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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Mar 15. 2022

분리수거 메일을 쓴 후 작은 변화

   집주인에게 분리수거 문제로 메일을 쓰고 난 이후 여전히 쓰레기가 마구 버려지고 있어서 나는 다시 분노의 메일을 썼다. 메일의 내용인즉슨 쓰레기를 안 가져간다. 내가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다. 등등 현관 입구에 있는 안내 게시판에 분리수거 안내문을 붙여달라고 다시 메일을 썼다. 사실 나도 세입자인데 내가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곧 여름이고 쓰레기가 계속 안 가져가지니 스트레스였다.

  아니다 다를까. 여전히 노란색 쓰레기통에 페트병이나 비닐만 들어가야 하는데 여전히 일반 쓰레기며 잡동사니들이 다 버려지고 있어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쓰레기 사진을 찍어 2층 여자에게 갔다. 사실 다른 층들을 다들 1인 가구인데 다들 일찍 나간다. 아는 사람이라곤 2층 새댁이다. 나는 더듬더듬 독일어로 하려고 했으나 2층 여자는 영어로 하라고 해서 번역기를 켜가며 소통을 했다. 2층 여자는 자기 쓰레기가 아니라고 뭐가 문제냐고 해서 이 쓰레기통이 안 비워지고 있다. 벌써 한 달째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니 놀라는 눈치였다. 언제 가져가는지 아느냐고 해서 나는 FES앱을 열어 가져 가는 날짜를 알려주었다. 자기도 앞으로 쓰레기통을 잘 보고 막 버려지면 정리를 해보겠다고 했다.

  

안내문이 길게 붙어졌다.

그리고 나는 그 후부터 탐정도 아닌데 누가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나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창문 쪽으로 가서 봤다. 우리 집 창문에서 바로 쓰레기 통이 보인다. 우리 빌라 세입자가 하나의 봉투에 쓰레기를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길래 나는 얼른 창문을 열어서 'Nein, nein'을 외치며 Werfen Sie es in einen schwarzen Müllkasten(검은색 쓰레기통에 버리세요)라고 이야기를 했다. 순간 그 이야기만 하고 다른 말은 못 했다. 이러니 언어를 배워야 한다. 아마 그 세입자는 나를 이상한 동양인으로 생각했을 거 같다. 말을 해놓고 사실 너무 오버하나 싶었다. 쓰레기 안 가져가면 그만이지 하면서도 나중에 계속 안 가져가면 별도의 돈을 내야 하니. 미리 이렇게 하는 게 나을 수 있겠다 생각도 들었다.

  내가 메일을 쓰고 시간이 지나 집 빌라 게시판에 안내문이 길게 붙었다. 세입자들에게 말하는 안내문까지 붙여졌다. 그 후 쓰레기는 어느 정도 잘 버려지는데 문제는 그동안 막 버려진 노란색 쓰레기 통은 FES에서 절대 안 가져갔다. 나는 특단의 조치로 장갑과 마스크를 쓰고 우리 집 큰 비닐을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노란색 쓰레기통을 다 엎었다. 우리 애들은 엄마가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해주지 말라고 했지만 이렇게 안 하면 안 가져가니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애들에게 이러니 독일어 공부를 부단히 해서 나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노란색 쓰레기통의 쓰레기를 다 정리하고 장갑을 버리고 옷은 따로 세탁했다. 정말 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독일어가 어눌하다고 해서 내 의견을 이야기를 못하지는 않는다. 물론 바로 말이 나오면 좋겠지만 안되면 번역기를 틀면 된다. 나는 나의 의견이 들어져서 게시판에 붙어지고 변화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쓰레기통을 확인한다. 여기 사는 동안은 맨날 쓰레기통을 확인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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