파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자신에게 위로를 받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괜찮다. 경이로운 일몰과 함성 속에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는지도 모른다.
내가 일주일 간 같은 코스를 돌자 툭툭 기사는 내게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이렇게 매일 사원과 언덕을 오가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대부분은 일주일을 계약하고도 하루 이틀은 쉰다고 했다. 혹은 반나절의 일정만 돈다든지. 나는 무엇에 대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과를 했고, 추가 요금을 건넸다.
유적지에서의 일주일 표를 다 쓴 후에도 나는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계속 머물렀다. 갈 곳이 없었으므로 게스트하우스에 딸린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였다.
식당은 2층 건물의 옥상에 있었는데 천장이나 창문이 없이 테라스처럼 꾸며진 공간이었다. 난간에는 온갖 식물이 덩굴로 자라고 있었는데, 마구 엉킨킨 녹색 잎들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책을 읽다 말고 푸른 잎들 사이로 손을 뻗어 햇살을 가만히 만져 보곤 했다.
그날도 햇빛이 손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날이었다.
내가 앉은 긴 테이블의 맞은편에 한 남자가 앉았다. 나는 반나절 동안 그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곱슬머리를 한 그 남자도 꽤 오랜 시간 노트북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Hello.”
나는 그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물었고, 그는 호주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는 내게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를 물었고, 나는 대답 대신 책 표지를 보여 주었다. 나는 그에게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그는 가족에게 이메일을 쓰고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내게 어디에 갈 거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내게 내일 같이 외곽의 사원에 가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그게 처음이었다. 우리의 아주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