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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Jun 12. 2022

독일에서 길을 잘못 들어섰다.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큰 애가 태블릿 펜을 다시 사야 해서 펜을 사러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 있는 매장을 가야 했다. 우리 집에서 검색해보니 차로는 21분이, 자전거로 39분이 나와 우리 가족은 당연히 자전거를 선택했다. 우리는 선크림도 얼굴에 듬뿍 바르고 물통도 가족별로 넉넉히 챙기고 출발했다.

  이젠 나도 남편과 같이 지도를 켜고 출발을 한다. 그러나 지도를 켜도 남편이 맨 앞에서 수신호를 해주기 때문에 맨 뒤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가는 걸 보고 뒤 따라가는 게 편하다.

  지도상 39분이라고 나와 있어도 가다 보면 멈춰서 아이들 헬멧 줄을 줄여주거나 가던 길이 공사 중이거나 할 때가 있어 예상 시간보다 더 넘게 걸린다.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힘들 때도 있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가족끼리 굉장히 돈독해진다.

  남편은 이번에 자전거로 장거리를 갈 때 둘째가 잘 못 따라올 때를 대비하여 자전거와 자전거를 이어주는 끈도 구비해놨다. 독일도 자전거에 진심인 나라이지만 우리 가족도 독일에 와서 자전거에 진심이 되었다.



안내는 39분이었는데...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가다 남편이 둘째를 끈을 이어서 갈 테니 나보고 먼저 지도를 보고 출발을 하라고 했다. 나는 조금 두려웠지만 이제 할 수 있을 거 같아 지도도 있겠다 자신감 있게 큰 애와 같이 출발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뒤에 남편과 둘째가 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안 받다 한참 후 받은 남편은 그냥 도착지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지도가 안내하는 대로 갔다. 그러나 지도를 따라 가도 지도는 나와 큰 애를 이상한 길로 안내했다. 가다 보니 자전거가 갈 수 없는 차도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때서야 알았다. 내가 자전거길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맨 먼저 나오는 차로 설정을 하고 왔던 것이다. 자전거 도로와 차도로 가는 길은 엄연히 달랐다. 그렇게 20분 이상을 넘게 돌고 돌아 나는 다시 길을 설정하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큰 애와 나는 이미 땀은 땀대로 나고 해는 뜨겁고 해도 환해서 핸드폰 화면도 잘 안 보였다. 그때는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생전 처음 온 도로에서 이리 헤매고 있으니 바보 같은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렇다고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내가 지갑과 열쇠를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이미 매장 근처에 도착한 남편과 둘째에게 가야만 했다.

  우선 큰 애에게 엄마가 길을 잘 못 설정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다시 열심히 가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도착하면 시원한 음료수 먹으면서 쉬자고 이야기를 하고 다시 달렸다. 

  목적지를 향해 가면 갈수록 차는 점점 많아지고 자전거 도로와 차도가 같이 있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다행히 지도를 따라 안전하게 도착을 했다. 우리를 기다린 둘째는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그리고 우리를 안아주었다. 언니랑 엄마가 안 와서 너무 걱정이 되었단다. 나는 둘째에게 길을 잘못 설정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큰 애랑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를 한 5분 정도 남겨두었을 때 공원 쪽으로 들어서는데 독일 현지인이 아닌 외국인이 나에게 여기 역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냐고 독일어로 물어봤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대충은 알아듣는 나는 그동안 배운 독일어로 저는 여기 현지인이 아닙니다. 미안합니다. 길을 모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이런 도심가를 자전거를 타고 오니 현지인인 줄 알았던 거 같다.



  집으로 갈때는 다같이 출발했다.  물론 나도 핸드폰 지도를 켜고 출발했다. 이번엔 자전거로 잘 설정했다. 예상시간이  41분이 나왔다. 이번에 지도가 안내하는대로 집에 잘 도착했다.

  나를 믿고 따라와준 큰 애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나때문에 더운 곳에서 기다린 남편과 둘째에게 미안했다.  

  이번 자전거 길 설정으로 앞에 가는 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을 잘 안내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특히 부모는 더  책임감을 갖고 자녀를 잘 안내해야한다는 것을 더 느끼는 하루였다.  

  덕분에 이제는 독일에서 자전거로 어디를 가도 찾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집으로 돌아오다 놀러나온 백조가족도 만났다. 우리 아이들 처럼 아기 백조도 엄마 아빠 백조를 열심히 따라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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